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싶던 그림

드디어 멤버 모집이 완료되었다.

by 소화

포르투갈 여행을 준비하며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꼭 필요한 멤버가 있었다.


바로, 나의 스타일리스트 엄마.

아이와 둘만 가는 것이 불안하니 장모님을 꼭 모시고 가면 좋겠다는 신랑의 바람이 담겨있기도 했다.


여행을 준비하며 나의 구애는 시작되었다.

"엄마, 이번 겨울에 나랑 같이 여행 안 갈래? 유럽 가려고 하는데."

"안돼. 다녀온 지 얼마나 되었어."

"엄마 4년 지났어."

"코로나도 심해서 안돼"

"엄마 코로나 이미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야."


여기까지는 진부한 거절이다.


다시 일주일 후

이제부터 조금씩 거절의 솔직함이 묻어 나온다.

"엄마 생각해 봤어? 같이 가자."

"안돼. 그럼 꽃에 물을 누가 줘. 이걸 누가 관리 하겠어. 안돼~"


좀 인정되는 거절이다.

그래 우리 엄마의 그 많은 꽃을 누가 대신 관리해 주겠어.

유럽은 아무래도 2주는 다녀오게 될 텐데 엄마 말도 일리는 있다.


"동생에게 맡기면 될 거 같은데."

"그 애가 뭘 하니. 안돼."


나도 한 발 물러섰다.

다시 또 일주일 뒤

"엄마~ 그래도 같이 가자. 나 혼자 테오랑 가면 오빠가 걱정이 많아. 그럼 우리 둘 다 못 간단 말이야."

이번에는 엄마 때문에 나의 여행이 성사되지 않을 수 있다는 협박을 해 본다.

"안돼. 그 시간 동안 내가 없으면 아빠는 심심해서 어쩌니."


아... 도저히 더 이상 권할 수 없는 엄마의 가장 큰 이유는 아빠이다.

엄마가 긴 시간 집을 비우면 아빠가 혼자 계셔야 한다.

아빠도 같이 가시면 좋지만, 아빠는 해야 할 일과 오랜 시간 비행은 힘들어하셔서 유럽은 어려워하신다.

식사 준비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셔서 잘 해 드시겠지만

저녁이면 그 적적함과 매 주말 엄마와 함께 드라이브 다니시는 게 유일한 삶의 재미이신 아빠가

심심하시긴 할 듯하다.


도저히 더 이상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그 사이 시간은 흐르고 엄마의 마음은 변함이 없다.

그 사이 나는 지난 여행의 사진을 엄마에게 이따금씩 보냈다.

'엄마, 이 시간이 그립지 않아?'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느닷없이 밤 11시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왜? 무슨 일 있니?"

"아니, 엄마 지금 티켓팅했어. 이거 취소도 못해. 취소하면 수수료 50%는 내야 해."

"미쳤나 봐 얘가."

"취소해? 그냥 50% 버려?"

"못살아. 알았어 일단 내일 아빠한테 이야기 좀 해보고."


역시 버려질 돈이 아까우신 엄마는 마지못해 승낙을 하셨다.

티켓팅을 이미 했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나도 그 정도의 계산은 할 줄 안다.


휴, 드디어 멤버 모집이 완료되었다.


나와 아이. 그리고 엄마까지 함께하는 그 그림이 나의 포르투갈 여행에서 내가 그리고 싶었던 그림이다.

지난 여행에서도 우리 셋은 함께 했었다.

나와 엄마는 물론 엄마와 아이, 우리 셋은 호흡이 참 잘 맞는다.

외할머니에게 특별한 애정을 느끼는 아이도

할머니가 꼭 가야 한다는 엄포 아닌 엄포를 놓으며 이 여행을 더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원하던 그림은 이런 것이었다.


엄마가 그토록 아끼는 아빠와 꽃, 그리고 같이 간 나와 손주 모든 것을 내려놓고

바닥에 털썩 앉아지는 해를 바라보고, 또 뜨는 해를 느끼는 것.

지금껏 가족들을 다정하게 키워주신 엄마도

세상의 다정함을 누구의 방해도 없이 바라볼 수 있는 시간.


때로는 손자의 눈높이에 맞추어 골목에서 점프도 해주고

숫자세기도 해주고, 함께 브이도 해 주는 내려놓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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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주익 성에서 노을을 바라보는 엄마

그리고 또 골목을 지나가다가 꽃가게가 나오면 걸음을 멈추어

집에 없는 꽃은 없는지

이 여행지만의 특별한 식물은 없는지 한참 관찰을 하고,

비슷하게 생긴 꽃의 이름을 찾아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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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꽃가게에서 꽃을 보고 있는 할머니와 아이

앉으나 서나, 기차를 타도 늘 손에서 놓을 수 없는 뜨개질 장인 엄마.

우리나라에서 구하기 어려운 실과 뜨게 바늘을 구할 수 있는 가게에 들러

한참을 구경하고 여행지에서도 손을 바쁘게 놀려 작품을 완성해서 들고 오는 것

엄마는 독일에서도, 스페인에서도 늘 가는 곳마다 털실가게를 들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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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실가게 앞에 멈춰선 엄마
KakaoTalk_20240108_235226080.jpg 바르셀로나에서 마드리도로 향하던 기차 안. 동서양의 할머니 셋 모두가 뜨게를 하고 있었다.


작은 골목책방에 들리면

혹시 유럽자수가 소개된 책은 없는지 살펴보고

마음에 드는 도안이 있는 책이 있으면 살까 말까 백번을 고민하고

그냥 돌아서다가

제발 사시라는 딸의 성화에 못 이겨 하나 구입하는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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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번 여행에서 꿈꾸고 나누고 싶었던 시간은 이런 것이었다.


그리던 그림이 잘 디자인되도록 그 마지막 열쇠를 쥐고 있던 멤버 '엄마' 마지못한 합류가 결정되고 나니

여행 계획에 속도가 붙는다.


단 30분 만에 여행지의 숙소를 결정했고,

방문할 곳, 대략적인 소도시 이동 계획도 세웠다.


그저 여행이 끝난 후,

"딸을 잘 키워서 좋네. 고마워. 덕분에 좋은 시간 보냈어."라는 엄마의 말 한마디면

이 그림은 완벽해진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것뿐이다.


우리 셋 다시 환상의 멤버가 되어 떠날 계획이다.


둘보다는 셋,

그리고 그 셋이 되어

마음 푹 놓고 우리의 여행을 응원하게 된 신랑의 마음까지 모아 우리 넷.


그 멤버가 모두 모여 여행이 시작된다.

참 예쁜 그림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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