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외로 잘하는 게 없는 아이

by 바람부는 언덕
junseong-lee-vmfrI94uPyE-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Junseong Lee

아이가 학원에서 영상을 보내왔다.


"이제 악보 안 보고 칠 수 있음"


피아노 연주하는 모습을 촬영한 모양이다. 세모 버튼을 눌러 재생을 했다. 오, 꽤 빠른데? 아이의 손가락은 부지런히 움직여 클라이막스를 향해 갔다. 누구나 다 아는 오르막 내리막을 연주해야 하는 순간, 아이는 틀리고 틀리고 또 틀렸다.


차마 끝까지 볼 수 없어서 중간에 영상을 껐다. 답장을 보내야 하는데 온갖 조언들이 머리를 떠 다닌다.


- 잘 안되는 부분만 반복해서 쳐봐.

- 아직 실력이 안되니까 천천히 연주를 해보는 건 어때?

- 이거 혹시 할머니 할아버지께도 보내는 건 아니지?


위 세 가지 버전도 나에게 있어서는 친절과 상냥함을 200% 담은 것이다. 원래의 나라면?


- 엄마가 천천히 치라고 했지.

- 이렇게 자꾸 틀리면서 무슨 자신감으로 영상을 찍는거야.


뭐 이런 종류의 것이었겠지. 하지만 나는 아이와 함께 성장하고 있는 중이고 그 결과 내면의 소리를 그대로 뱉어내지 않을 정도의 수준에 도달했다. 물론 이 수준은 이성을 잃으면 함께 상실되긴 한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200% 친절보다 더 많은 것이 필요했다. 아이를 향한 믿음과 기대감, 칭찬을 한 껏 담아내야 한다. 그 결과 내가 보낸 문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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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말할 것 같으면, 피아노를 곧잘 쳤다. 조금 더 자랑을 해보자면 나는 뭘 하든 평균 이상이었다. 리코더도 잘 불어서 교내 대회에서 상도 받았고 단소도 한 번에 소리를 냈다. 실로폰은 '너무' 잘쳐서 옆 반 음악 시간에 원정 연주를 가기도 했다. 피아노의 경우 콩쿠르에 나가보자는 얘기도 들었지만 워낙 겁이 많은 바람에 그만 피아노 학원을 관둬 버리고 말았다.


반면 아이는 뭐든 느리고 애매하다. 리코더는 자꾸 삑 소리가 나고 줄넘기는 줄을 돌리는 동시에 점프를 한다. 공은 무서워 피하기 바쁘고 수영장에서는 아빠 팔에 딱 매달려 있기만 한다. 피아노 역시 삑사리가 계속 나는대도 아무 생각 없이 자신이 잘 하고 있다고만 믿는다.


몇 번은 사실 그대로 말하기도 했다. 실수를 줄여야 한다고, 줄이 발 앞에 왔을 때 뛰어야 한다고, 그렇게 아빠한테 매달려 있을 거면 그냥 집에 가자고 말했다. 그러면 아이는 늘 같은 말을 한다.


"그래도 나 잘했지? 지난 번 보다 잘 하지 않았어?"


그 말에 나는 한숨을 쉬며 대꾸했다.


"글쎄. 잘 모르겠어."




내 아이의 애매함을 받아들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아이에게 다양한 경험을 시켜주려 노력했고 자율성과 더불어 자유로운 시간을 부여하려고 애썼다. 그 안에서 아이가 자신에게 잠재되어있는 욕구를 창의적이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실현시키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직까지 내가 발견한 것은 '이도저도 아닌 애매함' 뿐이다.


놀랍게도, 이 애매함을 받아들이는 데에 도움이 되었던 것은 다른 집 애들 소식이었다. 특히 남편 직장 동료들의 자녀 이야기가 나에게는 충격 요법이었는데 그건 그들이 우리와 비슷한 연령의 자녀를 키우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느 집 딸은 피아노 콩쿠르에 나가 1등 상을 여러 번 받아오고, 다른 집 아들은 야구에 재능을 보여 지역 야구단에 들어가 시합을 뛴다. 그런 이야기는 유퀴즈에만 나오는 줄 알았던 나는 하루 이틀 동안 흔들렸다.


