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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미니 Oct 10. 2020

2020년 교실이데아

# scene 1

교사는 오늘도 열심히 강의 중이다. 앞자리 서너 명이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에 집중한다. 교탁 앞 그들만의 세상이 끝나면 다음 줄을 경계선으로 교실 뒤편은 새로운 공간이 펼쳐진다. 다른 교과의 문제집과 노트가 책상 위에 펼쳐져있다. 태블릿으로 인강을 시청하는 한 학생의 뒷모습이 보인다. 몇 명은 엎드려 자거나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니 앉아있다. 한 교실 속 두 개의 공간. 수능을 앞둔 고3 교실이다. 옆반으로 이동해보자. 불이 꺼져있다. 서너 명의 학생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수다 삼매경이다. 다 어디로 간 거지. 담임과 대화 중인 한 학생이 눈에 들어온다. '선생님 저 현체 쓸게요. 애들도 다 쓰는데 저도 집에서 그냥 수능 공부할래요.' 아.. 현장 체험 학습... 코로나 19로 이용기간이 40일로 늘어났지. 수능 이후 교실 붕괴가 올해는 좀 더 앞당겨졌다. 2020년 고3 2학기는 이렇게 소멸 중이다. 

# scene 2

교사는 오늘도 긴장 중이다. 마스크를 쓴 학생들의 눈빛이 매섭다. 유독 한 학생이 신경이 쓰인다. 무표정한 얼굴로 팔짱을 낀 채 면접관처럼 앉아있다. 가끔 미간이 찌푸려지거나 고개를 살짝 갸우뚱할 때면 오늘은 또 어떤 날카로운 지적질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심산인지 궁금해진다. 좋은 학교에 발령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긋지긋한 생활지도에서 이제 벗어날 수 있구나 쾌재를 불렀는데, 아싸가 되어버린 이 기분은 뭐지. '선생님 12번 문제 잘못 내신 거 아니에요? 저희 학원 선생님이 답이 이상하 대요.' '김 선생님, 어제 학부모 한 분이 전화를 하셨는데 수행평가 그거 조별 활동으로 했어요?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시는데 그냥 안 넘어가실 것 같아.' 학생들이 좋은 학교에 온 이유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라는 걸 김 선생만 모르고 있었다. 성적과 생활기록부에 세상 예민한 그들 앞에서 김 선생은 오늘도 새우 등 터지고 있다. 

*아싸 : 아웃사이더의 준말

# scene 3

찰나의 순간이었다. 주먹질이 오고 간 것은. 우당탕탕 소리에 난장판이 된 교실. 한 학생이 분을 참지 못한 채 말리는 친구들에게 질질 끌려 나온다. 허공에 대고 분노의 발길질과 쌍욕을 날리며 나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봤지.라는 저 눈빛. 여교사는 절망한다. 힘으로는 제지가 불가능하다. 타이르듯 만류해보아도, 목소리를 높여봐도 분이 풀리지 않은 가해자는 상관 말라며 씩씩거리고 있다. 한때의 객기로. 사춘기 시절 겪는 질풍노도의 순간으로 치부되기엔 결코 가볍지 않은 사건들이 학교 일상에 침투해 있다. 학교 폭력은 더 잔인하고 비열하고 교묘하게 진화해왔다. 언제나 그렇듯 맞은 놈만 억울하고 가해자의 인권은 존중받는다. 당사자들 간의 합의가 성립되면 그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지만 사건을 목도한 다수의 학생들의 상처와 충격은 보듬어지지 않고 방치된다. 폭력의 처리 방식을 학습한 가해자들의 미래는 어떨지. 교육의 목표가 무색해지는 교실 붕괴의 현장. 과연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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