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3월을 보내주었다.
늘 같은 3월이지만, 올해의 3월은 유난히 치열했다.
이게 맞나 싶은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고,
안 그래도 없는 시간을 더 쪼개 써야 한다는 부담이 나를 자꾸 숨 가쁘게 만들었다.
‘아, 정말 못 하겠네.’
그 생각이 올라올 때마다 나는 오히려 5분, 10분을 쪼개어 읽으며 버틸 수 있었다.
치열했던 3월을 달래준 건 그 찰나에도 읽고 쓰는 사람으로 살고자 했던 나였다.
어쩌면 나는 쓰는 일에 조금 더 용기를 내게 되었고,
조금 더 멀리 볼 수 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김이설 선생님과 함께 여덟 번의 소설의 밤을 보내고,
예소연 작가를 만난 이후
나는 단지 ‘쓰는 사람’이 아니라 ‘쓰고자 하는 것에 철학을 가진 사람’으로 살고 싶어졌다.
그 태도가,
그 목소리가,
그 마음이 참 멋있다고 느꼈다.
멋있으면 다 언니라는 말처럼 “언니” 하며 와락 안기고 싶었다.
지친 일상 속에서도
지금 이 시간과 공간,
그리고 지금 만나는 사람들이
나를 더 멀리 데려가 줄 것이라고,
혹은 내가 그들을 더 멀리 데려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그렇게 3월을 만났다.
“내가 소설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소설이 나를 만든 것일 수도 있다.”는 김이설 작가님의 이야기는 단순히 읽고 쓰는 것을 넘어
아이들과 나와의 관계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 세계에 속하기 위해,
배제당하지 않기 위해 애썼던 시절의 아이들.
우리는 그렇게 자라 담담한 사람이 되었지만,
조금은 덜 담담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꺼내볼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나의 삶을 대체로 비관하지만
늘 비관하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나는 그 시절의 나를 싫어하지 않는다.
내가 노력해서 인물들에게 바른 장면을 선사하는 일,
그것은 해볼 만한 일이다.
모두를 구제하는 일이니까.
(어느 순간을 바리키자면, 예소연 작가)
3월,
내가 참 귀여워하고 아끼던 아이가 전학을 갔다.
그 작디작은 아이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을 순간,
혹은 이미 지나왔을지도 모를 그 시절에
나는 어떤 사람으로 남게 될까.
그 아이보다
어쩌면 나에게 더 크게 남은 시간이었다.
나는 그 아이를
조금 더 멀리,
조금 더 자신이 원하는 자리로
보내고 싶었다.
그리고
보낼 수 있었다고 믿고 싶다.
그 마음을 끝내 붙잡을 수 있었던 건,
소설을 쓰는 사람의 마음을 조금 배웠기 때문일 것이다.
서둘러 결론 내리지 않고,
그 아이의 시간을 하나의 장면으로 남겨두는 일.
어쩌면 쓰는 일은
나 자신을 구제하는 일인 동시에,
누군가를 조용히 밀어주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계속 읽고, 계속 쓰려고 한다.
치열했던 3월을 지나
조금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