돌 하나도 상서로운 곳
1.
보리암 가는 날 아침부터 많은 비가 내렸다.
남해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보리암 해수관세음보살상을 뵈러 가는 길이다.
기후 변화, 태풍 등의 영향으로 며칠 째 쉬지 않고 비가 내렸지만, 한 달 전부터 계획했던 일정이라 보리암이 있는 남해는 덜하겠지 라는 기대를 갖고 출발했다.
서울에서 다섯 시간 정도 걸린다는데, 가다가 쉬면서 주유도 하고 밥도 먹어야 할 테니 여섯 시간은 더 걸리겠네라고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오전 일을 마치고 부지런히 출발했는데, 고속도로에 올라서자마자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다. '밖으로 비가 쏟아지지만 갇힌 차 안에서 둘이 가고 있으니 낭만적이지 않아?'라는 말에 아내가 웃는다.
청주를 지나, 대전쯤 가자 비가 잦아들어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를 타면서 완전히 그쳤다. 덕유산 휴게소에서 주유하며 국수 한 그릇씩을 먹고 나자 남해까지 논스톱으로 갈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미조항이라는 곳에 숙소를 잡았는데, 미조항에서 보리암까지는 30분 정도가 걸린다고 했다. 보리암 인근에서 숙소를 잡을만한 곳은 상주은모래비치, 미조항, 독일인마을 등인데, 그중 상주은모래비치와 독일인마을은 관광지여서 사람도 많고 숙소 비용도 비싸 잠만 자고 새벽에 빠져나올 우리로서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라인을 뒤지던 차에 은모래비치 인근의 미조항에 대해 쓴 글을 봤다. '미조항은 주로 낚싯배가 드나드는 곳인데 사람도 많지 않고 오래된 모텔과 여관 두세 개가 있으나 비교적 깔끔하다. 특히 *** 여관은 오래되었지만 가격이 저렴하고 목욕탕도 있어 피곤한 몸을 녹이기에도 좋다'라는 문구에 혹해 다른 곳은 찾아보지도 않고 ***여관을 목적지로 정하고 차를 몰았다.
사천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잠깐을 가다가 삼천포대교를 건너자 남해군, 즉 남해섬에 들어섰다. 남해는 지도로만 봐도 엄청난 크기의 섬인데, 사천과는 삼천포대교로, 하동과는 노량대교와 남해대교로 연결되어 육지가 되었다. 사천과 잇대있는 창선도와 남해 본섬과는 창선교로 이어져있다. 창선교를 지나자 남해의 바다를 옆에 두고 달리는 차분하고 아름다운 길이 열렸다. 바다가 보일 시간에 잠시라도 눈에 더 담아두고 싶어 '남해보물섬전망대'라는 곳에서 차를 세웠다. 아름다운 바다와 섬이 한눈에 들어왔고, 구름이 몰려 올라가며 섬을 가두는 멋진 풍경도 보았다. 다만, 바다를 더 가까이하겠다고 전망대 아래 놓인 계단길을 따라 끝까지 갔다 올라오는데 너무 많은 땀을 흘렸다. 왜 이렇게 힘들었나 저녁때 생각해 보았는데, 아마도 계단의 높이가 보통의 계단 높이보다 훨씬 높아서 그런 게 아니었나 싶었다. 땀을 뻘뻘 흘리고 숨을 헐떡거리며 올라와 미조항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 도착해 차를 세웠는데 아뿔싸 '7/22~7/31 여름휴가. 목욕탕 쉽니다'라고 쓰여 있다. 어젯밤에 전화한 사람이라 하고 방 열쇠를 받으며 아쉬움에 물어보니, '남탕은 샤워는 돼요'라고 대답한다. 샤워만 하려면 굳이 탕에 들어갈 필요가 있나 생각하며 방으로 가는데, 문 열린 객실을 빼꼼히 보니 안전 작업화 여러 켤레가 있다. 미조항을 비롯해 인근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작업자들이 타지에서 오가기 힘드니 이런 여관에서 이른바 달방(한 달 이상을 묵는 것)을 쓰는 것인데, 여러 사람이 한방에 묵다 보니 휴가 기간에도 샤워를 할 수 있게 탕을 열어두는 것이었다. 코로나 이후 몇 번 가지 못한 아쉬움을 달랠 수 있나 하고 좋아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딱 날짜 맞춰 목욕탕이 쉬는 것이었다.
인근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해변이 좋다는 상주은모래비치해변에 가 모래 위를 걷다 보니 해가 저물었다. 해변 모래 위에 구멍을 뚫고 다니는 작은 게를 보며 긴 운전의 피로를 풀었다. 10시가 조금 넘어 숙소로 들어가니 여럿이 묵는다는 방은 굳게 닫혔고 사람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우리도 서둘러 씻고 눈을 붙였다.
2.
새벽 4시 알람소리에 깼다.
5시 33분 일출이라는 정보를 확인한 후 뒤척이다 잠들었는데 알람소리에 깨보니 새벽이었다. 창문 밖 도로가 젖은 걸 보니 밤 사이 비가 내렸나 보다. 비가 오지 않는다는 날씨 정보를 또 한 번 확인하고 새벽길을 나섰다. 낚싯배를 대상으로 새벽 4시에 문을 연다는 김밥집에서 김밥을 샀다.
