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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미니 Nov 19. 2021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지금 아이들은 교사나 연장자에게 배운 지식으로 인생을 준비해 나가는 게 불가능한 첫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인생이 배우는 시기와 배운 것을 써먹는 시기로 나뉘던 시대는 지났다.”             - 유발 하라리 -

 미래 시대를 논함에 있어 4차 산업혁명과 인구감소, 인공지능은 빠질 수 없는 키워드이다. 복고 열풍이 불고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가 넘쳐나도 과학은 전진하고 변화는 계속되며 불확실성은 증가한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세대별 격차와 차이는 존재했지만 지금처럼 경계와 영역이 확실히 분리된 때는 없었다. 포노 사피엔스라 불리는 MZ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을 자신의 일부로 여기는 디지털 네이티브이다. 이들의 사고방식, 라이프 스타일, 가치관 등은 '꼰대'라 불리는 기성세대의 삶과 완벽히 구분된다. 더욱이 코로나 19로 촉발된 비대면의 일상화, 거리두기, 개인주의 행태는 미래 세대의 생활 방식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다. 얼마 전까지 훈계와 지도의 대상이었던 이들 세대는 우리 사회의 주류가 되었다. 기성세대는 지식 전달자에서 새로운 지식의 학습자로 전환되었다. 지식은 빠르게 소비되고 불필요한 정보는 곧장 폐기 처분되면서 복잡하고 불확실한 변화에 편승한 이들과 올라타지 못한 이들 사이의 간격은 점점 벌어지고 있다. 미래라는 아름다운 내일은 천천히 다가가면 될 줄 알았는데 어느 날 정신 차려보니 눈앞에 소환되어 사람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문제는 변화의 속도가 아니라 방향성이다. 빠른 것은 좀 버거워도 쫓아가면 된다. 그러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여유 정도는 주어져야 옳다. 어쩌면 고루하게 들릴 정의, 자유, 진리, 그리고 선과 악에 대한 경계가 모호해지고 모든 것은 상대성의 논리로 풀어버리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학교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배움과 성장, 그리고 소통의 인연으로 재구성하는 공간이다. ”  - 루이스 칸 -

 코로나 19로 학교가 멈추고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던 그때에 많은 이들은 생각했다. 학교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누군가는 학교가 멈추니 비로소 학교가 보였다고 말한다. 학교라는 공간이 제3의 교사로서 배움을 담아내는 곳이자 함께 모여 소통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하는 곳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코로나 19가 보여준 디지털 세상의 무한한 잠재력은 교육이 물리적 공간의 제약을 넘어서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질 수 있음을 시사하였다. 캠퍼스 없이 온라인으로만 진행되는 미네르바 스쿨이나 칸 랩 등의 성공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래 교육은 기존 오프라인 교육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전통적인 학교 공간이 미래 세대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창의성을 발현하는 데 기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학교 밖 세상보다 한 세대 뒤쳐진 채로 시대의 변화와 요구에 민감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이미 사교육 시장은 에듀테크 기반 사업을 확장하여 다시 또 한 발 앞서가고 있다. 이들이 제공하는 새로운 학습 지원 시스템은 AI가 분석한 학생 개인의 학습 이력에 따라 학생에게 필요한 맞춤형 학습자료를 무한히 제공한다. 이는 미래 교육이 요구하는 개별 맞춤형 학습 시스템을 표방하는 것이다. 이를 학교라는 물리적 공간에서 실현하기 위해서는 인터넷 망 구축, 1인 1 디지털 기기 보급, 교사의 디지털 역량, 유연한 학교 교육과정 운영 등 온라인 환경의 완벽한 지지 기반이 필요하다. 여기에 엄청난 예산과 투자, 혁신에 대한 교육 공동체의 지지, 인내, 협업 등의 이상적인 결합이 완성되어야 가능하다. 학교에 대한 이러한 투자가 낭비일 수도 있다. 획일화된 전통적인 학교 건물에 에듀테크 환경만 구축된다고 해서 갑자기 미래학교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비대면 환경이 익숙해진 코로나 세대들은 예전보다 학교 가기를 더 귀찮아하고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사회성 습득에 어려움을 느낀다. 기술의 편리함에 동화되어 스스로 기계화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학교는 바로 이런 부분을 해소해 주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다. 인간만이 할 수 있고 인간이기에 가능한 영역, 사람 간의 소통과 인연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온전한 교육 공간이 바로 학교이다. 물론 그동안의 학교 교육이 이러한 기능을 제대로 수행했는가에 대해서는 성찰이 필요하다. 학생을 온전한 인격체로, 한 명 한 명의 고유한 주체로 인정하고 그들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노력이 부족했다. 100명의 학생에게 100개의 잠재력을 발현하도록 지지해주고 지원하지 못했다. 여전히 학교는 배워서 써먹기 위해 존재하는 지식 전달과 학력 중심의 공간이었다. 게다가 교육 현장 곳곳에 여전히 존재하는 불통의 사각지대 - 바뀌지 않는 대입제도, 변화를 저지하는 기득권, 자발성을 잃어버린 교육 주체들 - 은 오랜 시간 학교 교육을 잠들게 했고 저항감을 키웠다.


