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부모보다 한 발 나아가기
나는 소위 말하는 '좋은 대학'을 다녔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그 시절은 그리 좋은 기억은 아니다.
입학하기 전, 선배들과 동기들을 만나는 순간부터 나는 매 순간 열등감에 시달린 채 4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친구들과 마주치는 게 힘들었고, 혼자 인 것 역시 괴로웠다. 시험 때에는 내 성적이 좋지 못할까 봐, 시험이 아닐 때는 나의 가난함이 들통날까 봐 전전긍긍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열심히' 하면 뭐든 될 것 같았다. 성적을 얻는 것도, 친구를 사귀는 것도 노력하는 대로 결실을 맺었으니까. 하지만 대학에 들어간 후부터는 노력을 넘어서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실감했다. 부모의 재력. 부모의 인성. 타고난 어떤 것들 말이다.
동일한 성적을 받고 동일한 학교, 동일한 학과에 입학을 했다 하더라도 등록금을 맘 편히 낼 수 있는 아이와,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하는 아이는 출발선이 다르다. 계절마다 엄마가 새 옷을 사주는 아이와 지하상가에서 싼 옷을 뒤적거려야 하는 아이가 편한 친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은 낮다. 몇 번의 방학이 지나고 내 친구들은 다들 어학연수나 교환학생으로 해외에 나갔지만 나는 학교만 다녔다. 여행도 못 가고 취미생활도 변변치 않게 살면서 정말 학교만 다녔다. 그땐 그마저도 감지덕지할 일이었다.
그러는 동안 생각했다. 나에게 성공이란 사치겠구나. 가지려고 하면 안 되는 것, 가지려고 하는 순간 허세가 되는 것, 그저 적당한 곳에 취직해서 빚지지 않고 사는 것을 감사히 여기면 되는 수준. 이게 나 일 것이라고.
이 생각이 깨진 것은 몇몇 잘 나가는 부모를 둔 사람들을 '사회에서' 만난 이후부터였다. 미안한 말이지만 그들은 그리 멋있지 않았다. 변호사 아버지, 약사 어머니를 둔 사람은 나보다 더 돈에 전전긍긍했다. 서울에 아파트가 몇 채 있다던 집안의 사람은 자기 직업을 저주하고 있었다.
나보다 많은 돈을 벌고, 더 넓은 인맥을 자랑하지만, 난 한순간도 그들이 부럽지 않았다. 적어도 내 마음속에서 그들은 성공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게 돈만 많은 금수저들을 몇 번 만나고 나니, 성공에 대한 정의가 조금씩 새로워졌다.
내 부모님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성공의 첫 번째 단계가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타고난 것을 무시할 수 없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과 수저 하나 없이 태어난 사람을 같은 잣대로 평가할 수는 없다. 우리 모두 같은 출발선을 갖기 위해서는 '조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조정의 기준이 바로 '부모'가 아닐까.
경제력이든, 인품이든, 지적 수준이든
나는 내 부모를 뛰어넘어야 한다.
그런 텃밭에 뿌려진 씨앗으로 태어났으니 당연히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생각을 한 후부터 나는 내 부모님을 대하는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이전에는 내 눈에 못마땅할 때마다 "이런 부모를 두었으니 나도 어쩔 수 없지."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것이 내 한계인 것만 같았고 내 운명인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엄마가 답답한 소리를 할 때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래. 내가 엄마보단 좀 낫구나. 나아지고 있구나."
그러고 보면 우리 엄마 역시 외할머니보다는 낫다. 외할머니는 중학교도 가지 못한 우리 엄마에게 돈을 벌어오라고 했다. 엄마는 구로공단에서 재봉틀을 돌리며 번 돈을 모두 고향에 보냈다. 그 시절의 서러움은 아직까지도 엄마 마음에 깊이 가라앉아 있다.
나는 그정도는 아니었으니. 그래도 난 충분히 교육받았다. 비록 학자금 대출에 몇 년간 허덕이긴 했어도.
이미 많은 면에서 난 성공했다. 그런데 매우 중요한 단계가 하나 남아있다. 바로 내 아이에게 우리 엄마보다 좋은 엄마가 되는 것. 엄마에게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 나에게는 매우 어려운 과제인데, 어쩌다보니 벌써 8년 차다. 이 일에 있어 내가 가진 목표는 그리 거창하지 않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옆에 있어주기. 그리고 우리가 함께 하는 시간이 즐겁도록 노력하기.
나는 내 부모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특히 내 아이에게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