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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화 Nov 19. 2022

삶이 허무하게 느껴질 때면

의미 원정대를 꾸려 보아요 


삶의 의미는 대체 뭐야?


우리 사이에 여러 번 반복되었던 질문이 다시 한번 던져졌다. 새삼스럽지도 않다. 한 번뿐인 인생 열심히 살아보자, 그런 우스운 모토 없이도 늘 열심인 친구 연과 (그에는 못 미치지만 늘 허둥지둥 뛰고 있는) 나는 종종 이런 시기를 맞곤 했다. 열심히 달리다가 맞닥뜨리는 현타. 나 왜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지? 내 삶의 의미는 뭐지? 우리는 왜 살고 있지?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허무함.



이번에도 늦은 밤 뜬금없이 화두가 던져졌고 그렇게 시작된 카톡 대화는 빠르게도 흘렀다.


인생이란 원래 의미가 없고 인간은 그럼에도 늘 의미를 찾으니 남는 것은 고통뿐이야.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시간은 계속 가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 있지? 결국 중요한 건 감정뿐일까? 그래서 다들 사랑을 하는 걸까. 에로스적 사랑이 꼭 필요한 걸까. 아냐, 그건 그냥 본능이 아닐까. 그치만 본능이라는 것 자체에도 의미가 있는 거 아닐까? 그럼, 사랑이 없는 삶은 의미가 없는 걸까?


대체로 답을 주기보다는 질문과 가정을 마구마구 던져대는 식이었다(늘 그렇듯이). 서로의 개똥철학을 마구마구 파고드는. 우리 무슨 의미탐험대 같네. 한참 의미 타령을 하다가 내가 말했고 웃음이 터졌다. 낄낄대다가 이럴 거면 머리 깎고 절에 들어가서 철학 공부나 하자고 했다. 안 돼, 절도 요즘은 사회생활이래. 가면 텃세도 장난 아니고 막 라인도 잘 잡아야 한대. 사실인지 아닌지 터럭도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떠들며 또 깔깔 웃었다.


그 뒤로도 한참 웃음을 동반한 대화가 종잡을 수 없이 이어졌다. 난자 냉동과 다단계와 층간소음에 대해 의식의 흐름대로 이야기했고, 얼마 전 맞닥뜨렸던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해서도 잠깐 감정을 나눴다. 난자 냉동에서 출발한 대화가 '혹시'와 함께 번지고 번져, SF소설 여러 개를 짜깁기 한 것 같은 아포칼립스 설정을 바탕으로 말도 안 되는 상상의 나래도 펼쳤다. 애초에 던져진 질문과는 멀어진 지 오래였지만 알게 뭐야. 이리저리 오가는 대화가 즐거워 내내 피식대며.



그렇게 자정이 넘도록 이어지던 대화는 내일의 중요한 일을 상기하며 마무리되었다. 열심히 살다 느낀 허무함에 대해 대화하고 있었으면서, 또 열심히 살기 위해 그 대화를 멈추는 아이러니함이란. 그러나 우리의 의미 탐험은 늘 이런 식이었으므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늘 삶의 의미에 대해 묻고 떠들지만 한 번도 대단한 답을 찾아낸 적은 없고, 애초에 그 질문에 대단한 답 같은 건 없다는 것도 아니까. 오늘의 의미 탐험도 실패로군, 내가 손쉽게 결론 내리기 전에 연이 말했다.



오늘 저녁 네 덕분에 행복했어. 이게 의미다 마.



그랬다. 애초에 답이 거기 있었다.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답 없는 주제로도 이리저리 헛소리를 핑퐁해가며 웃음이 가득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 바쁜 일상 속에 메신저로나마 깔깔대며 서로에게 온전히 집중한 한 시간. 그 순간만큼은 인생의 허무함 따위 느낄 새도 없이 그저 웃고 있었으니.








나는 안다. 그 요상한 허무감은 앞으로도 종종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꿈도 크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 우리에게는 어쩌면 남들에게 보다 더 자주 찾아올지도 모르고. 그럴 때면 우리는 다시 '인생 의미 없어!'하고 울부짖겠지만, 삶의 의미를 찾겠답시고 괜히 다른 곳을 헤매지는 않을 테다. 어차피 다 의미가 없으니 때려치우자고 그 자리에 드러눕지도 않을 거고.


목표를 멀리 두고 뛰다 보면 길가의 들꽃을 쉬이 지나치는 법이라. 또 한 번 이게 맞나, 인생의 의미는 뭔가, 그런 의문이 들면 내가 그런 순간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충분한 웃음을 나누고 있는지. 참소리만 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헛소리만으로 한 시간을 꽉 채워도 괜찮은 대화를 자주 가지고 있는지. 이 순간 내 눈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있는지.


우리의 의미 원정대는 그 길 끝에 가서도 끝내 명쾌한 의미를 찾아낼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아무래도 좋다. 어차피 중요한 건 모두 그 길 위에, 그 길을 같이 걷는 사람들에게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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