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사라질 것들은 모두 아름답지만
숏컷을 하기 위해 미용실을 예약했다. 이번 주 일요일. 이제 딱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큰맘 먹고 이 예약을 한 건 무려 한 달 전의 일이므로 그 기다림은 꽤 오래되었다.
숏컷을 하기로 결정한 데에 딱히 대단한 이유는 없다. 나는 유난히 머리카락이 빨리 자라는 편이고,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긴 머리를 잘 견디지 못한다. 머리 말리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게 제일 성가시다. 드라이기 흔드는 것도 귀찮은 와중에 고데기까지 들고 설칠 깜냥은 없으니 보통은 제멋대로 길어버린 머리를 대충 빗는 게 전부다. 그러고 나가도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이 신경 쓰여 보통은 곧 하나로 질끈 묶고 만다. 긴 머리에 펌을 해보기도 했지만 성가신 건 마찬가지라 여전히 스타일은 무조건 포니테일. 그렇다고 딱히 단발이 썩 어울리지도 않는 것 같아 반쯤은 포기하고 살던 차에 숏컷 스타일이 눈에 띄었다. 요즘 유난히 많이들 하기도 하고, 왠지 저 정도면 머리 말리는 시간이 혁신적으로 줄어들 것 같아서.
숏컷 전문이라는 미용실에 예약을 하고 한 달을 기다리면서 나는 자주 투덜댔다. 그 사이에 머리는 계속 길었고 끝은 지저분해졌다. 좀 더 일찍 예약 날짜를 잡을걸 그랬지. 이것저것 따져가며 고른 날짜가 너무 멀리 있는 것 같아 영 답답했다. 매번 머리를 묶을 때마다, 아 진짜 빨리 다 잘라버리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놀라운 반전이 일어난 건 이번 주에 들어선 다음이다. 숏컷 예약이 드디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자, 갑자기...긴 머리가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
저 지금 머리 괜찮지 않아요?
월요일 아침, 일하다 말고 뜬금없이 이렇게 묻기도 했다. 딱히 공들여 드라이를 한 것도 아닌데 어쩐지 웨이브도 자연스럽고 가르마도 그렇고 적절하게 볼륨도 들어간 것 같고. 평소 같았으면 오전을 넘기기 전에 질끈 묶었을 머리를 그대로 만지작만지작, 퇴근할 때까지도 묶지 못했다. 회사에서 머리를 풀고 다니는 일이 거의 없는 터라 몇몇은 '오늘 왜 머리 안 묶었어요?'하고 묻기도 했다. '왠지 오늘 머리가 맘에 들어서요' 대답하면 그러게, 오늘 웨이브 괜찮다고 대답해주기도 하고. 이것이 일주일 내내 이어졌다. 머리가 마음에 들었다. 긴 머리가 평소처럼 걸리적거리지 않았고, 이대로라면 계속 길러도 괜찮겠다 싶기도 했다. 그렇게 자르고 싶던 머리가 갑자기 예뻐 보인다니. 세상에, 사람의 마음이란 어찌 이리도 간사한가.
문득, 지난 회사에서 마지막 일주일을 보내던 때가 떠오른다. 징글징글해서 얼른 떠나고 싶다며 퇴사일만 간절히 기다려왔었는데, 퇴사가 딱 일주일이 남자 내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치던 모든 것들이 애틋하고 아름답게 보였달까. 한 번 내다보지도 않던 창문 앞에 앉아서 '여기 이렇게 뷰가 좋았나' 새삼스레 감탄하기도 하고 별다를 것 없는 사무실을 눈에 담으려 여러 번 둘러보기도 했다. 이전과 비교해서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내가 곧 이곳을 떠난다는 사실이, 그러고 나면 이 모든 것들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내게 색안경을 씌웠다. 아름다운 무지갯빛의 안경을.
생각해보면 모든 것들이 그렇다. 내가 매일 무심코 지나치는 풍경을 여행자들은 공들여 사진으로 남긴다. 곧 떠나게 될 곳이고 어쩌면 일생 다시는 볼 일이 없을 풍경인 탓이다. 나 역시 외국에 나가면 뭐 하나라도 더 눈에 담으려고 꼭꼭 씹어 넘긴다. 일상의 출근길에서는 내내 스마트폰에만 시선을 두고 있으면서.
곧 사라질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이 곧 사라진다는 것을 떠올리기만 하면 모든 것이 아름다워진다. 일주일 뒤면 내 머리가 싹둑 잘리게 될 것을, 혹은 이 사무실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을 떠올리듯이. 아무리 지리하게 느껴지는 일상이어도 이 모든 것엔 언제든 끝이 온다. 일주일의 여행보다는 그 끝이 멀리 있기 때문에 쉬이 체감할 수 없을 뿐.
자, 그래서 나는 이 아쉬움을 뒤로하고 예약한 미용실에 숏컷을 하러 간다. 그 머리가 또 금세 자라 어깨 아래서 찰랑거릴 쯤이 되면 또 숏컷이 훨씬 더 예뻐 보이겠지. 정말이지 어쩜 이렇게 마음이 간사하게 굴까 싶지만, 토닥토닥 잘 달래가며 일단은 계획한 대로 해볼 생각이다.
긴 머리에 끝이 있듯이 내 인생에도 끝이 있으니, 머리 스타일이 어떻든 그간의 모든 것은 아름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