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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화 Apr 27. 2020

메롱만큼의 가벼움

에세이 드라이브 5기: 세 번째 키워드 - 메롱 


"엄마, 저 강아지는 왜 메롱 하고 있어?"     


순이와 산책을 나가면 하루에 한 번은 꼭 같은 질문을 듣는다. 무해한 호기심으로 가득 찬 어린애들이 많고, 깜짝 놀랄 정도로 얼굴을 들이밀고 쳐다보며 '얘 왜 이래?' 하고 혼잣말하는 무례한 이들도 있고, 궁금증이 일어 넌지시 말을 붙여오시는 할머님들도 계시다. 어떤 형태든 그 질문이 건네 졌을 때 내가 제대로 대답한 적이 있었나. 그저 멋쩍게 허허 웃으며 슬쩍 자리를 피하거나, 나조차도 이유를 모르는 양 '그러게요' 하고는 슬며시 멀어지곤 했다. 한 번도 순이가 왜 혓바닥을 내밀고 있는지 제대로 된 대답을 주지 않았다. 줄 수가 없었다.     

 

벌써 2년이 더 된 일이다. 치주염이 의심된다고 스케일링을 권하길래, 오랜 고민 끝에 순이를 수술실로 들여보냈다. 강아지의 스케일링에는 마취가 동반된다. 순이는 이미 열 살이 넘은 노견이었고, 마취를 하기 전엔 강아지가 잘못되어도 병원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서류에 서명해야 했다. 망설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하기사 그전에도 유선종양 때문에, 뒷다리 인대 때문에 수술할 때 수의사들이 스케일링을 같이 진행할 것을 권한 적이 있었다. 어차피 마취하는 김에 해두는 게 좋다고 했다. 그치만 안 그래도 큰 수술들인데. 마취 시간이 한 시간이나 길어진다는 게 무서워 매번 다음으로 미뤘었다. 종양이나 인대에 비하면 스케일링은 사소한 문제 같았다.그렇게 미루던 게 어떤 결과를 가져왔나.      


스케일링을 진행하던 수의사가 중간에 나왔다. 수술실에서 의사가 중간에 나와 보호자를 찾는 건 절대 좋은 상황이 아니라, 나는 벌써 사지가 빳빳이 굳어감을 느끼며 상담실로 들어갔었다. 순이의 치주염이 예상보다 심각하다고 했다. 이빨 몇 개는 손으로 흔들어도 빠질 정도고 염증이 심해 잇몸도 녹아내리고 있다고. 이대로 뒀다가는 잇몸까지 전부 상하고 종국에는 턱뼈가 녹는다고 했다. 수의사는 사진 몇 개도 같이 보여주었다. 이렇게 되지 않으려면 당장 전발치를 해야 한다고 했다.      


전발치라니. 순이 이빨을 다 뽑는다고요? 듣도 보도 못한 소리에 울음부터 나왔다. 치주염이 있다고 이를 다 뽑는 사람은 없잖아요. 사람은 틀니라도 있지 개는 이빨이 없으면 어떻게 살아요? 엉엉 울며 미약하게 반항하는 나를 붙들고 수의사는 침착하게도 설득했다. 이 와중에도 순이의 마취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는 것을 가끔씩 상기시키면서. 이빨이 없어도 살 수 있다고 했다. 아주 딱딱한 건 씹지 못하겠지만 잇몸이 충분히 기능한다고, 어차피 지금 이빨은 이미 기능을 다 잃은 거나 다름없다고.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건 속담인 줄 알았지, 그걸 수의사한테 의학적 사실로서 전달받을 줄은 몰랐었다. 


