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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화 Apr 20. 2020

부탁인데 좀 멀쩡해주라 몸뚱이야   

에세이 드라이브 5기: 두 번째 키워드, 부탁 


어금니 안쪽이 시큰시큰하다. 이번엔 오른쪽 윗어금니다. 저번엔 왼쪽 아래였던 것 같은데. 어쨌든 곧 치과에 가야겠다. 치과에 가는 걸 끔찍하게 싫어하지만…… 그래도 지난 2n년 간 배운 인생의 지혜가 있다면, 치과는 웬만하면 시큰거림이 긴가민가할 때 가야 한다는 거다. 기다리다 더 나빠져서 신경치료의 범위가 커지기 전에, 간단한 치료를 넘어서 마취를 동반한 시술이 되기 전에.      


근데 사실 가야 할 병원 목록에는 이미 대기 줄이 있다. 정형외과다. 오른쪽 무릎이 아픈 지 꽤 되었다. (몸 오른쪽이 다 문제인 것인가?) 요가와 달리기와 다리 찢기 스트레칭을 반복하다가 무릎 안쪽이 욱신거리기 시작했는데, 하루 이틀 가다 없어질 줄 알았건만 그 상태로 꽤 오래갔다. 안쪽에서 시작해서 종국엔 무릎 앞쪽으로도 번졌다. 잊을 만하면 누가 나무망치로 툭- 툭- 쳐대는 것처럼 간간이 통증이 있었다. 마침(?) 요가원이 문을 닫기도 해서 운동을 모두 멈췄더니 좀 나아지는 듯했지만, 평소보다 조금이라도 많이 움직이는 날이면 저녁에 통증이 있다. 심할 때는 자다가도 몇 번 깼다.      


그래도 아직 걷지 못할 지경은 아니니 괜찮겠지, 하고 정형외과 방문을 미뤄왔다. 너무 아픈 날에는 집에 넘쳐나는 휴족시간을 하나 뜯어 대충 붙이고 잤다. 솔직히 말하면 어깨가 아파서 집 앞 정형외과에 갔던 게 얼마 안 되어, 이번엔 무릎이 아프다고 가기가 좀 신경 쓰인다. 의사도 간호사도 아무도 신경 안 쓸 걸 아는데 그냥 그렇다. 정형외과가 하나뿐인 것도 아니지만 여전히 망설여진다. 나이 서른도 되기 전에 무릎이 아프다고 병원에 가는 것 자체가 좀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갔는데 무슨 거창한 병명을 들이대면 어떡하지. 걱정이 많은 인간은 이래서 병원도 잘 못 간다. 휴. 그저 좀 더 건강해지려고 요가 쪼금 달리기 쬐끔 했을 뿐인데 (무슨 마라톤을 뛴 것도 아닌데) 무릎이 아작나다니. 억울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잔병치레가 많은 타입이다 나는. 비실비실해 보이는 것과 달리 큰 병 없이 잘 자랐으니 다행이지만, 엄마도 늘 '얘가 보기보다 건강한 타입이에요' 말하곤 했지만, 조금만 더 건강했으면 좋았을 뻔했다. 커다란 병 하나를 잘게 부수고 쪼개어 자주 자잘하게 아픈 느낌이랄까. 이가 약해서 내 나이 다섯 살 때 처음 (손발 묶인 채) 신경치료를 받았고 그로 인해 치과 포비아가 생겼지만 그 뒤로도 참 자주 치과에 가야 했다. 알러지성 비염이 있어서 환절기가 되면 정신을 못 차리고, 추위를 많이 타서인지 꼬박꼬박 감기도 걸린다. 소화력이 약해서 자주 체한다. 소화제는 상비약이다. 오늘부터 열심히 운동하자고 다짐했다가 딱 하루하고 끙끙 앓아누워 그대로 일주일을 쉬는 타입이다. 발목과 골반의 뼈는 뭐가 문제인지 매일같이 뚝뚝 소리가 나고 요즘엔 어깨에서도 난다. 아이고.      




갈수록 몸이 아프다는 건 뭐랄까, '귀찮은' 영역에 속하는 것 같다. 아픈 것 자체도 서럽긴 한데, 말했듯이 막 거하게 아픈 타입은 아니라서. 어금니가 시린 것이 내 인생을 당장에 주저앉히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매우 신경 쓰인다. 요즘 들어 자주 하는 생각인데, 세상엔 이미 내가 신경 써야 하는 게 너무나도 -너무나도!- 많다. 내가 유난히 걱정이 많은 성격이기도 하지만. 일단 하루 8시간이 회사에 저당 잡혀있고, 매분 단위로 일이 터지는 곳이라 참 자잘하게 신경 쓸 것이 많다. 열네 살이 된 내 강아지도 챙겨야 한다. 요즘 들어 오른쪽 앞발 디디는 걸 좀 불편해하는 것 같아 (너도 오른쪽이니?) 신경이 쓰인다. 관절약을 챙겨 먹이고 있는데 매일 어디다 숨겨서 먹일지도 고민해야 한다. 재택이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으므로 삼시 세끼 직접 밥을 챙겨 먹어야 하고, 메뉴를 정해야 하며 알맞게 장도 봐야 한다. 재택의 원인인 코로나 사태가 어떻게 진행 중인지 매일 체크도 해야 하고, 그렇게 뉴스를 보다 보면 걱정거리는 또 생기고…… 이런 식이다.      


24시간이 모자라다. 정말로. 잠도 많아서 기실 24시간이라기보단 15시간 정도다. 거기서 본업을 빼면 7시간이다. 부족할 만도 하지. 할 일도 많고 걱정할 일도 많고 책임질 일도 많으며 챙길 일도 많은데 그 와중에 왜 몸이 자꾸 툭툭 뻑나는지. 네가 보태지 않아도 이미 나는 신경 쓸 게 넘치는데!      







구글 캘린더를 켜고 다음 주 스케줄을 요리조리 빼본다. 치과에 갈 수 있을까. 아직 재택근무 중이긴 하지만 미팅이 겹겹이 있어 시간을 빼기가 영 애매하다. 그래도 어떻게든 해보려고 자꾸 들여다보고 있다. 주말 사이 점점 더 이가 시려지는 게, 아무래도 그 속도가 다른 때보다도 빠른 것 같아서. 잠깐의 소동으로 넘어가기엔 이미 그른 것 같아서. 어떻게든 다음 주에 시간을 빼서 치과에 가봐야겠다.      


무릎은 글쎄, 아직 걸어 다닐 수 있으니 조금 더 참아줄 수 있겠지. 아닌가, 정 안 되면 이는 임플란트를 해다 박을 수 있지만 무릎은 한 번 나가면 끝이라던데. 도무지 일주일에 병원 두 개를 갈 만큼의 여유는 없다. 병원을 어디로 가야 할지도 알아봐야 하는데. 후기도 좀 찾아보고. 그러는 사이에 또 체하거나 감기에 걸리거나 하지는 않겠지 설마. 꼭 일은 바쁠 때 터진다. 


부탁인데 이 부실한 몸뚱이야, 제발 아무 문제 없이 멀쩡히 좀 있어주라,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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