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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화 Jan 19. 2020

15층의 할머니 할아버지

나도 좀 더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 

15층 할아버지를 처음 뵌 것은 꽤 오래 전의 일이다. 중절모까지 갖춰 쓰신 아주 멋진 차림새의 할아버지가 사과 한 알을 아작 베어 물며 엘리베이터 안으로 걸어오시는데, 그게 너무 자연스럽고도 비일상적이라 내 시선이 슬쩍 머물렀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이 금세 다시 내 핸드폰으로 시선을 내렸지만. 적막한 엘리베이터에 할아버지가 사과를 깨물어 드시는 소리만 와그작 와작 울리다가 문득, 할아버지가 말을 건네셨다.



아침에 먹는 사과가 금이라고 해요. 저녁에 먹으면 동이라고 하고.



어떤 전조도 없이 시작된 대화였지만, 둘밖에 없는 엘리베이터에서 높임말로 꺼내신 한 마디는 분명 내게 건네진 것이 맞았다. 이 아파트로 이사 온 후 엘리베이터에서 내가 '안녕하세요' 이상의 대화를 나눈 적이 있던가? 얼굴도 모르는 이웃과 친근히 수다를 떠는 사교성 스킬은 아직 내가 엄마에게 배우지 못한 것이라서. 이 장면이 어딘가 기이하다 느끼면서도 나는 일단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치고 그런가요, 하고 하핫 웃었다. (아주 아주 어색한 웃음이었다.)


내 형편없는 리액션에 굴하지 않고 할아버지는 한 말씀 더 덧붙이셨다.


외국 명언에 그런 말도 있잖아요.
 An apple a day keeps the doctor away!



뜬금없이, 그러나 아주 정확하게 발음된 영어 문장이 생경하여 나는 멍하니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그 멍청한 얼굴이 혹시 영어를 못 알아들어 그런가 싶으셨는지 할아버지는 곧바로 친절한 번역을 덧붙여주시기까지 했다.


“하루에 한 알만 사과를 먹어도 의사 선생님을 안 보고 살 수 있다 이거예요. 아침에 꼭 사과 하나씩 먹어요 사과.”


아... 네. 다정한 번역과 조언에 여전히 얼빠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데 문이 열렸다. 이 대화의 종결을 어떻게 맺어야 할지 몰라 나는 일단 고개를 꾸벅 숙였다. “들어가세요”라고, 막 길을 나서시는 분께 헛소리를 건네며. 당신 먼저 나가라는 듯 손짓을 해 보이시며 할아버지도 인사를 돌려주셨다.


Have a nice day!



나는 출근길 내내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확실히 떠올려볼수록 이건 비일상적인 경험에 가까웠다. 이웃과의 자연스러운 스몰토크로 아침을 열었다는 것도 자주 있는 일이 아니지만, 확실히 이게 ‘비일상적’이라고 느끼는 이유는 누가 뭐래도 할아버지의 캐릭터 때문이었다. 중절모부터 구두까지 완벽한 풀세트 정장을 입고 사과를 ‘베어 물며’ 엘리베이터에 타실 때 짐작했어야 했는데.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시작하시던 노련함이나 그 와중에 못해도 40년은 어릴 듯한 내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붙여주시던 다감한 말투, 숨 한 번 안 들이마시고 자연스레 영어로 격언을 던지시던 것까지. “Have a nice day!”, 아주 경쾌하고 힘 있게 내뱉어진 그 인사말이 특히 오래 남아 하루 종일 그 순간을 곱씹게 했다.


그 뒤로 나는 엘리베이터가 15층에 설 때면 늘 어딘가 설레어 자세를 바르게 했고, 그 기대를 배반하지 않은 할아버지와 몇 달 후 한 번 더 만났다. 저번과 비슷하게 아주 단정한 옷차림. 비슷한 시간대 출근길이었지만 이번에는 사과가 들려있지 않았다. 내가 엄마를 닮아 조금만 더 사교성이 좋았더라면, ‘안녕하세요, 오늘 아침도 사과 드셨나요?’ 하고 먼저 대화의 포문을 열 수 있었을 텐데. 아쉽게도 나에겐 여직 그 스킬이 없었고, 나에게나 그 날이 특별한 기억이었지 할아버지께는 일상이셨을 것이므로 딱히 예전에 나와 사과 얘기를 나눴다는 건 기억하지 못하시는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깐의 침묵을 지나 가벼운 말이 오갔다. 날씨가 쌀쌀해지네요 점점, 하시기에 나도 네, 이제 밤에는 진짜 춥더라고요- 했다. 그 짧고 가벼운 말 끝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할아버지는 이번에도 ‘열림’ 버튼을 눌러주시며 먼저 나가라고 손짓. 나는 또 어색하게 고개를 꾸벅. 그랬더니 다시 예의 그 인사가 날아왔다.


 Have a good day!


이번에는 굿데이였다. 세상에.




 



그리고 불과 며칠 전, 그 굿데이로부터도 여러 달이 지난 다음.


