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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화 Feb 01. 2020

엄마의 매실액


체했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별로 배가 고프지 않다고 하면서도 우걱우걱 밀어 넣은 점심의 마라탕이 문제였을까. 가슴이 답답하고 명치끝이 저릿저릿한 것이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 그때까지는 그렇게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소화 기능이 영 아닌지 원래도 좀만 스트레스 받으면 체하고 좀만 많이 먹으면 체하고 했으니까. 일생을 소화불량에 시달려 온 사람은 겨우 점심 먹고 체했다고 드러눕지 않는다. 회사에 진즉 한 통 가져다 놓은 카베진을 두 알 꺼내먹고 속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 웬만하면 저녁때쯤 괜찮아질 것이다. 조금 심한 케이스라면 오늘 저녁을 건너뛰고 위를 비워놓으면 내일 즈음엔 괜찮아질 테고.


안이하게 생각한 것이 민망하게도 체기가 잘 내려가지 않았다. 편의점에서 까스활명수를 하나 사 먹고 저녁을 건너뛰었음에도, 다음날 아침까지 영 속이 답답했다. 그래도 배가 고파오는 걸 보니 곧 내려갈 것도 같아서 점심은 부러 죽을 사다 먹었다. 양이 많아서 딱 반만 먹고 반은 남겼는데, 그럼에도 뭔가 먹자마자 다시금 속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다시 편의점에 가서 다른 종류의 활명수를 하나 더 사 먹고 올라왔다. 나는 자주 체하는 편이긴 하지만 체한 것이 이틀씩 가는 경우는 잘 없다. 어째 이번엔 영 이상하다 싶었지만 우선은 소화제를 하나 더 먹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내일은 주말이니까, 집에서 편하게 쉬다 보면 좀 나아지겠지. 어쩌면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일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주말에도 별달리 나아지는 게 없었다. 소화제를 이것저것 먹어보다가 좀 괜찮아졌다 싶어 죽 한 숟갈 떠먹으면 그게 그대로 다시 얹혔다. 위가 딱딱하게 굳어서 전혀 운동을 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 한참을 굶어도 계속 꺽꺽대기만 할 뿐 시원하게 트림 한 번 나오질 않았다. 토요일 저녁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엄마에게 부탁해 손을 땄다. 손끝에 주삿바늘이 들이밀어지는 게 끔찍하여 보통은 시도하지 않는 방법이었지만 당장은 답답한 게 먼저였다. 양쪽 엄지 밑에서는 검은 피가 꽤 나왔고 트림도 조금 나왔지만, 다음 날에도 속은 비슷했다. 최후의 방법이라고 여겼던 손 따기도 소용이 없다니.


결국 그 상태로 다시 월요일이 돌아왔다. 내가 그동안 너무 자주 먹어서 소화제에 내성이 생겼나 싶어 약국에 가서 새로운 종류의 소화제도 사 왔다. 지압을 하면 속이 편해진다고 하는 엄지와 검지 사이를 내내 누르며 업무를 봤다. 점심은 죽을 아주 조금 먹고 저녁은 또 건너뛰고 했다. 그런데도,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도무지.


회사 책상에는 이런 것들이 자꾸 쌓여갔다. 내가 어떻게든 해보려고 구해다 먹어 본 소화제들. 카베진 정, 오타이산 정, 파메콘 정, 노루모 에프, 까스활명수 에프, 미인 활 등등



체한 지 일주일이 가까워지자 이제는 우울감이 찾아올 정도였다. 맛있게 먹는 점심 한 끼로 직장생활의 단조로움과 우울을 달래야 하는데, 밥 한 끼 맘 놓고 먹을 수가 없으니. 도움이 될까 하여 요가도 평소보다 열심히 하고 집에서도 스트레칭을 해댔지만 수많은 소화제들처럼 운동도 영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았다. 요가에 가서도 속이 더부룩하여 내내 꺽꺽대다가만 오기도 했고. 내 오만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상태가 이어지자 마치 내 몸의 디폴트 상태가 이렇게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겨우 소화불량 때문에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울적함이 최정점을 찍던 순간이었다. 매실액이 떠오른 것은.