보리암으로 가는 길에 차창으로 비가 뿌렸다. 어둑한 길을 따라 가는데 뒤차가 바싹 붙어 빠른 속도로 따라온다. 한참을 가다 어찌어찌 비켜주었는데 보리암으로 올라가는 길로 들어서더니 어디론가 쑥 들어간다. 보리암에서 내려오다 보니 군부대가 있었다. 새벽 근무를 하러 들어가는 군인이었나 보다.
보리암은 복곡주차장이라는 곳이 있는데, 1 주차장과 2 주차장이 있다. 2 주차장에서 내려 매표소를 지나 15분 정도를 걸어야 보리암 입구에 닿는데, 2 주차장이 차면 1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마을버스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걸어가기도 한다는데 직접 보니 걸어가기는 조금 어려운 곳이다.
텅 비어있는 1 주차장을 지나 2 주차장까지 올라갔다. 차를 세우는데 저 멀리서 뒤이어 올라오는 차의 불빛이 보였다. 휴대폰의 라이트를 켜고 조심조심 매표소 안쪽으로 들어섰다. 칠흑 같은 어둠이 보리암 가는 길을 덮고 있다. 비가 뿌렸다 멎었다를 반복하는 동안 걷고 걸어 보리암 입구에 닿았다.
보리암 입구에 소소한 매점 같은 곳이 있는데, 매점 옆 왼쪽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보리암이 나타났다. 계단에서부터 들리는 스님 독경 소리가 경내로 들어서자 더 크게 들렸다. 아침 5시 30분까지 하는 새벽 기도라고 적혀있다. 극락전과 보광전에 먼저 들러 기도하고 나왔는데도, 여전히 주위는 어둑하다. 다시 비가 뿌렸다 멎었다 하는데 일출을 보기는 힘들겠다 싶으면서도 기대감을 쉬이 버리기가 어렵다.
보리암에서는 보광전, 극락전, 해수관세음보살상, 산신각, 석불, 태조가 기도하며 머물렀다는 곳 등을 만날 수 있다. 금산 등산로로 올라가면 더 많은 산책로와 아름다운 바위를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이 새벽에 등산로로는 가지 않는 것이 좋을 듯 싶다.
비가 내리고 구름과 안개로 둘러싸인 보리암을 둘러보고 있으니, 이처럼 상서로운 곳이니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서부터 이곳까지 내려와 기도했겠다 싶은 생각이 들면서 볼수록 경이롭다는 느낌이 차올랐다. 스님들 빼고는 우리밖에 없다 싶었는데, 한 사람이 해수관세음보살상 앞에 양반자세로 앉아 묵상하며 기도하고 있었다. 구름과 안개의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보살상 앞에서 우리도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보리암은 금산의 화강암 바위 위에 세워졌는데, 태조 이성계와 관련된 설화로 알려진 곳이다.
태조 이성계가 아직 조선을 세우기 전 전국의 여러 사찰을 다니며 과연 자신이 건국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물었는데, 보리암에서 유일하게 그 답을 얻었다고 한다. 태조가 만약 그렇게 된다면 비단으로 이 산을 덮겠노라는 약속을 했는데, 산을 비단으로 덮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후 백일기도를 하고 돌아간 태조가 조선을 건립한 후 어떻게 해야 할까 고심하던 중 책사 정도전이 이름을 금산으로 하면 되지 않겠냐고 해, 보광산이라는 원래의 산 이름을 금산이라고 비단 금(錦) 자를 써서 개명한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우리는 태조 이성계가 기도하며 머물렀다는 곳까지 내려갔다. 내린 비에 길이 젖고 또 작은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기에 안간힘을 쓰고 다녀왔다. 기도처 옆 바위밑의 작은 굴에 사람들이 공양하고 간 음료수와 술, 과자 등이 놓여 있었다.
태조 이성계의 기도처까지 내려갔다 오느라 비와 땀에 젖어 있는데 난데없이 커다란 까마귀 한 마리가 주변을 날아다닌다. 보광전 처마에 앉았다가 극락전을 돌아 보리암 이곳저곳을 날아다닌다. 까마귀마저 상서로운 느낌을 갖게 만드는 비 오는 아침의 보리암이다.
결국 우리는 보리암에서 남해 바다의 일출을 만나지 못했다. 보리암 경내에서 김밥을 먹는 게 왠지 불경스럽다는 아내의 말에 들고 갔던 김밥을 다시 들고 나와 세워둔 차 안에서 아침으로 먹었다. 아쉬운 마음에 미적거리는 동안 몇 대의 차가 들어왔고, 보리암 매표소의 검표원 아저씨가 출근을 했고, 구름 사이로 해가 떴다.
남해 보리암과 여수 향일암을 하루동안 다녀올 작정으로 떠난 터라 할 수 없이 출발해야 했다. 내려오다 보니 새벽에 보이지 않던 넓은 1 주차장의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주차장은 텅 비어있고, 편의점 역시 무인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우리가 보리암을 내려와 차를 달리는 동안 날씨는 완전히 화창하게 바뀌었다. 산 위의 구름과 안개가 완전히 걷히려면 시간이 꽤 걸릴 거야 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우리는 하동, 광양을 지나 여수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