약속이 있어 다소 급하게 집을 나서는데 17층에서 탄 엘리베이터가 15층에서 멈췄다. 15층. 급한 마음도 잊고 일순 기대가 되어 천천히 열리는 문을 응시했다. 눈이 마주친 것은 아쉽게도 내가 기다리던 할아버지가 아닌 할머니셨다. 그러나 그 인상만큼은 어딘가 익숙하여 나는 처음 뵙는 분께 꾸벅 목례를 했다. 기실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으므로 반쯤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지만.


단정하고 우아한 옷차림의 할머니는 그러나 아주 느리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서셨다. 소리 없이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는 다시 출발. 15층의 할아버지를 못 뵌 지 꽤 되었다,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멍하니 바뀌는 숫자를 바라보고 있는데-



어떤 퍼퓸을 뿌렸어요? 향이 너무 좋아요.



할머니가 어떠한 서두도 없이 말을 붙이셨다. 그 부드러운 어투를 듣자마자 직감했다. 아, 나는 오늘 15층의 할머니를 만났다는 걸. 어쩐지 반가운 마음이 되어, 그러나 예상치 못한 질문에 반쯤 당황하여 나는 입 안에서 말을 골랐다. 내가 뿌린 향은 딥디크의 도손이라는 향이었는데, 아무리 할머니가 '퍼퓸'이라고 여쭤보셨대도 '아 이거 딥디크 도손이에요'라는 말이 지나치게 외계어처럼 들릴 것 같아서. 아 이거, 이거요... 하고 바보 같이 버벅거리다가 결국은 '도손이라는 향수예요'하고 대답했다. 이 멍청한 대답에도 할머니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미소를 지으셨다.


"그렇구나. 너무 좋은 향이네요, 맡으니까 나도 기분이 좋아져요."


순수하게 좋아해 주시는 모습에는 더더욱 뭐라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어색한 미소를 따라지으며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했다. 그즈음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고, 문이 열리고, 나는 얼른 열림 버튼을 누르며 한 걸음 비켜섰다. 할머니는 고마워요, 하고 나지막이 말씀하시더니 여전히 느리지만 정갈한 걸음으로 앞서 나가셨다. 그리고는 문 앞에서 내게 남기신 마지막 인사.


Have a nice day!


오랜만에 듣는 인사가 반가워 정말이지, 나도 'You too!' 하고 대답하고 싶었다. 끝내는 그러지 못했지만.







할머니까지 뵙고 나니, 그리고 두 분이 같은 결의 태도와 화법을 가지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나니, 이 두 분의 삶이 너무나도 궁금해졌다. 엘리베이터에서 몇 번 더 뵈면, 그리고 나도 조금 사교성 스킬을 끌어올려 점점 더 대화 비슷한 걸 하게 되면, 이 분들의 삶에 대해서도 잠깐 엿볼 수 있는 날이 올까. 이른 출근시간 출근하는 나보다도 더 정중한 옷차림으로 어디에 가시는지, 해외에서 오래 살다 오셨는지, 두 분은 언제 어떻게 만나서 이렇게 같은 결을 가지게 되셨는지. 호기심이 커지다 못해 다음에 만나면 ‘언제 저희 집에서 차 한 잔 하실래요?’하고, 우리 엄마나 할 법한 소리를 할지도 모르겠다 싶을 정도였다. (물론 과장이다)


이것이 지나치게 특별하게 기억되는 건 아마 이미 내가 한국의 노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어서겠지. 일반화가 끝난 범주에서 예외 케이스가 튀어나왔으니 놀랄 법도 했다. 그렇게 내내 곱씹다가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그 순간의 생경함이 과연 ‘노인’이라는 범주에서만 온 것이 맞을까. 비슷한 또래의 이웃이 동일한 내용으로 말을 걸었다면, 그건 내게 일상적으로 느껴졌을까?


친구들에게 이 스토리를 들려줬더니 다들 반응이 비슷했다. 할아버지가 사과를 베어 물며 들어오셨다는 부분에서 벌써 ‘뭐야 뉴욕이야?’하는 반응이 나온 적도 있고, ‘무슨 미드 얘기 같다’ 고도 했고, ‘외국에서 진짜 오래 살다 오셨다 보다’고도 했지만 결국 의미는 비슷했다. ‘우리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외국’의 이야기 같다는 것. 물론 두 분이 영어를 섞어 쓰신 것도 한몫했겠으나, 그 영어를 모조리 한국어로 대체해도 느낌은 비슷할 것 같았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서야 결국 이게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걸 깨달았다. 나 역시 웃는 낯으로 이웃에게 살가운 말 한마디 건넨 적 없으면서, 이 경험을 ‘특별한 노인’을 만난 경험으로 인식하다니. 지나친 고정관념을 반성한다. 단순히 해외 생활을 했다고 다 얻어지는 것은 아닐 테니 지나친 사대주의도 경계해야 한다. 적어도 이 짧은 순간들이 반가웠음은 자명하니, 그게 해외 경험이든 사람에 대한 열린 태도든 연습해서 얻는 사교성이든 조금은 노력해 볼 생각이다. 그렇게 좀 더 멋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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