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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동태탕의 맛

현주의 이야기

by 바람부는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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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어쩌면 동태탕의 맛일지도 모르겠다고 지금 현주는 생각하고 있다. 담백하고도 시원한 국물, 탄탄하고 쫄깃한 동태 살, 달게 맛이 든 겨울 무까지. 맑은 국물을 떠먹는 현주의 눈에 자꾸 눈물이 고인다. 이상하다. 흔하디흔한 동태탕을 먹고 있을 뿐인데 왜 자꾸 눈물이 나는 걸까.




일의 시작은 얼마 전 설날 아침이었다. 딸 지연이 굳이 떡국을 먹으러 오라고 하길래 못이기는 척 남편 민수와 함께 지연의 집으로 갔다. 이제는 낯이 익은 학규 총각과 현경 처자까지 모여서 뜨끈한 떡국 한 그릇에 형형색색 명절 전과 갈비찜까지 푸짐하게 얻어먹고 왔다. 밥상을 받으며 현주는 며칠 전 지연에게 카드를 내어 준 덕에 그나마 자존심은 지켰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 끼 잘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왠지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민수는 뭐가 신이 나는지 콧노래를 부르며 운전을 하는데, 현주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현주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따뜻하고 훈훈한 지연의 집과는 달리 자신의 집은 냉랭했던 것이다. 난방의 문제가 아니었다. 보일러는 뜨끈하게 돌아가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온기가 있는 모양이다. 사위에게 받아온 명절 음식들을 냉장고에 넣는데 갑자기 짜증이 났다. 이런 거야 사시사철 어딜 가든 사 먹을 수 있는데 뭐 하러 이렇게 바리바리 싸주는 걸까. 자기네는 잘 먹고 잘 살고 있다고 유세라도 떠는 건가.


그 날 저녁 아들 딸네 집에 차례로 다녀온 언니가 돌아오자 현주의 마음은 더욱 꼬여갔다. 멀리 사는데도 자식들이랑 끈끈한 언니를 보면 부러우면서도 화가 났다. 다들 자기 자리에서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현주만 붕 뜬 채 떠돌아다니고 있는 것 같았다. 백화점으로, 아울렛으로, 카페로 말이다.




기차역에 언니를 내려주자 신기하게도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그 바람에 거하게 트림을 하긴 했지만, 어제 먹은 명절 음식이 그제야 소화되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시원한 잔치 국수 한 그릇 먹고 갈까?”


이 남자가 웬일이래? 매일 아침 눈 뜨자마자 카메라를 들고 나가 친구를 만나던 민수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삼시 세끼를 밖에서 해결하며 온갖 곳에서 사진을 찍고 다녔다. 현주도 딱히 아쉽진 않았다. 남편과 아내는 그저 살아있다는 것만 확인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돈도 있겠다, 나름 건강하겠다, 이제 삶을 누릴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돈을 써도 마음은 허전했다. 명품 백을 일 년에 한 개씩 사고 좋다는 식당에 돌아다니고 친구들이 좋다고 말하는 물건들을 차례로 사서 집에 들여놔도 마찬가지였다. 그럴수록 민수는 더 밖으로 돌았다. 집에 있으면 정신이 사납다는 이유였다. 하긴 현주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커피 머신도, 안마 의자도, 믹서와 실내 자전거도 사올 때는 분명 행복했다. 이거 하나면 집에서 우아하게 커피도 마시고, 과일도 갈아 먹고 부지런히 운동도 할 줄 알았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만 되면 그 모든 것이 짐이 되어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현주는 집으로 사위 봉구를 불렀다. 어차피 집에서 논다고 하니까, 게다가 살림에 솜씨도 조금 있는 것 같으니까, 부탁을 좀 할 생각이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하건대 절대로 공짜로 부려먹을 생각은 아니었다.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 살림 도우미 아주머니 일당보다 더 많이 쳐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다음 날 저녁 지연이 쳐들어오는 바람에 현주는 아주 못된 장모가 되어버렸다.


다행히 구 서방은 다시 돌아왔고(?) 집을 마저 정리해주었다. 대신 냉장고에 있는 묵은 지를 가져갔는데, 그 덕에 현주의 마음에 얹혀 있던 돌 하나가 치워진 기분이 들었다. 이후로도 구 서방은 종종 집에 와 청소를 해주고는 냉장고에 있는 젓갈과 장아찌를 차례로 가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은 웬 김밥을 말아오기도 했다. 서린이가 소풍을 가는 날이라 김밥을 쌌다고 했다.


