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뉴스를 보다가 재미있는 표현이 눈에 들어왔다. 늘공 vs. 어공. 어쩌다 공무원과 늘 공무원을 요즘 유행하는 말 줄임으로 빗대어 표현한 것이 신선했다. 그러면서 문득 드는 생각. 교사 집단도 세 부류 정도로 나누어지지 않나.. 어교. 늘교. 천교. 무슨 신흥 종교 이름 같기도 하다.
어쩌다 교사
기간제 교사는 휴직 교사의 대체 자리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 학교에 대략 10% 내외일 것이다. 한 학기 또는 1년 단위가 많고 때에 따라서는 2~3개월의 단기 근무인 경우도 있다. 계약 기간이 정해진 것 외에 학교에서 계약직과 정교사의 업무가 따로 분리되거나 아이들에게 알려지거나 하는 일은 없다. 얼마 전 기간제 교사가 주인공인 블랙 독이란 드라마가 방영되었는데 초반 몇 회 보다가 그만두었다.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썼다는데 대한민국에 저런 학교가 존재한단 말이지.. 내가 속한 현실 세계와의 괴리감에 마음이 불편하여 더는 찾아보지 않게 되었다. 다른 직종은 모르겠다. 비정규직 이슈가 워낙 민감하다지만 막상 학교현장에서 나의 동료 교사가 기간제 교사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아이들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노력하는 모습은 나와 다르지 않다. 내가 모르는 비정규직으로서 느끼는 불공정함은 분명 있을 것이고 당사자도 아닌 내가 아는 척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들은 어쩌다 교사가 되었지만, 학교에서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이다.
늘 교사
임용고시에 합격하면 정년이 보장되는 늘 교사가 된다. 과감하게 이직을 하거나 장학사로 전직을 하거나 명예퇴직을 하지 않는 한, 한번 교사는 영원한 교사다. 한 학교 근무 기간이 평균 4~5년이니 대략 다섯 학교 정도를 거치면 퇴직을 앞둔다. 늘 교사 10년 차 정도가 되면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 학교 업무와 수업이 익숙해져 지금 생활에 만족하는 만큼 도전이나 변화에는 둔감해진다. 이 시기에 한 번쯤 승진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않은 교사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15년 차 정도가 되면 승진 코스파와 현상유지파로 나뉘게 된다.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하고 직급의 이동으로 성취감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은 관리자가 되기 위한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한다. 주변에 장학사 시험을 준비하거나 대학원 이상의 학업 코스를 밟거나 교육청이나 외부기관 활동을 활발히 하는 교사들이 은근히 많다. 모두가 승진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겠지만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한 노력임은 분명하다. 문제는 이런 선생님들은 학교 업무를 병행하기 때문에 어느 쪽에 치중하느냐에 따라 다른 한쪽은 소홀해지기 쉽다. 수업 교환이 잦고 담임 업무에 빨간 불이 켜지면 동료 교사에게 좋은 소릴 듣기 힘들다. 때로는 짠하게, 때로는 이기적으로 비치면서도 그들은 멈춤 버튼을 누르지 않는다. 반면 현상유지 파는 그 매너리즘을 건설적으로 해소하는 부류와 표류하는 부류가 있다. 건설 파는 적극적으로 도움이 될만한 연수를 찾아 듣고 교과 연구회 활동에 참여하면서 교사로서의 역량을 꾸준히 키우려고 노력한다. 주변에 평교사로 퇴임을 기다리면서도 교사로서의 열정과 책임감을 끝까지 놓지 않으시는 선생님들을 보면 나에게도 큰 자극이 된다. 표류 파는 언급하지 않겠다. 그냥 부끄럽다.
천상 교사
천상 교사들이 있다. 항상 자신보다 아이들이 먼저인, 퇴근 후에도 주말에도 수업 준비와 학교 업무에 올인하는 이들이 있다. 밥 먹을 때에도 본인 반 학생 이야기를 하고 늦은 시간에도 아이들의 온갖 질문과 민원을 해결한다. 아침에 1등으로 출근해서 수업 자료를 정리하고 학생을 일찍 등교시켜 개별 상담을 나눈다. 그게 나라고 자랑하고 싶지만 아니다. 해마다 새로운 교무실에 배정받으면 만나게 되는 한두 명의 천상 교사 이야기다. 매너리즘 표류자들은 이런 천상 교사들에게 꼭 한 마디씩 한다. 김 선생님 그렇게 열심히 하면 금방 지쳐요. 병나. 적당히 해요. 천상 교사들은 불평이나 불만을 표시하지 않는다. 그렇게 열심히 하다 보면 몸도 피곤하고 짜증도 날법한데 미소 천사가 따로 없다. 누가 시켜서가 아닌, 본인들이 좋아서 하는 것이니 주변에서 각종 조언과 핀잔을 남발해도 그들은 꿋꿋하다. 그래도 가끔은 무슨 나라를 구한다고 저렇게까지 정성을 쏟나 싶을 때가 있다. 저런 건 애들 시키지.. 그런다고 고마워하지도 않는데.. 싶다가도 천상 교사의 끝도 없는 배려심과 착한 심성에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때로는 융통성이란 말로 “적당히”란 단어를 끌어다 쓰며 현실과 수시로 타협했던 나로서는 이런 천상 교사들이 인간 로봇 같기도 하고, 그대 앞에만 서면 한없이 초라한 별 볼 일 없는 교사가 된 것 같아 괜히 울적해질 때도 있다. 그렇지만 천상 교사들이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월에 무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모습 그대로 변치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