“교육은 들통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불을 지피는 일이다. ”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학교는 신음 중이다. 그러나 그 소리가 안에서만 울려 퍼진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교육에도 많은 변화가 있어왔다. 중학교는 자유 학년제가 정착되고, 고등학교는 고교학점제 도입을 준비 중이다. 미래학교로의 전환을 목표로 낡은 학교를 개축하는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 사업도 진행 중이다. 개축 대상이 아닌 학교들은 공간혁신을 위한 공간 재구조화 사업이 한창이다. 학생의 주도성과 학습 선택권을 강화하는 교육과정은 계속 진화 중이고 학교 밖 마을교육 공동체를 통한 마을학교 모델이 다양해지고 있다. 코로나 19로 어린 학생들의 돌봄 문제가 사회 이슈가 되면서 학교와 지역의 협력을 통한 돌봄 체제가 강화되고 있다. 비대면 온라인 수업 환경 개선을 위한 에듀테크 구축 사업도 진행 중이다. 요즘 학교를 보면 본질에 충실한 수업보다는 정책과 사업에 더 집중하는 모양새다. 물론 미래 교육으로의 전환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변화를 위한 움직임은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관이 주도하는 일방적인 사업 프로세스를 따라가야 하는 학교 입장에서는 악 소리가 나지 않을 수 없다. 한정된 예산과 촉박한 일정, 현실 여건을 고려한 감수 부분 등은 고스란히 학교 현장에 남겨진다. 이런 시스템에서 학교는 교육가가 아닌 행정가를 양산하게 된다. 기획력과 문서 작성, 끝도 없는 회의가 업무 담당 교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인가. 미래교육에서 교사에게 요구된다는 그 역할 - 학습 전략 안내자, 개별 피드백 평가 전문가, 학습과 삶을 연결하는 맥락가, 삶의 통찰을 제공하는 파수꾼 등 - 이 중에서 교사는 어떤 전문가가 되었나. 

 최근 교육부는 코로나 19 이후 기초학력 부진 해소를 위한 교육회복지원 방안 정책을 내놓았다. 그리고 학기 종료 3개월을 남긴 시점에 일선 학교에 일괄 예산이 배정되었다. 구체적으로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하는 것은 학교의 몫이다. 교육부가 정책을 발표하면 예산이 더해지고 그것의 최종 사용처는 학교이기에 이 과정이 딱히 새롭지는 않다. 그러나 문제는 순서에 있다. 학교가 계획을 세우고 필요한 예산을 결정해서 요청한 만큼 집행해야 낭비가 없다. 학교가 예상하지 못한 시기에 예상하지 못한 금액을 일방적으로 내려보내는 이 비효율적인 시스템이 언제쯤 개선될까. 언제까지 학교는 기존 시스템의 관행적 행태에 허덕이고 헤매면서 그 소리를 담장 밖으로 전달하지도 못한 채 계속 아우성만 쳐야 하는 것일까. 미래교육이라는 거대 담론을 논하기 전에 일하는 방식과 태도, 업무 체계가 미래 지향적으로 개선되는 일이 가장 시급해 보인다. 


 우리는 그동안 채우는 일에 급급해왔다. 구축하고 조성하고 제작하고 마련하고 제공하고 보급하고 공유하고 지원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며 달려왔다. 이제는 비우는 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과감히 버리고 바꾸고 고칠 일들이 학교 일상에 너무 많다. 그것을 덮고 그 위에 새로운 집을 짓는다고 해서 바로 미래 교육이 될 수 없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은 한가한 소리가 아닌 본질에 충실하라는 말이다. 학교의 존재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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