“요새 김밥 2,3천원이면 사는데 그걸 굳이 집에서 만들어? 자네도 참 할 일이 없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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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현주의 손은 이미 구 서방이 가져온 은박지를 열고 있었다. 그 사이로 새어나오는 참기름 냄새를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를 집어 입으로 넣는 순간, 현주의 혀는 구 서방의 김밥을 갈구하기 시작했다. 두 개, 세 개, 네 개, 연이어 입에 넣었고 다 먹은 후에는 민수의 몫으로 남겨진 김밥을 먹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했다.


그 김밥은 현주의 일상에 작지 않은 스크래치를 만들었다. 잊고 있었던 집 밥을 떠올리게 한 것이다.


집 밥이라. 온 세상이 집 밥에 환장하는 시대지만, 그럴수록 현주는 집 밥이 싫었다. 현주 역시 언니 덕분에 집 밥을 먹고 자랐으므로 그 의미와 효용을 부인할 생각은 없었다. 문제는 현주가 집 밥을 전혀 못한다는 데에 있었다.


이상하게도 현주는 요리를 비롯한 살림에 소질이 없었다. 몇 번인가 노력을 하긴 했으나 그 때마다 헛돈만 쓰는 꼴이었다. 계란프라이 하나를 해도 이상하게 기름이 뚝뚝 떨어졌고, 한우 1++ 사다가 구워도 이상하게 질겼다. 집에 물건이 많아지자 수납을 하려고 수납장을 짜보기도 했는데 그럴수록 공간만 줄어들 뿐, 물건으로 가득 찬 수납장은 더욱 꼴 보기 싫어졌다. 착즙주스가 좋다 길래 착즙기를 샀지만 몇 번 당근을 갈아먹자 주방 꼴이 말이 아니었다. 착즙기를 다 분해해서 닦아야 한다는 친구 말에 현주는 한숨이 푹푹 나왔다. 착즙기 산다고 했을 때 미리 말해줬어야지.


결국 현주는 살림에서 손을 놔 버렸다. 지연이 어릴 때에는 도우미 아줌마를 불러 반찬을 하고 청소를 했다. 지연이 다 커서 독립을 한 후에도 일주일에 한두 번 도우미 아줌마를 부르고 있다. 그렇게 말하면 친구들은 사모님 놀이 한다며 부러워하면서도, 살림 솜씨가 그래서 어떻게 소박맞지 않고 살았냐고 놀리곤 했다. 그럴 때면 친구들은 늘 집 밥 얘기를 한다.


“애들이 집 밥을 먹고 커야 실하게 크지.”


치. 우리 지연이가 어때서. 아줌마가 해준 밥 먹고도 충분히 실하고 예쁘게 컸구만. 그런 생각으로 현주는 자신의 마음을 방어하며 살았다. 하지만 구 서방이 만들어 온 김밥을 먹는 순간, 자신이 뭔가를 많이 놓치고 살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 지연이는 이런 김밥을 못 먹고 컸구나.’


지연이 못 먹고 큰 게 어디 집 김밥뿐이겠는가. 김치찌개 하나, 된장찌개 하나 제대로 끓여준 적이 없다. 가끔은 지연에게 미안하긴 했지만 그럴 때마다 현주는 생각했다.


‘나도 못 먹고 살잖아. 모두가 집 밥을 먹고 사는 건 아니야.’


그렇다. 현주에게 있어 지연은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동료였다. 집 밥이 없는 집에 함께 산 기억을 가진 동료. 사실 지연은 현주를 쏙 빼닮았다. 일을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 욕심이 많은 것도 그렇고. 그래서 지연 역시 집 밥보다는 자신의 일과 성취를 더 중요하게 생각할테니 집 밥 정도는 포기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지연의 옆에는 구 서방이 있었던 것이다. 구 서방이 매일 아침 새 밥을 짓고, 새 국을 끓이고, 서린이가 소풍을 가는 날에는 김밥을 싸주고 있는 것이다.


사실 구 서방이 회사에서 짤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눈앞이 캄캄했다. 아니, 지연이 처음 구 서방과 결혼하겠다고 인사 시키러 왔을 때부터 현주는 눈앞이 캄캄했다. 어디 내 놔도 자랑스러운 지연이었다. 실제로 지연을 며느리 감으로 점찍은 친구들도 많았다. 심지어 어느 중견 기업 며느리자리를 추천 받은 적도 있었다. 그런데 구 서방이라니. 결국 지연의 고집에 못 이겨 결혼은 허락했지만 백수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는 왜 그때 더 모질게 말리지 못했나 싶어 한숨만 푹푹 쉬었었다.


그런 구 서방이 밥을 한단다. 그리고 지연은 그게 좋다고 한다. 이 살벌한 경쟁 사회에 한가롭게 집 밥 타령이나 하는 태평함이 처음에는 못마땅했다. 하지만 그 김밥을 먹고 나서부터는 현주도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했다. 지연이 정말 좋은 음식을 먹고 있다는 것을. 어쩌면 그것은 한 사람의 월급보다 더 지연에게 필요한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것을.


