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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화 May 04. 2020

쌉숭을 기다리며

에세이 드라이브 5기: 네 번째 키워드 - 대리 


코로나 블루라는 게 정말 있나. 유난히 무기력한 며칠을 보내고 있다. '무기력한' 며칠이라기보다, '나 지금 무기력하다고 유난히 자주 자각하게 되는' 며칠. 열심히 일하다가도 문득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니.' 하고 양손을 툭 떨구게 되는 일이 잦았다. 생각을 파고 파고 들어가다 보니 금방 우울의 핵에 닿아서는 '인생에는 왜 리셋 버튼이 없습니까 선생님. 저는 겨우 프린세스 메이커도 망할 조짐이 보이면 계속 리셋하던 어린애였는데요.' 하고 울부짖는 수준까지도 잠깐 갔었다. 체력도 달리는 것 같고 에너지도 고갈된 것 같고 하여간 그랬다. 주절주절 떠들어봐야 소용없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냥 문득 사는 게 귀찮았다 (죽고 싶다거나 그런 심각한 건 아니고 잠시 잠깐 만사가 귀찮아지는 정도다). 코로나 블루는 무슨. 변명일 뿐이고 애초에 무슨 이름을 붙여야 할 만큼 특별한 일도 아니다. 내 삶은 원래 에너제틱과 권태 사이를 삐뚤빼뚤 오가며 비슷한 주기를 그린다.      


출처: 트위터 


이 트윗은 저장해뒀다. 내가 사랑하는 한국인의 해학과 풍자가 오래된 설화와 적절히 결합하여 아주 묘미 있게 인생의 권태를 표현하고 있다. 그렇구나. 내가 발톱이었구나. 젠장. 손톱 발톱 밤에 깎아 아무 데나 버리면 다 나 닮은 사람으로 바뀐다는 게 어릴 땐 무섭기도 했었는데. 언젠가부터는 진지하게 상상도 해보고 그랬다. 비비드 드림이라고 했나 하여간 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기에. 많이도 필요 없고 한 두어 명만 생겨나면 좋겠다. 1번은 회사에 보내고 2번은 엄마한테 효도하라고 보내고 나는 침대에 누워있게. 요즘은 사직서도 대리로 내는 세상이라는데 그 마음 알 것도 같다. 하기 싫은데 해야 하는 일들 전부 다 대신해 줄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가끔은 진짜 이것저것 대리를 부르고 싶다. 심지어는 그게 나랑 똑같이 생긴 아바타들이면 얼마나 편하겠어. 오늘 너무 피곤한데 제 개랑 산책 좀. 이 미팅 진짜 들어가기 싫은데 그냥 앉아만 있다 나와주세요. 부장이랑 회식 좀 갔다 와요 나 집에 먼저 갈게!       





하기사 무기력이라는 건 결국 상대적인 거다. 하고 싶은 일이든 해야 하는 일이든 몇 개 없으면 내 힘이 얼마 없어도 그럭저럭 버틸 수 있겠지. 근데 일이 너무 많으면 힘이 달리기 시작하는 거다. 무기력이라기보다 기력 부족이라는 말이 더 맞을까. 기력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 이걸 다 커버할 만큼은 아닌 것 같단 느낌. 내가 가진 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운이 부족한 느낌.     


그래도 '해야 하는 일'이 많아 힘이 달리는 것보단 '하고 싶은 일'이 많아 힘이 달리는 게 조금은 긍정적일까. 어쨌든 요즘의 나는 후자에 가깝긴 하다. 하고 싶은 일이라면 아무리 발톱 아바타가 생겨도 대리를 시키지는 못하겠지. 그건 발톱 따위한테 떠넘기고 싶은 일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니까. 그러고 보면 나는 요즘 그냥 시간이 모자란가 보다. 내가 전부 다 –그것도 웬만하면 제대로 잘- 하고 싶은 욕심은 큰데 그만큼의 시간은 없어서, 덜 하고 싶은 일은 대리를 고용해서라도 좀 쳐내고 싶은가 보다. 우선순위의 정리랄까, 삶의 효율화랄까.     


물론 혼자서도 우선순위 정리는 할 수 있다. 그간은 ‘해야 하는 일’부터 다 끝내느라 ‘하고 싶은 일’을 하나도 못 했었는데, 요즘엔 ‘하고 싶은 일’의 중요도를 한 칸씩 위로 올려보고 있다. 근데 어차피 총량은 한정되어있는 거니까. 아무리 내가 테트리스를 잘 맞춰도 위에서 계속 블록이 치고 내려오면 어느 순간 게임오버가 되어버리니까. 안 중요한 블록들은 대리로 누가 갖고 가줬으면 좋겠는 그런 어린 마음인 거지. ‘하고 싶은 일’부터 챙기다가 문득 그것 때문에 ‘해야 하는 일’의 디테일을 놓치고 있음을 알게 되면 마음이 다시 덜컹하니까. 그러면 나는 또 왜 이 게임은 리셋이 안 되나 싶어 기운이 쭉 빠지고 마니까.       




그래도 무기력 같은 글자를 쥐고 오래 갉아먹진 말아야지. 리셋 버튼을 안 만들어준 누군가를 원망하며 누워있거나 발톱 아바타가 생겨나길 바라며 발톱을 흩뿌리고 다닐 여유는 없다. 어차피 나는 잠깐 바닥을 찍었을 뿐 곧 바람이 불면 둥실둥실 떠오를 거라는 걸 알거든. 에너제틱의 끝에 닿아 앗 뜨거, 하기 전까지는 계속 훨훨 날아오르는 시기가 또 오거든. 이미 몇 번 반복돼 온 일이니까 괜히 이번엔 다른 것 같다며 패닉하지 말자. 굳이 진짜 끝장을 보자며 중장비 동원하여 바닥을 파내려가지도 말자.  


권태로움에 빠졌다가 다시 활기를 되찾는 일을 태국어로는 '쌉숭(sabsung)'이라고 한다더라. 내가 오늘 해야 하는 건 그저 손톱 발톱 깨끗이 깎고 잘 모아 버리는 일. 그렇게 사소한 일상부터 다시 하나씩 재건하는 일.

발톱 아바타를 기다리기보다는 쌉숭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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