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일까 자유일까
그 '뭔가'는 한때 선생님이었고 작가였고 회사원이었다가 좋은 엄마였다가, 다시 작가로 돌아가기도 했다. 나는 끝내 그 '뭔가'가 되기도 했고, 되는 데에 실패하기도 했다. 어느 새 꼬깃꼬깃 해진 그 '뭔가'를 여전히 손에서 놓지 않은 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살았다.
7월의 어느 날,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기 전 나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곳에서는 내가 원하는 '뭔가'가 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이의 방학과 맞물려 퇴사를 했기 때문에 한달간은 성실한 엄마로 살았다. 그러는 동안 나는 생각했다.
'방학만 끝나면 꼭 글을 써야지.'
그렇다. 그때 나의 '뭔가'는 작가였다. 방학이 끝이 나고 나는 그간 미뤄두었던 글쓰기를 시작했다. 블로그를 썼고, 브런치를 썼고, 공모전에 낼 원고를 썼다. 그러다가 문득 이 상황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지금 나, 뭐하는거지?
나는 닥치는 대로 글을 쓰고 있었다. 내가 무슨 글을 쓰고 싶어하는지 나 스스로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에세이인지, 독후감인지, 또는 시나 소설인지, 드라마 대본이나 웹소설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저 막연하게 글을 쓰는 행위, 내 손끝에서 엮어지는 문장들의 존재가 좋았던 것이다. 그러다 우연히 한 에세이 작가의 말을 들었다.
"가끔 독자분들이 저에게 와서 물어요.
'저도 책을 쓰고 싶은데요, 뭘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는 이 질문이 참 이상해요. 뭘 써야 할지 모르겠는데, 왜 책을 쓰고 싶은걸까요? 일단 뭔가 쓰고 싶은 것을 발견하는 게 먼저가 아닐까요?"
https://podbbang.page.link/LybtR3X8VXXBsXBa6
이 말은 오래 내 머리에 남았다.
뭔가 쓰고 싶은 것을 발견하는 게 먼저다.
너무나도 맞는 말이다. 나는 순서가 잘못 됐다.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하나의 수단일 뿐, 시작은 내 안에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어떤 파동에 내가 반응하는지 발견하는 것이 먼저여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을 해봤다. 내 안에는 무엇이 있는가. 허허허허허.
아무 것도 없었다.
마치 텅 비어 있는 것만 같았다. 딱히 좋아하는 것도 없고 별난 경험을 하면서 살아온 것도 아니다. 전문 분야가 있는 것도 아니고 뚜렷한 취향이 있지도 않다. 나는 거의 무색무취의 인간이라 할 수 있다. 심지어 옷도 무채색을 좋아해서, 언젠가 남편은 내 옷을 보고는 '혹시 보호색이야?' 라고 묻기도 했다.
그러다 또 우연히 한 유튜브 영상을 보게 되었다.
https://youtu.be/TiLngHd2onM?si=j8et1YU9_9k1ppTv
밀리의 서재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일본 추리 소설 best 10] 영상이다.
이 영상은 나에게 거의 구원과도 같았는데, 그 이유는, 이전까지 나는 내가 "일본 미스터리 추리 소설"을 좋아한다는 것을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나는 모범생이다.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모범생이 아니었던 순간이 없다. 생긴 것도 단정하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나에게 모범적인 것을 기대하곤 하는데, 문제는 나에게 이 기대를 깰만한 용기가 없었다는 것이다.
내 얄팍한 인간관계 가운데, 아주 위태롭게 유지되고 있는 끈이 하나 있다. 그곳은 영화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비슷한 것이다. 아이를 낳고 무인도 같은 삶을 살고 있을 때 날 지켜보다 못한 친구 하나가 이 모임을 소개해주었고, 어찌어찌 지금까지 위태위태하게 연결고리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 7월 말, 나는 퇴사 기념으로 서울까지 가서 이 모임의 사람들을 몇명 만났다. 함께 밥을 먹는 자리에서 "요새는 무슨 책 읽어?" 라는 질문이 나왔는데, 그때 나는 당황했던 것 같다. 당시 내가 읽고 있었던 것 역시 일본 미스터리 추리 소설이었기 때문. 그러나 그 자리에 거론된 다른 이들의 독서 목록은 프랑수아즈 사강의 것이었고 금정연의 것이었으며 카버의 인터뷰집이었다. 나는 소심하게 '요새 추리 소설 읽어요'라고 말하면서도 가슴이 콩닥 거렸다. 나를 우습게 보면 어쩌지.
나의 자아라는 게 그렇게나 허약했다. 어줍잖은 비교의식의 칼날로 여기저기 잘라내고 숨겼으니 남아 있는 게 있을리 없었다. 나는 그간 일본 미스터리 추리 소설 뿐 아니라 얼마나 많은 취향과 색깔을 잘라내고 지워왔던 것일까.
그런 상태에서 저기 저 밀리의 서재 영상을 보게 된 것이다. 내가 창피하게 생각했던 일본 미스터리 추리 소설을 저렇게나 진지하게 이야기 하는 사람이라니. 심지어 이 분야 전문가 뿐 아니라 잡지가 있다고? 10년 전에만 알았어도 나는 저 잡지에 취직하게 해 달라고 이력서를 썼을 것이다....!!
억울했다. 내가 나 자신을 창피해하는 사이 누군가는 저렇게 전문가가 되어 있다는 사실이 몹시 분하고 억울했다. 나는 나를 잘라내고 비워내고 지우는 일에 시간을 쓰느라 마흔이 되어버렸는데, 저 사람들은 자신을 더 짙게 색칠하고 선명한 선을 그어 자기 영역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나도, 취향을, 갖고 싶었다. 뚜렷한 색깔, 뚜렷한 이미지, 뚜렷한 선호. 그런 것들을 모으고 오리고 붙이고 색칠해서 나라는 사람을 그려내고 싶다.
그래서 아무 목표도 갖지 않기로 했다.
나는 아무 것도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무 것도 되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둘 것이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무엇에 관심을 보이고, 무엇을 더 하고 싶어하는지 가만히 지켜볼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 이야기를 탐닉하고 있다. 저 영상에 나온 열권의 책을 차례로 섭렵하고 있고, 그러다가 마음에 드는 작가를 발견하면 두어권 더 찾아서 읽고 있다. 이 일은 아직까지 지겹지 않다. 분명 나를 끌어당긴다. 지금은 이대로 나를 내버려 둘 생각이다.
그러다 보면 나에게도 이야기라는 게 차오를까.
쓰고 싶은 것들이 생길까. .
모르겠다. 모르겠다. 지금은 모르고 싶다.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도 나에게 행운이다. 7월 말까지만 해도 이 시간은 뭔가를 쓰기 위한 시간이라고, 반드시 많은 것을 써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생각이 달라졌다. 이 시간은 나를 내버려두는 시간이다. (이것도 목표이려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이 순간에 나는 아무 목표없이 표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