그렇게 현주는 하나 뿐인 동료를 잃었다. 모두가 집 밥을 찬양하는 세계에서 혼자 떠돌게 된 것이다. 그래서일까. 현주는 자꾸 까칠해졌다. 세상 온갖 것이 마음에 들질 않았고 자주 짜증이 났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 민수가 잔치 국수를 먹으러 가자고 한 것이다.




민수는 현주의 손을 잡고 국수집까지 걸어가더니 자리에 앉아서는 먼저 물을 따라 주었다. 수저도 정성스레 현주 앞에 놓아주고 아주머니가 가져다 준 국수도 현주 앞에 먼저 놓았다.


“고단했지, 우리.”


고단했다. 일을 포기할 수 없어서 고단했고, 그 와중에 딸 지연을 키우느라 고단했다. 젊어서는 시아버님을 모시느라 고단했고 나이 들어서는 혼자 외롭느라 고단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그 마음을 민수가 알아주자, 자물쇠가 딱 맞는 열쇠를 만나 풀리듯 현주의 마음이 풀렸다. 풀린 마음에서 눈물이 스며 나와 현주는 자꾸 멸치국물을 떠먹었다. 그걸 알아차렸는지 민수가 손을 꼭 잡아주었다.


zoe-Wvbcr7KeZDE-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Zoe


그날부터 민수는 달라졌다. 집에 오자마자 커피를 두 잔 타오더니 현주 옆에 나란히 앉아 현주가 보던 TV를 같이 보았다.


“저 배우도 많이 늙었네. 젊을 땐 정말 예뻤는데.”

“그래도 보톡스랑 레이저랑 해서 팽팽하잖아요.”

“팽팽하면 뭐해. 난 그게 더 싫더라. 난 당신처럼 자연스럽게 나이 드는 게 좋아.”

“내가 나이 들었다고 핀잔주는 거유?”

“나이야 들었지. 그게 뭐 나쁜 건가. 나도 나이 들었고. 그래도 우리 정도면 곱게 늙는 거야.”


민수의 그 말에 현주는 조금 웃기도 했다. 오후에는 민수와 함께 가까운 공원을 산책했다. 공원에 있는 여러 운동기구를 하나 씩 하다 보니 몸이 풀리는 것도 같았다. 돌아오는 길에는 붕어빵을 한 봉지 사서 나눠 먹었다. 달달한 걸 먹어서 그런가 자꾸 웃음이 나왔다.


2023101901964_0.jpg https://m.health.chosun.com/svc/news_view.html?contid=2023101901968


다음 날 현주는 친구들을 만나러 백화점 8층 카페로 향했다. 오늘은 특별히 민수가 골라준 백을 들고 나왔다. 오래 전 어느 명절에 해외여행을 다녀오면서 면세점에서 산 주황색 가방이었다. 조금 튀나 싶어 자주 들고 다니지 않았는데, 오늘 옷에 포인트가 될 거라면서 민수가 골라준 것이다.


“아유 말도 마라. 애들을 주렁주렁 달고 와서 나한테 맡겨 놓고는 남편이랑 쇼핑하러 가더라니까?”


친구 하나가 명절 내내 손자들을 보느라 힘들었다며 투정을 부린다.


“난 차라리 쇼핑하러 갔으면 좋겠어. 우리 애는 아주 눌러 앉아서 내가 해주는 밥 먹고, 전 먹고, 과일도 내가 깎아 줘야 먹더라. 나이가 서른이 넘으면 뭐하니? 아직도 어린 애처럼 엄마 밥해줘, 그러는데.”


또 다른 친구도 명절 내내 고생을 한 모양이다.


“현주 너는? 이번에도 호텔 식당 갔어?”

“그게 최고지. 아들 며느리 있어봤자 다 소용없다.”


평소라면 그 말 속이 담긴 저의를 찾느라 뾰족했을 현주였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현주는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고 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 사위가 떡국이랑 갈비찜이랑 갖가지 전이랑 다 차려놓고는 우리를 부르더라고. 내가 나가서 한 그릇 사먹자고 하는데도 아니라고, 명절 상은 자기가 차려드리고 싶다고, 그렇게 전화를 하는 거야. 그래서 가봤더니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렸더라고.”

“아, 그 회사에서 짤렸다는 그 사위?”

“다시 취직 안 한 대? 하긴 요새 경기가 안 좋아서 걱정이겠다.”


친구들은 걱정하는 척 현주를 곤란하게 만들 모양이었지만 현주는 이제 이전의 현주가 아니었다.


