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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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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화 Nov 05. 2022

비록 샴푸는 눈에 계속 들어가지만

선택과 후회


가지 않은 길에 대해 무수히 생각하게 되는 한 달이었다. 여러 선택지를 두고 걸음을 망설이던 순간부터 알았다. 이 중 무엇을 선택하든 내 마음의 한 구석은 다른 쪽으로 가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될 거라는 걸. 나를 아는 만큼 그걸 너무 잘 알고 있었던 탓으로 결정은 더 어려웠다. 내게 이렇게 다양한 선택지가 주어진 것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 선택지를 만들어낸 것이 나인 걸 알면서도, 실은 하나라도 선택지를 늘리기 위해 동동거리며 애써왔으면서도.


기실 선택 앞에서 나는 늘 주저한다. 후회를 짙게 하는 편이라서 그렇다. 후회가 짙은 건 내가 늘 가능성을 지워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If. 나는 원래 그런 상상만으로도 밤을 꼬박 지새우는 어린애였다. 내가 그때 그걸 골랐으면 어떻게 됐을까. 그 말을 했다면 어땠을까. 떠나지 않았다면? 혹은 떠났다면? 지금 돌이켜보니 어릴 때는 그나마 사정이 좀 나았다. 인생에서 내가 '선택'해온 것이 그다지 많지 않았기도 했고, 그 선택의 과정에 나의 온전한 의지보단 부모님의 조언이나 친구들의 유행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던 때였으니까.



서른이 넘은 지금은.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갈래길을 지나왔나.


사소한 곁가지들을 모두 쳐낸다고 해도 갈라지는 속도가 어마어마했다. 개중엔 뒤도 안 돌아보고 선택할 수 있는 쉬운 결정도 많았고, 갈래길 앞에서 수십 번 머뭇대다가 영 불안한 마음으로 하나를 고른 결정도 있었으며, 사실 저쪽에 하나의 갈래가 더 있는 줄 모르고 성큼 한쪽으로 들어선 결정도 있었다.


제일 어려운 건 아무래도 둘 다 가지고 싶을 때였지. 짬뽕과 짜장면, 어느 쪽도 포기하지 못하고 종종 짬짜면을 시키는 회색분자에겐 그런 순간이 잦았다. 그러나 짬짜면 용기와 달리 나를 반쪽으로 갈라 양쪽 길을 다 걷게 할 수는 없었으므로,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를 초장부터 잔뜩 껴안은 채로도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기는 했다. 그것이 인생의 법칙이니까.


그렇게 갈래길마다 나는 후회를 한 스푼씩 얻어왔다. 선택한 길이 평탄하지 않으면 두 스푼. 저쪽 길을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내내 아쉬운 마음을 품고 걷다 보면 길은 더 평탄치 않게 느껴지는 법이라. 가보지 않은 길의 현실을 알 턱이 없으니 상상 속에서 미화도 멋대로 했다. 그쪽에서는 좋은 부분만 보고 내 앞에 놓인 길에서는 나쁜 부분만 빼내서 둘을 비교하는 불공평한 짓을 멋대로.


물론 선택한 길이 쏙 마음에 든 적도 있었다. 그럴 때면 으레 의기양양해져서는, 난 정말 눈 감고도 맞는 길을 고르는 사람이구나 하며 어깨춤을 추며 걸었다. 그렇지만 선생님. 처음부터 끝까지 평온한 길이 어디 있겠습니까.


길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도 그런 순간은 찾아왔다. 다리가 아파 주저앉고 싶은 순간들. 그럴 때면 또다시 불평은 길바닥에 쏟아내는 거다. 저쪽 길을 선택했다면, 나 아프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아픔을 달래는 데는 하등 쓸모없는 상상력을 펼쳐가며 내가 버리고 온 장밋빛 길을 상상했다. 여기도 나름 좋았는데... 어쩌면 저쪽은 더 좋았을지도 모르잖아? 말했듯이 미화는 쉬웠다. 후회는 여전했다.










2020년 1월 13일에 이렇게 썼다.


샴푸가 눈에 안 들어가게 머리를 잘 감는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겨우 샴푸가 눈에 들어가도 울지 않는 어른이 되었다.
샴푸는 여전히 눈에 들어간다. 계속.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그때도 아마 지나간 선택에 대해 진득한 후회를 하고 있었겠지 추측해 볼 따름이다(혹은 그저 정말 머리를 감다가 샴푸가 눈에 들어갔었는지도).


하여간 2년이 훌쩍 지나서야 나는 이 문장을 여러 번 곱씹었다. 그때는 분명 어릴 적의 실수를 반복하는 스스로에 실망하여 가차 없는 평가절하를 했던 것 같은데, 지금에 와서는 좀 대견한 마음으로. 샴푸가 눈에 계속 들어가면 뭐 어때. 더 이상 울지 않는다잖아.


그건 엄청난 변화다. 반복되는 일에 대한 나의 반응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거니까. 울지 않고 침착하게 샴푸를 씻어낼 줄 안다는 거니까. 그리고 그건 분명히, 그전에 이미 여러 번 눈에 샴푸가 들어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경험이 준 변화.


이번에도 거기서 힌트를 찾았다. 선택 뒤에 바로 후회가 드리우자 본능적인 두려움이 찾아왔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주저앉지도 않았고, 다시 돌아가겠다고 신을 찾으며 떼를 쓰지도 않았다. 그런 건 이미 어릴 적 다 해보았고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니까. 이만큼 나이를 먹고도 또 이러냐며 나를 혼내지도 않았다.


그저 침착히 걸었다. 내가 가지 않은 길을 미화하려는 내 속을 찬찬히 헤집으면서. 너 지금 또 불공평하게 굴고 있어. 이쪽에서는 단점만 보고 저쪽에서는 장점만 보고 있어. 정신 차려. 내가 내 속을 똑바로 직시하고 엄하게 굴 수 있었던 건 그간 여러 번 그 요망한 술수에 넘어가 자빠져보았기 때문이다. 역시, 경험이 준 변화.






인정하자. 나는 여전히 선택 앞에서 망설인다. 장고 끝에 선택을 하고는 후회한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해 멋대로 부풀려 상상하고 나를 원망한다. 아주 어릴 적부터 그래 왔고 서른이 넘어선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하나. 너 또 이러느냐고 혀를 츳츳 차면서도 운동화 끈을 동여맨다는 것. 좋은 점을 더 찾아보자며 수풀 속을 괜히 뒤져보고, 그래도 자꾸 저쪽 길을 상상하게 될 때면 일단 땀이 훅훅 올라오도록 뛰어본다는 것.


샴푸가 눈에 들어가도 울지 않는, 겨우 그 정도의 어른이 된 나를 칭찬하며. 지나간 모든 선택들이 나를 지금 여기 있게 했음을 알기에 그 모든 선택을 끌어안은 채 다음 걸음을 내디뎌 본다. 다음 갈래길을 마주하기 전까지 이번에도 뛰어볼 예정이다. 내 앞에 더 무수한 선택지가 펼쳐지기를 고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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