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도 긴장이 된다
여름 방학이 끝이 났다. 무덥고 습한 여름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지만 방학이 끝났으므로 나에게는 청명한 가을이 온 것이나 다름없다.
올 가을에는 몇 가지 하고 싶은 것이 있다. 책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읽었으므로 하루쯤은 창경궁에 가보고 싶다. 시간을 넉넉히 내어서 대온실에도 가보고 그 주변 동네도 다녀보고 싶다. 기회가 있다면 주인공이 살고 있는 석모도에도 가볼 것이다.
여건이 조금 더 허락한다면 일본에도 가보고 싶다. 츠타야 서점에도 가보고 싶고 내년에 쓸 다이어리와 소소한 문구들을 사고 싶다. 지난번 교토에 갔을 때 사온 노트를 비롯해 종이류의 품질에 아주 만족하기 때문이다.
날이 시원해지면 러닝 속도도 올려보고 싶다. 다만 요새 왼쪽 골반이 조금 아파서 스트레칭을 신경 써서 하고 싶다. 이 통증이 나아지면 탁, 탁, 탁 경쾌하게 달려보고 싶다.
가을이 기대된다.
하지만 동시에 긴장도 된다.
아이는 1학기 때 친구 관계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몇몇 후회하는 일들도 있는 것 같고, 억울하고 속상한 마음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방학이라는 쉼의 시간 동안 그 일들은 '일시 정지' 상태였다. 오늘 아침 '재생' 버튼이 눌리고 아이의 친구 관계라는 이야기는 이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쯤 아이는 교실 자기 자리에 앉아서 맑은 눈으로 선생님을 보고 있을 것이다. 쉬는 시간이 다가오면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방학 이야기를 나누겠지. 혹시 또 혼자 앉아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된다.
수업이 다 끝나고 아이는 나에게 전화를 한다. 그 목소리로 나는 아이의 하루를 가늠한다. 어느 때는 아예 울면서 전화를 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내 마음도 완전히 무너져 내린다. 완전히 무너졌으므로 아이에게 못난 말을 할 때도 많다. 그런 날들이 1학기 때는 종종 있었다. 2학기에는 조금 나아질 수 있을까.
또 다른 고민도 있다.
과연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소설을 쓰고 싶다고 늘 생각했지만 어느 날 문득 나에게는 쓰고 싶은 이야기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글 쓰는 건 너무 좋다. 고민 끝에 오늘은 이렇게 브런치를 쓰고 있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시간을 허투루 쓰고 있는 건 아닐지 두렵다.
이런 걱정이 몰려와 오늘 아침에는 배탈이 나고 말았다. 아이는 학교 가는 길에 방아깨비를 봤다며 신기하다고 문자를 보냈는데, 나는 겁이 나서 배탈이 난 것이다. 나는 쫄보다.
나는 이번 방학이 즐거웠다. 두 번의 여행으로 우리 가족은 새카맣게 탔다. 아이의 콧등과 남편의 등어깨와 내 발목 피부가 한 꺼풀씩 벗겨졌다. 아이 팔에 났던 물사마귀는 가라앉고 그 대신 알 수 없는 진물이 여기저기서 나고 있다. 머리가 많이 길어서 빗겨주기 힘들다. 남편과 나는 더운 날에도 저녁에 나가 적당히 달렸고 그 열기를 탄산수나 맥주, 하이볼로 식혔다. 요리 채널을 즐겨보던 남편은 제면기를 주문했고 나는 러닝용 양말을 4만 원어치나 샀다.
바깥은 여름이고 가을이 오기 전이라 매미들이 사활을 걸고 울어대는데 우리는 고요하고 평안했다. 매일 점심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고 나른하게 수다를 떨고 젖은 머리를 말렸다.
남편이 출근을 했던 지난주, 아이가 나에게 계란 볶음밥을 만들어 주었다. 집에 있던 밥이 질다는 말에 폭염을 뚫고 편의점에 가 햇반을 사다 만들어 준 것이다. 싱거울 거야, 소금을 넣어야 해.라는 말에 아이는 케첩을 뿌릴 건데?라는 말로 응수했다. 아이의 계획은 하트 케첩이었다. 완벽했다.
엄마 수고했어. 라며 한 끼 식사를 건네는 아이를 보니 이번 방학은 아무래도 완벽했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수고했다. 우리의 여름. 수고했다, 우리 딸. 수고했어요, 그대.
크게 심호흡을 하고 이제 내 인생을 일구어야 할 때다. 뭘 하든 잘할 거다. 그러니까 겁먹지 않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