무서워서 울고, 뒤늦게 후회가 되어 울고, 수의사를 믿고 싶지 않은데 믿을 수밖에 없어서 나는 계속 애처럼 울었다. 선생님, 선생님 강아지라도 그렇게 하실 거예요? 돈 때문에 그러시는 거면 스케일링만 해도 돈 더 낼게요. 울다가 그딴 소리도 막 뱉었던 것 같은데 수의사는 단호했다. 강아지의 삶의 질은 훨씬 더 나아질 거라고, 이게 유일한 선택이라고 나를 설득했다. 괜찮다고 달래기도 했다. 평소 같으면 고민하실 시간을 더 드렸겠지만, 순이는 이미 마취 중이고 상태가 안정적이니 굳이 이걸 깨웠다가 며칠 후에 다시 마취를 시킬 필요가 없다고 했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다. 믿고 싶지 않았을 뿐.      






결국 순이는 그날 전체 발치를 했다. 한 시간 예정이었던 스케일링은 장장 네 시간이 넘는 대수술로 바뀌었고, 나는 저릿저릿한 손끝을 쥐고 내내 대기실에 앉아있었다. 순아, 나는 너에 대해서라면 자꾸 잘못된 선택만 하는 것 같아. 미안해. 원망해도 좋으니 제발 잘 깨어나 줘. 생각을 가만히 놓아두면 무서운 상상이 돌아다녀서 나는 온 힘을 모아 빌었다. 그렇게 비는 내내 온몸이 차게 식었다가 갑자기 떨리다가 했다.      


수술은 잘 끝났다. 나는 두 줄로 나란히 놓인 순이의 이빨을 전부 보았다. 많기도 했다. 수술이 오래 걸릴 만하다 싶었다. 수의사는 힘든 수술이었다고 했다. 빼놓은 이빨은 그런대로 또 멀쩡해 보여서 나는 또 울었다. 마취가 덜 풀린 순이는 나를 알아보지도 못해서, 이틀 입원을 시키고 돌아오면서도 내내 울었다.      


수의사의 말이 옳았다. 이가 없어도 잇몸이 이를 대신했다. 사료를 물에 불려 줘야 하고 좋아하던 개껌은 먹을 수 없지만, 완전히 회복을 마친 순이는 여전히 잘 먹었다. 이빨이 아플 때보다 훨씬 잘 먹었다. 자고 났더니 갑자기 이빨이 홀랑 없어져서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아무리 아파도 이빨이 있는 게 나았는데 왜 다 빼버렸냐고 나를 원망하진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건강히 회복한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혀가 오른쪽으로 삐쭉 나온 너는 여전히 귀엽지만




혓바닥이 튀어나오기 시작한 건 그러니까, 예상하지 못했던 부작용. 이빨의 기능 중에는 혀를 입안에 잘 담아두는 것도 있었던 모양이다. 가끔씩 혀가 오른쪽으로 비집고 나오더니, 그 빈도가 점점 늘었다. 혀의 모양 자체가 아예 오른쪽으로 휘기 시작했다. 이제는 혀를 넣고 있는 모습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로 항상 혀가 오른쪽으로 반쯤 나와 있다. 너무 오래 나와 있어서 혀끝은 건조하게 갈라져 있다.      


혀가 나와 있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자꾸 혀끝에 털이 닿으니 가만히 있다가도 뭘 먹는 것처럼 쩝쩝거린다. 틱 증상 같은 것이 생긴 거다. 잠시도 편히 있지 못하는 것 같아 저릿저릿하다. 뭔가를 핥아 먹으려 할 때도 그렇다. 내 손으로 건네주는 것들도 잘 받아먹었었는데, 혀가 휘어진 것엔 도무지 적응이 안 되는지 매번 당황스러워한다. 제 딴에는 앞으로 혀를 뻗었는데 혀가 옆으로 비죽 튀어 나가버리니까.      


그러니까 나는 순이의 혀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리다. 그것이 꼭 내 잘못된 선택, 미뤄둔 결정, 부족한 지식이 쌓여서 만들어진 결정체 같아서. 잘못은 전부 내가 하고 그 불편은 순이 혼자 겪고 있는 것 같아서. 그래서 그냥 간단하게는 설명할 수가 없다. 왜 메롱 하고 있는 거냐고 물으면 그저 씁쓸히 웃을밖에. 


메롱, 메롱. 그 정도의 가벼움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순아, 너는 어째서 이렇게 걸음걸음 무거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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