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즘과 히키코모리 사이 어딘가에 있기 위해
얼마 전 동네 친구와 함께 커피를 마셨다. 종종 만나서 책 이야기도 하고 사는 이야기도 하는 사이다. 내가 읽는 책 이야기를 했다.
- 최근에 가스라이팅에 관심이 생겨서, 데일 카네기의 인간 관계론을 읽어보고 있어.
그러자 그 친구가 말했다.
- 어? 나는 요새 나르시시즘에 관심이 생겼는데. 근데 가스라이팅도 나르시시즘이랑 관련 있는 거 아냐?
여기까지는 아주 평범한 대화였다. 그런데 그날 오후 친구에게서 책 사진이 왔다. 나르시시즘 관련 책이었다.
- 이거 함 봐봐.
'이거 함 봐봐'라는 문장은 중의적이다. 이 책을 보라는 것인지, 아니면 이 사진을 한 번 보라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나는 개인적으로 다른 사람에게서 '직접' 책 추천을 받는 걸 어려워한다. 나에게는 늘 읽고 싶은 책 목록이 이미 길게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저 문장을 두 번째(사진을 한 번 봐봐) 뜻으로 해석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렇게 답했다.
- 너는 나르시시즘에 대해 연구해 봐. 나는 가스라이팅에 대해 연구해 볼게.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너, 내가 나르시시스트라고 생각하는 거니.
그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그 친구와 나 사이에 있었던 대화들을 검열하기 시작했다. 내가 책 얘기를 너무 많이 했나. 말하는 태도가 거만하지는 않았나. 나도 모르게 함부로 충고를 한 것은 아닐까.
얼마 후 다시 그 친구를 만나 식사를 했다. 친구가 갑자기 나에게 요새 무슨 샴푸를 쓰는지 물었다. 나는 녹차실감과 도브 센서티브바를 번갈아 쓴다고 말했다. 친구는 해드 앤 숄더를 쓰는데 시원하고 좋단다.
이 대화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러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혹시, 머리에서 냄새나니.
세상에서 가장 후진 생각은 '자기중심적 사고'일 것이다. 세상 모든 일을 자기 자신과 연결시켜서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도 유아적이다. 사람들은 놀라울 만큼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 (이 또한 자기중심적이라서 그런 것일 텐데) 그래서 나에게도 관심이 없다. 내가 나르시시스트였다면 친구는 나를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혹시 불쌍해서 만나준 건가?) 내가 머리에서 냄새가 났다면 더더욱 나를 만나주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곧 아이들 여름방학이라 만날 시간이 없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다 안다.
다 아는데도 나는 자꾸 이상한 목소리가 들린다.
직장 생활을 하던 시절에도 그랬다. 말 한마디 안 해본 다른 부서 사람들의 표정이 그렇게 신경 쓰였다. 나랑 눈도 안 마주치려고 하는 것 같으면, '회사에서 내 소문이 이상한가.' 불안했고 대표님이 아무 말 없이 내 자리를 지나쳐 가면 '아, 드디어 내가 좌천되는구나' 생각했다.
너무 피곤하다.
다행히 집에 돌아오면 '조정 시간'이 시작된다. 나는 남편에게 모두 다 묻는다.
- 나 혹시 나르시시스트적인 측면이 있어?
..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금씩 있어.
- 나 혹시 머리에서 냄새나?
.. 아니.
- 나 혹시 회사에서 골칫거리일까?
.. 회사가 봉사단체도 아니고 골칫거리인 사람을 왜 데리고 있겠어.
- 대표님이 나 싫어하시는 것 같아.
.. 넌 싫어하는 사람한테 보너스 주냐.
남편이 하는 말 중에 내가 가장 우스워하는 것은 바로 이 말이다.
너는 객관적으로 예뻐.
이 앞뒤 안 맞는 말을 남편은 참 꾸준히 한다. '내 생각은 객관적이다.'라는 자신감은 대체 뭘 먹어야 만들어지는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남편의 이상하고 웃긴 객관성에 기대어 나에 대한 기대와 평가, 태도와 시선을 조정한다. 나를 쥐 잡듯이 잡아 완벽하게 이타적인 사람으로 만들려는 시도를 내려놓는다. 하루에 두 번씩 머리를 감고 싶은 마음을 억누른다. 내가 당시에 매일 출근해서 일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남편 덕분이었다. 너는 정상이야. 너는 괜찮아. 너 안 이상해.라고 남편이 확인해 준 덕분이었다.
나는 확신의 I형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 시간이 확보되지 않으면 굉장히 예민해지고 지치며 무기력해진다. 그런데 혼자서만 있으면 병이 들어 버린다.
대학 시절 나는 자취를 한 적이 있다. 그때 내 정신상태는 완전 시궁창이었다. 특히 방학 때면 텅 빈 하루를 감당하지 못해서 울기만 했다.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강해져서 밖에 나갈 수가 없었다. 사람도 만날 수 없었다. 비뚤어졌고 뒤틀렸고 왜곡됐다. 모든 생각이 얼룩졌고 냄새가 났다. 당시 내가 혼자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일찍 알았더라면 나는 분명 훌륭한 작가가 되어 있을 것이다.
지금은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혼자 있는 낮 시간이 달콤해서 때로는 식구들이 조금 늦게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결코 혼자 있는 '생활'을 꿈꾸지는 않는다. 나는 아침에 가족들과 함께 눈을 뜨고 함께 밥을 먹고 혼자 설거지를 하고 혼자 집 청소를 하고 혼자 빨래를 돌리고 널고 개고 혼자 책을 읽고 혼자 글을 쓰다가 함께 저녁을 준비하고 함께 저녁을 먹고 함께 TV를 보다가 함께 잠드는 이 생활을 좋아한다.
의학적 지식은 전무하지만, 가끔 정신 분열에 관한 뉴스를 볼 때면 그런 생각을 한다. 나도 혼자 있는 시간이 조금만 더 길었더라면 환자가 되었을 것이다. 나에게 너 정상이야. 지금 그 소리는 네 안에서 들리는 소리일 뿐이야.라는 말을 해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나 역시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집 안에 쳐 박혔을 것이다.
고지식하고 낡은 말이지만, 사람은 사람을 만나며 살아야 한다. 눈 뜨면 저절로 만나지는 사람이 '가족'이고 가족이 건강하게 서로를 '조정'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런 가족을 가진 나는 운이 좋다. 내가 가진 운을 내 아이의 건강한 '조정'을 위해 나는 쓸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도 그런 좋은 사람들이 많기를 바란다. 더불어 나 역시 타인에게 건강하고 안전한 '조정'(조언, 참견, 평가, 비난 말고, 내 남편의 '지극히 편향적인 편들어주기'가 좋겠다)을 건넬 수 있는 괜찮은 사람이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