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중에는 집은 잠만 자고 쉬어가는 곳,
방학이 되어서야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있다.
하지만 온종일 내 집을 누려본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 짧은 휴가가 주어진 며칠.
온전히 주어진 집이라는 공간에서 시간 동안 이루어지는 나의 행동은 너무나 단순하다.
소파 위에서 책을 읽고,
침대 위애서 잠을 자고,
주방에서 간단한 먹거리를 한다.
보통의 행동을 하는 동안 거기에 더해지는 행위 또한 비슷한다.
책을 읽는 동안은 가사가 없는 음악을 듣는다.
주로 책 읽을 때 듣는 클래식 음악, 조용한 카페 음악이라는 목록으로 구성된 음악들이다.
요리를 하거나, 주방에서 움직일 때는 팟캐스트 '책읽아웃', '여둘톡'을 주로 듣는다.
아이가 있을 때도 늘 우리 집에서 들리는 소리는 비슷하다.
한참 교육이 필요한 연령의 아이이지만 아이를 위한 방송이나 음악보다는 모든 것이 내 위주이다.
저녁을 준비하며 오늘도 어김없이 '책읽아웃' 팟캐스트를 들으며 반찬을 만들고 있었다.
냉장고를 오고 가며 아이를 거실을 보니
아이는 책을 보고 있다.
문득, 내가 책을 읽는 동안에는 내 위주로 음악을 선택했는데
조용히 책을 읽는 아이에게 지금 내가 듣고 있는 방송이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한 번도 아이의 관점에서 생각해 본 적이 없고, 늘 내 위주의 빈 배경을 채우려는 구성이었던 것이다.
"테오야. 엄마 지금 ' 책읽아웃' 듣고 있는데, 혹시 테오 책 읽는데 방해되니?"
"아니, 괜찮아."
"알겠어. 고마워. 소리만 조금 줄일게. 너무 방해되는 것 같으면 말해줘."
"응."
아이도 조용히 읽고 싶은 책이 있을 테고, 듣고 싶은 음악이 있을 텐데 물어본 적이 없다.
늘 내가 기기를 만질 수 있으니 내 위주였다.
물론 엄마가 그 정도도 못 누리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러기엔 내가 너무 많은 것을 아이에게 맞춰주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
문득 부끄러웠다.
에어팟을 낄까 하다, 조용히 음량을 줄였다.
늘 아이를 위한다고 생각하고, 나의 삶이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내 중심이다.
아이를 위한다는 것조차도 내 마음 편하자고, 내 몸 편하자는 움직임일 때가 많다.
가만 보면 아이가 나보다 더 깊게 나를 배려한다.
아이가 나보다 더 나의 행동과 마음을 맞춰준다.
나보다 낫다.
여러모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