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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화 Mar 05. 2024

선생님, 짜장면 가게에서는 언제부터 일할래요?

2020년 코로나의 시작과 함께 지금 학교로 발령받아 왔으니, 이제 5년째 이곳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한 학교에서 최대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5년. 특별한 경우로 유예할 일이 없다면 나는 올해 이곳에서의 근무가 마지막이다.


내년의 오늘은 학교, 동료, 아이들 모든 새로운 것들을 마주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겠지?

그동안 내신철이 되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했었다.

"나 가고 난 뒤에 후임이 와서 대체 아이들을 위해 뭘 했냐고 하고, 학교 옮기려면 청소도 해야 하는데  교실 청소도 하기 싫어서 내신 못써."

피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기에 한 해 두 해 미루고, 집과 가장 멀리 위치한 학교여도 아침마다 속도 전쟁을 다닌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니 더 이상 피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올해는 마무리의 해이기에 잘해놓아야 한다.


특별히 학급 이동도 없어 이동을 하지 않는다면 같은 아이들을 여러 해 만날 수 있다.

한 아이의 시간을 2,3년 길게는 5년을 함께한다는 것은 엄청난 영광이다.

하루하루의 성장은 바쁘다는 핑계로 눈에 넣지 못해도

1년, 2년 쌓여 나만의 속도로 분명히 자라고 있는 아이들의 성장을 만날 수 있고 아이의 성장에 더욱더 큰 책임을 느끼게 된다.


힘찬이와도 어느덧 4년을 함께 보낸다.

힘찬이와 1학년 입학부터 함께 했으니 우리는 4년 동안 적어도 1년의 190일 이상은 만난 것이다.

지적장애가 있는 힘찬이는 나는 선생님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학교에 가면 늘 있고 나를 반쯤은 돌봐주려고 하는 사람에 더 가까울 수 있다. 아이들이 학교에 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처럼 선생님도 학교에서 일을 하는 하나의 직업이 아닌 우리처럼 그냥 매일 학교에 나오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선생님이 하는 일이 본디 공부를 알려주고 놀아주고 돌봐주는 것이기에 지금 이 선생님은 몇 년째 힘찬이의 일은 하지 않고 원래 하던 일을 하며 학교에서 노는 사람으로 생각되는 것 같다.


힘찬이의 어머니는 동네 중국집에서 일을 하신다. 그리고 힘찬이를 돌봐주시는 활동보조인도 가끔 그 중국집에서 일손을 돕는다. 힘찬이를 둘러싼 주변의 모든 성인여자들은 다 그곳에서 일을 하는 셈이다.

아이가 학교에 오는 것처럼, 학교에 가면 내가 늘 있는 것처럼, 여자 성인들이 중국집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힘찬이에게는 당연한 논리이다.


어제 하교시간, 진지하게 힘찬이가 나에게 묻는다.

"선생님은 대체 언제부터  XX짜장에서 일할 거예요? 우리 엄마도 하고,  도우미샘도 하고 다 하는데 선생님은 언제부터 할 거예요?"

"응? 나 XX짜장에서 일해야 해?"

"해야죠. 언제까지 학교에만 올 거예요."


힘찬이의 기가 막힌 논리에 웃음이 나와 한참을 웃었다.


"응? 왜 웃지?" 힘찬이는 내가 웃는 이유를 이해 못 한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한다.


힘찬이 말이 맞네.

언제까지 학교에만 있을 것도 아니고, 지금의 학교에서 영원을 살 것도 아니니

나도 퇴직 이후의 삶, 학교 이동 후의 삶도 생각해 봐야겠네.


힘찬이의 말은 곱씹을수록 지혜가 있다.

당장 하루에 급급하며 살지 않고, 앞을 내다보는 삶을 살라는 힘찬이의 가르침에 정신이 든다.


"힘찬 아, 그런데 선생님 XX짜장에서 일은 하지 못할 것 같아. 왜냐하면 선생님은 요리는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 선생님이 좋아할 일을 한번 찾아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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