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립백

by 예미니

믹스보단 나은데 드립 커피보단 못해

드립 내릴 상황은 아닌데 분위기는 한껏 내고 싶어

애매하고 아쉬울 때 그런대로 유용하게

무엇과 무엇의 중간 어디쯤

넌 딱 내 재능을 닮았구나


이 나이 되면 알게 되는 사실 한 가지. 내가 그다지 재능 있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 실력과 욕심이 비례하지 않을 때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 그 쓰라림이 싫어 위로와 희망의 예방주사를 여러 번 맞아도 그 사실은 변함없다. 그러면 다시 과정의 소중함에 집착하며 주어진 환경에서 나름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의미 있는 삶이라고 나 자신을 다독여 본다. 어느 날 멍하고 답답한 정신을 깨우고 싶어 원두커피를 내리려고 보니 마침 똑 떨어졌다. 아쉬운 대로 드립백 하나를 들었다. 평소보다 힘을 더 주어 절취선을 뜯은 모양이다. 종이 드립백 한쪽이 터지면서 안에 있던 원두 가루들이 사방에 날린다. 당황과 짜증으로 악 소리 한번 지르고 바닥을 째려보고는 흩어진 가루들을 모아 아쉬운 대로 향기만 흡입한다. 어차피 일회용, 새 봉지 하나 더 꺼내면 되는데 예민한 성격을 누르지 못하고 참아왔던 감정이 폭발한다. 넌 정말 제대로 하는 게 뭐니!

잘 나가는 사람들의 인터뷰 영상을 볼 때 두 가지 반응이 있다. 첫 번째는 "와~ 대단하다. 나는 저렇게는 못 살지." 다른 하나는 "와~ 대단하다. 나는 왜 저렇게 못 살지?" 당신은 어느 쪽인가. 절반만 채워진 물컵을 두고 분명 나는 반이나 찼네가 아닌 반밖에 못 채웠네라고 말할 것이다. 불만족을 추진력 삼아 전진하는 인생. 어중간한 재능과 욕심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생. 세상은 실패 끝 성공의 휴먼 드라마에는 열광해도 영원한 실패의 쓸쓸한 결말은 외면하고 싶어 하지 않나. 희망이 있어야 사람이 살지만 때론 그 희망고문에 우리는, 아니 나는 너무 많이 지쳐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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