“뭐 하러 취직을 서둘러. 지연이가 잘 버는데. 말했나? 걔가 이번에 두 단계나 승진을 해서 돈을 잘 벌어. 자기가 돈 잘 버니까 남편한테 외조 받는 거지. 우리 구 서방이 음식도 잘하고 살림도 아주 야무지게 해서 집안이 반짝반짝해. 어머, 전화 온다. 여보? 벌써 왔어요? 그래요, 내려갈게.”

“누구? 신랑?”


궁금해 하는 친구들을 향해 현주는 싱긋 웃으며 답했다.


“응. 신랑이 같이 점심 먹고 시장 구경 가고 싶다고 해서. 나 먼저 갈게!”


현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카페를 빠져나와 민수를 만나러 갔다. 멀끔하게 차려입은 민수가 저 멀리서 손을 흔든다.


“오늘 뭐 먹을까? 당신 좋아하던 스파게티 먹으러 갈까?”

“응!”


그때 갑자기 구 서방에게 전화가 왔다.


“장모님! 집에 안 계시네요? 어디세요?”

“나 자네 장인이랑 밖에 나와 있어. 무슨 일인가?”

“제가 동태탕을 끓였는데 양이 넉넉해서요. 집에 두고 가겠습니다.”


그 말에 현주는 갑자기 입에 침이 고였다. 민수에게 말하자 민수 역시 입맛을 다신다.


“집으로 갈까?”

“그럽시다.”


결국 두 사람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구 서방이 가져다 놓은 냄비가 주방에 떡 하니 있었다. 열어보니 맑은 동태탕이 맛깔스럽게 보인다. 민수가 서둘러 불에 얹어 데웠다. 그 사이 현주가 즉석밥을 데웠다.

KakaoTalk_20250104_140353147_01.jpg 마땅한 이미지가 없어서 제가 직접 끓여보았습니다

밥 두 그릇에 동태탕 하나. 두 사람은 한 마디 말도 없이 식사를 했다. 아마 구 서방은 손녀 서린이를 위해 이렇게 맑은 동태탕을 끓였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국물이 아주 시원하고 속도 편했다.


“우리 언니도 이렇게 맑은 동태탕을 끓여줬었는데.”


속이 든든해지자 현주가 입을 열었다.


“시장에서 팔다 남은 동태를 싸게 받아와서 끓여줬었거든요. 그게 참 시원하고 맛있었어. 지금 생각해도.”

그렇게 말하던 현주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아무래도 며칠 전 잔치 국수를 먹은 날부터 마음 어딘가가 느슨하게 풀어진 모양이다.


“처형도... 고단했겠지.”

“응. 고단했겠지.”


어린 나이에 덜컥 가장이 된 언니는 단 한 번의 불평 없이 그 시절을 살아냈다. 없는 살림에도 현주를 키우기 위해 시장 바닥에서 배춧잎을 주워 모으고 떨이로 나온 동태를 사왔다. 그럴 때마다 현주는 동태탕을 맛있게 먹었던 것 같은데, 그때 언니도 동태탕을 먹었었나.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란 현주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민수가 다가와 오래 안아주었다.


그날 저녁 현주는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니가 웬일이냐. 전화를 다하고. 뭐 떨어졌어?”

“아니. 오늘 구 서방이 동태탕을 끓여줬는데 아주 맑고 맛있더라고. 언니 생각나서.”

“구 서방이 어떻게 알고 그걸 끓였대? 이맘때면 우리 꼭 한 번씩은 해 먹었지.”


그래서 현주는 처음으로 언니와 그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현주는 민수를 돌아보았다.


“언니는 나 때문에 희생한 걸까? 난 그게 늘 미안했어. 내가 언니 삶을 갉아 먹은 걸까봐 두렵기도 하고.”


그러자 민수가 곰곰이 생각을 하더니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나는 당신이 일하는 모습이 참 좋았던 것 같아. 매일 아침 부지런히 화장을 하고 옷을 차려 입고 또각또각 구두를 신고 나가는 모습 말이야. 집에 돌아와서 오늘 무슨 일을 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이야기 하는 것도 좋았고. 아마 처형도 그랬을 걸. 당신이 공부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을 거야.”

“치...”


민수의 말에 현주는 괜히 입을 삐죽였다. 하지만 진심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동태탕을 다시 데워 먹으며 현주는 생각했다. 인생은 아무래도 동태탕의 맛이라고. 가난하던 시절 몸을 데워주던 뜨끈한 국물의 맛. 오래도록 잊고 있었던 누군가의 고단함을 깨닫게 해주는 맛. 수고했다고 어깨를 토닥여주는 맛. 사위 하나는 정말 끝내주게 얻었다고, 지금 현주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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