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두 번째 퇴사를 했습니다
생애 두 번째 퇴사를 했다. 퇴사는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째부턴 쉽다고들 하던데, 첫 퇴사와 두 번째 퇴사는 그 양식도 마음도 말도 다 달라서 꼭 새로 하는 것 같았다. 같은 이름으로 뭉뚱그려지는 대개의 경험이 그렇듯이. 앞으로 내게 몇 번의 퇴사가 더 있을까. 어쨌든 퇴사가 단수가 아닌 복수의 무언가가 되어버리고 나자 괜히 그런 것을 셈해보게 되었다.
굳이 공통점을 찾아보자면 두 번의 퇴사 모두 조금씩은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했다. 감사한 일이다. 이 순간만을 기다렸노라고 해방감만을 느끼며 떠나거나 다시는 보지 말자고 침 퉤퉤 뱉고 떠나는 것도...글쎄, 그 순간에는 짜릿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아쉬움이 남는다는 건 무언가 여기 좋은 게 있었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내 경우엔 늘 사람이다.
첫 번째 회사에선 사람에 대한 미련이 너무 진했던 탓으로, 결정적인 순간에 퇴사를 고민하기도 했었다. 이곳을 지금 떠나는 게 옳다는 확신을 내 옆의 사람들이 자꾸 흔들었다. 나가서 이만한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런 상사를, 이런 동료를? 이왕이면 신이 나서 두근거리는 마음만 가지고 퇴사를 하고 싶은데, 사람들이 자꾸 마음을 잡아채서. 결국은 개운치 못한 마음으로 퇴사를 하며 우스운 다짐을 했었다. 다음 번 가는 회사에선 이 정도의 깊은 관계는 만들지 말아야지. 다른 것도 아니고 사람에 미련이 남아서 이직이나 퇴사 같은 중요한 결정이 뿌리 끝까지 흔들리는 게 스스로 답답했던 모양. 그리고 그게 다 내가 지나치게 정을 주고 정을 받은 탓이라 여겼다. 회사일 뿐인데. 사직서 한 장이면 흩어져버리는 관계인데. 괜히 너무 정을 들여서.
그리고 그 다짐은 보란 듯이 실패했다. 나는 또 새로운 사람들에게 정을 주고야 말았다. 어쩔 수 없는 내 성격인가, 생각도 했지만 그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체념 아닌 체념도 들었다. 3년이 넘는 시간동안 일주일에 다섯 번, 하루에 아홉 시간씩 옆자리에 앉아 좋은 일 나쁜 일을 다 같이 겪는 사이인데. 같이 먹는 끼니수가 가족보다도 많고 나누는 이야기도 친구보다 많아지는데. 동지애랄까. 회사는 전쟁터 같은 곳이니 전우애가 더 맞을까. 하여간 사이사이로 감정이 자라나지 않게 막을 도리가 없다. 아무리 우린 그저 돈 벌러 모인 직장동료일 뿐이라고 선을 그어대도.
하여간 이번에도 아쉬운 건 사람밖에 없었다. 전 사람은 다 싫어하고 개만 좋아합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런 말을 내뱉고 다닌 주제에 결국은 또 사람. 사람을 빼곤 여기서 더 해보고 싶은 일도, 더 받고 싶은 돈도, 더 그려보고픈 청사진도 남은 게 없다. 애초에 그런 게 다 떨어졌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로 한 것이겠고. 근데 그 모든 것들이 빠르게 고갈되어 가는 와중에 사람은 쌓이기만 했다. 다 다른 사람들이고 때론 나와 결이 맞지 않는다고 느끼면서도 그저 아끼게 되는 마음.
마지막 날. 멀리 있는 매니저가 부러 신경 써서 보내 준 커다란 꽃다발과, 팀원들이 이렇다 할 말도 없이 쓱 내미는 다정한 선물에 편지들과. 아쉽다 하면서도 막상 나는 준비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기대치 않았던 마음들을 한가득 안고서는... 어딘가 딱딱하게 막혀있던 혈이 풀리며 온몸에 훅 온기가 돌았다. 그들이 내게 소중한 사람인만큼 그들에게 내가 소중한 사람임을 깨달을 때, 왜 몰랐냐며 껴안아주는 온기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유독 정이 많아 자주 상처 받고 그렇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드는 작은 인간은 더더욱. 사람은 다 싫다며 떠들던 것이 그저 내 미욱한 방패였음을, 이번에도 완전히 뚫리고 말았음을 인정할 밖에.
마지막 날 환하게 웃는 나를 보고 동료들은 떠나는 게 그렇게 기쁘냐며 서운해 했지만, 나는 하루종일 인연의 무거움을 새삼 실감했다. 꼭 다시 돌아와, 우리 어디서든 다시 만나, 그러니까 사실 이건 작별인사는 아냐. 그 어떤 편지에도 제대로 된 작별인사는 없이 그저 다시 만나자는 말 뿐이라 더더욱.
다행히 전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과 아직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그 마음을 달래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되었다. 퇴사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끝나버리지 않는 인연도 있다는 걸 몸으로 알게 됐으니까. 물론 거리가 멀어진 만큼 그 연을 잡고 있는 데는 조금 더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그만큼의 힘은 충분히 내어줄 수 있을 만큼 좋아하게 된 사람들이니까.
동시에 다음 회사의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전혀 모르면서도 괜한 안도감이 들었다. 언제든 도망쳐 돌아가도 안아줄 사람들이 그새 또 한움큼 내 곁에 생겼다는 사실에. 또 새로운 사람들이 누구든, 지금의 이 막막한 심정과는 상관없이 결국 언젠가 그곳을 떠날 때 나는 다시 그들에게 미련 섞인 시선을 짙게 내보이게 될 거란 믿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