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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미니 Oct 05. 2020

어느 싱글 여교사의 고백

애가 몇 살이라고 했지? 급식실 맞은편에 앉은 왕고참 박 선생님이 어색한 정적을 깨고 묻는다. 본인으로서는 아이스 브레이킹을 위한 나름의 노력이라지만 차라리 침묵을 택하시지...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이 선생은 눈으로 레이저를 쏘며 차분하게 받아친다. 아이 없는데요. 솔직히 저 미혼입니다 하면 끝날 것을 괜한 심술에 하나씩 정보를 흘리는 이 선생. 아, 그럼 아직 애가 없는 건가?.. 분명 당황했을 텐데 포기를 모르는 의지의 한국인. 저 결혼 안 했는데요.. AI의 답변인가 싶을 만큼 무미건조한 대답을 하고는 밥을 욱여넣는다. 아.. 허허. 이선생 아직 많이 젊구나. 뭐래. 헐. 왕짜증. 

어떤 집단에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다수가 되면 그들이 공유하는 어떤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여인천하인 학교에서는 결혼과 출산이 그것이다. 아무리 1인 가구가 증가하고 딩크족이 대세이고 인구절벽의 심각성이 대두된다 하더라도 기혼이 절대 다수인 학교 안에선 딴 세상 이야기이다. 여전히 소수의 싱글족들은 학교 일상에서 결혼에 대한 사적인 질문들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사십 줄에 들어서면 결혼했느냐는 질문은 아예 생략된 채 바로 자녀부터 물어본다. 명절마다 많은 젊은이들이 스트레스받는 질문 1,2위라던데 이건 뭐 매일이 명절이다. 

일단 아이를 출산하면 여성의 삶은 180도로 바뀐다. 가정과 직장을 병행하는 워킹맘의 삶이 얼마나 힘들고 고단한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충분히 존경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가끔은 묘하게 뒤틀려있는 그들의 심리가 대체 뭔지 궁금할 때가 있다. 예민한 이선생의 신경을 건드리는 말 중 하나. 아니 빠지는 게 하나 없는데 왜 결혼을 안 한 거야. 그걸 알면 내가 아직 이러고 있겠니? None of your business. 앙칼지게 한 소리 하고 싶지만 억지웃음을 짓고 만다. 그리고 이어지는 레퍼토리. 그래. 골치 아픈 결혼 뭐하러 해. 이 선생은 하지 마. 남자 잘못 만나서 고생하느니 그냥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 아.. 근데 자식은 있어야 되는데.. 자식이 주는 기쁨은 무엇과도 비할 수 없어..로 시작되는. 뭐지 이 앞뒤 안 맞는 아무 말 대잔치는. 본인 인생부터 먼저 정리가 필요한 것 같은 이 느낌적인 느낌은. 

교사는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후에도 확실한 근무가 보장되는 몇 안 되는 직업 중 하나이다. 정시 퇴근과 방학, 육아 휴직, 육아 시간은 이 선생이 교사를 직업으로 선택할 때 분명 고려했던 부분이었고, 교사만큼 여성들에게 애국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는 직업도 흔치 않다. (모두가 기피하는 고 3 담임 배정을 두고 이선생과 둘째 계획 중이라는 A교사가 교감에게 불려 갔다. 올해는 제발 빼 달라고 사정하는 이 선생에게 교감이 말했다. A 선생은 지금 애국하는 거야. 이 선생이 배려해 줘야지) 그럼에도 우는 내 자식을 떼어놓고 나와서 남의 자식들 가르치고 보살피느라 에너지가 방전되는 워킹맘 교사들을 볼 때면 감정적으로 짠한 동요가 일기도 한다. 물론 이 선생은 이 모든 것에서 자유롭다. 남편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자식을 위한 희생도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다. 그래서 왕고참 박 선생님은 한 입으로 두말을 했던 것인가. 이 선생이 누리는 자유가 때로는 부럽다가도 너는 아직 진정한 어른이 아닌 거야 하면서 자기 위로를 하고 싶어서.

압도적 다수가 결혼과 출산을 경험하는 교직 사회에서 이 선생처럼 마흔을 전후한 싱글들은 호기심의 표적이 된다. 조금만 방심해도 결혼에 대한 질문이 훅 들어온다. 그렇다고 이 선생이 비혼 주의자는 아니다. 이쯤 되면 비혼 주의자를 선언할 법도 한데 그녀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안 한 건지 못한 건지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눈이 높아서, 아직 인연을 못 만나서, 친구들과 노는 게 좋아서.. 그들은 자꾸 이유를 들이미는데, 그냥 어찌어찌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말고는 정확한 답을 못 내놓겠다. 나 혼자 산다 속 싱글들만큼은 아니어도 충분히 당당할 수 있건만 교직 사회 안에서 이 선생은 자꾸 움츠러든다. 50줄에 들어서면 더 이상 묻지 않으려나. 시대가 변했다고들 하는데 이 선생은 교사를 시작했던 17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질문에 응대하고 있다. 더 노련해지고 덤덤해졌지만 소수는 언제나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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