나 왜 매실액을 지금에서야 생각했지?



떠올리자마자 엄마에게 그렇게 물었을 정도로, 매실액은 내 2n 년 소화불량의 역사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명약이다. 고등학교 기숙사에도 전 회사 탕비실의 냉장고에도 내 이름이 붙은 물병 하나에 매실액이 가득 들어있었다. 카베진이고 오타이산이고 일본 소화제가 좋다더라 하여 먹기 시작한 것은 직장 생활을 하기 시작한 다음의 일이고, 그전까지 체하는 일이 있으면 무조건 1순위는 매실액이었다. 찐득찐득한 진액을 컵에 10분의 1쯤 따르고 따뜻한 물을 반쯤 채운다. 농도는 체함의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약간 체한 정도라면 물을 많이 넣어 매실차 마시듯 홀짝홀짝 마실 수 있지만, 심각할 때는 물을 조금만 넣고 아주 진한 액기스를 달인 약 마시듯 꿀꺽꿀꺽 마셔야 한다. 한 번도 매실액이 통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멈춘 엔진에 휘발유를 부은 양 위가 꿀렁꿀렁, 드디어 운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엄마 역시 '왜 우리가 이걸 놓쳤나' 하며 급하게 매실액을 꺼내 들었다. 직장을 옮기고 나서 예전보다 체하는 일이 현격히 줄어들었던 터라, 현 회사의 냉장고에는 내 매실액이 없다. 집에서도 굳이 마실 일이 많지 않아서 아주 잊고 있었던 모양. 엄마랑 나는 끊임없이 '왜 이걸 진작' '왜 이걸 이제야' 하는 소리를 메기고 받으며 경건하게 매실액 의식을 치렀다. 나 역시 매실액 농도 맞추는 데는 도사지만 엄마 손은 약손, 엄마가 아주 찐하게 타 준 매실액을 받아 급하게 마셨다. 불로장생초를 드디어 찾아 먹게 된 진시황 같은 얼굴로.




거짓말처럼 속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한 번에 완벽하게 사라지진 않았지만, 어떤 소화제에도 꿈쩍 않던 위가 드디어 운동을 시작하는 느낌이 들었다. 꼬르륵 거리는 소리도 나고 트림도 나고 하여간 이것저것 티를 내면서. 진작 마실걸! 다른 소화제를 사다 먹을게 아니라 매실액을 마실걸! 엄청난 효과에 감탄하며 나는 지난 일주일을 내내 후회했고, 완전히 괜찮아질 때까지 삼시세끼 매실액을 꼬박꼬박 타 먹었다. 일주일이나 체해 있었으니 이제 내려갈 때가 돼서 내려간 게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매실액을 먹기 전과 후의 차이가 너무나도 드라마틱했다. 매실액에 대한 애정과 믿음이 솟구쳐서 엄마 이건 언제부터 담그기 시작했냐고, 어떻게 담그느냐고, 엄만 이걸 왜 담그냐고 생전 안 하던 질문도 꼬치꼬치 했다. 엄마는 할머니가 늘 그렇게 해왔으므로 본인도 기억이 안 나는 언젠가부터 늘 여름이면 매실액을 담가 두었다고 했다. 주로 요리할 때 쓰려고 담그지만 아빠와 너에게는 소화제로도 참 많이 써먹었다며. 올해는 작년의 매실액이 아직 한참 남아서 따로 담그지 않았다고도 했다. 


나는 언제부터 저 매실액을 직접 담그게 될까. 엄마가 기억도 안 나는 언젠가부터 늘 담갔듯 나도 자연스레 그렇게 될까? 매실액도 매실액이지만 옆에서 손도 따주고 매실액도 타 준 엄마의 손 덕분에 나은 게 아닐까. 겨우 점심 먹고 체한 것 하나에도 여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것을. 나중에, 정말 나중에 더 많이 힘들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체한 탓으로 울적해졌던 것이 길게 남았는지 나는 괜스레 그런 것들을 자꾸만 생각했다. 매실액 한 잔에 담긴 생각이 깊고도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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