뭐든 남보다 1.2배 정도 잘 했던 나는 그 재능 중 어떤 것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채 평범하디 평범한 어른이 되었다. 지금도 뭘 하면 웬만큼은 하지만 탁월하지는 않다. 대학 평균 성적도 B+이다. 내 인생이 그냥 B+인 것 같다. 그렇다면 나보다 더 애매한(것처럼 보이는) 내 아이는 B0인 걸까.


다행히 나는 이런 문제에 정해진 답을 가지고 있다.


"뭐 어쩌겠어. 그래도 내 딸인데. 사랑하고 행복하면 됐지."


B0 인생 중에서도 가장 건강한 정신과 마음, 행복을 선택할 줄 아는 사람이면 되는 거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원하는 대로 줄넘기 학원에 보냈다. 보내면서도 두 세달 하고 그만 둘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아이는 벌써 2년 째 줄넘기 학원을 다니고 있다. 그 결과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체육 실기 시험 이후로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2단 뛰기를 1분 안에 서른 번 넘게 하는 아이가 되었다. 물론 이 기록도 시합에 나가면 흔하디 흔한 성과다. 하지만 인간의 성취란 꼭 최고 자리를 차지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보다 더 나아지겠다는 다짐과 그에 상응하는 노력, 그리고 최선의 결과라면 충분하지 않을까.


아이를 보면서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성공관'이 얼마나 나약하고 초라했는지 실감한다. 나는 분명 다른 아이들보다 피아노를 잘쳤지만, 지금은 악보대로 치지도 못한다. 코드도 잘 모른다. 체르니 30번까지 쳤다는 말로 대강의 음악 실력을 설명할 수는 있지만 피아노를 즐기지는 못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남들보다 잘하거나 잘 하지 못하는 것에 얽매이지 않았더라면, 나는 음악을 더 즐기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어쩌면 작곡을 했을지도 모른다. 팟캐스트 [여둘톡]을 진행하는 황선우 님은 리코더를 잘 부신다. 나는 그의 연주를 듣기 전까지 리코더가 그런 소리를 내는 악기인 줄 몰랐다. 나의 리코더는 남들보다 우월함을 증명하는 도구였을 뿐 음악을 연주하는 악기는 아니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목표를 바꾸었다.


피아노? 잘 할 필요 없다. 되도록 오래 하자.


이것이 아이의 피아노에 대한 지금의 내 목표다. 하여 아이가 영상을 보내오면 실수를 지적하거나 더 성장하도록 등을 떠밀지 않고 '나아지고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엄마 아빠도 참 당황했을 것 같다. 똑똑한 줄 알았더니 스무 살이 넘어 헛짓거리만 하고 있는 나를 봤을 때 말이다. 인간은 누구나 부모를 실망시키면서 성장하는 걸까.


나는 아이가 내 다음이기를 바랐다. 내가 '한 인간의 어리석음'을 담당했다면 내 아이는 '그 다음의 현명함'을 담당해주기를 바랐다. 내 이야기를 듣고, 내 가르침을 받고 나보다 더 나은 인간이 되기를 소망했다.


하지만 아이는 너무나도 독립적인 존재라서 엄마인 나를 무시하고 자기가 원하는 시작점을 선택했다. 그것은 인류가 똑같이 선택한 '어리석음'이라는 출발점이다. 모두가 똑같이 누워있다가 뒤집었다가 기었다가 걸었다가 넘어지고 뛰는 것처럼, 아이의 실력과 인격, 생각도 모두 0에서 시작한다.


답답하고 환장할 노릇이지만 나는 아이를 응원해야 한다. 그리고 마흔이 넘어서도 어리석음과 후회, 깨달음과 버럭을 반복하고 있는 나 자신도 달래가며 오늘도 바쁘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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