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의 이야기
돌아보니 민수의 인생은 잔치 국수의 맛이었다. 슴슴하면서도 시원한 맛, 별 거 없어 보이는 말간 국물에 소박하게 들어앉은 소면을 보면 이게 뭐 특별한가 싶다가도 먹고 돌아서면 또 생각나는 맛 말이다. 아내 현주도 지금 맞은편에 앉아 말없이 국수를 먹고 있다. 곱던 얼굴에 깊은 주름이 앉았고 윤기가 흐르던 머리칼도 이제는 염색을 하지 않으면 부옇게 서리가 앉는다. 그래도 여전히 참 궁금한 여자라고 민수는 생각한다.
일의 시작은 얼마 전 명절을 앞둔 어느 날 저녁이었다. 사위 봉구가 함께 떡국을 먹자며 자신의 집으로 초대를 한 것이다. 그 말에 아내 현주는 툴툴 거렸었다.
“무슨 떡국 한 그릇 먹자고 거기까지 가. 그냥 근처에서 한 끼 사먹고 말지.”
“가야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사위가 부르는데!”
현주의 말에 민수가 얼른 못을 박았다. 가족들이 다 모여서 집에서 끓인 떡국을 먹을 기회라니.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았다.
명절이 다가오면 민수는 이상하게도 기운이 빠진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민수도 그럴 듯하게 명절을 치렀었다. 아내 현주가 사온 음식들로 차례 상도 차리고 어찌어찌 떡국도 끓여먹었다. 때로는 국물이 싱겁고 때로는 떡이 푹 퍼지긴 했어도 민수는 그 떡국이 싫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부터는 명절 풍경이 달라졌다. 한동안은 가족과 함께 해외여행을 몇 번 다녀왔고, 지연이 대학에 가고 나서부터는 괜찮은 식당에서 밥 한 끼 먹는 것으로 대신했다. 지연이 시집을 간 후에도 이런 명절 풍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실 평소에는 민수도 별 아쉬움이 없었다. 나름대로 바쁜 노후 생활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친구들과 사진 동호회를 만들어 국내 방방곳곳을 다니며 사진을 찍기도 했고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지금도 하루가 멀다 하고 친구들을 만나 밥을 먹고 사진을 찍으러 다닌다. 문제는 명절이었다.
명절이 다가오면 친구들은 명절 준비로 부산해진다. 이제는 여자들에게만 맡기는 시대가 아니므로 다들 아내와 딸, 며느리를 쫓아다니면서 기사 노릇도 하고 짐꾼 노릇도 하는 것이다. 명절 연휴에는 다 같이 둘러앉아서 전도 부치고 떡국도 끓여 먹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다보니 명절이면 휴대폰은 늘 조용했고 민수는 심심했다. 젊은 시절 열심히 일한 덕에 노후 걱정 없이 살고는 있지만 이상하게도 명절만 되면 사람이 자꾸 그리워진다.
그런데 이번 설에는 사위 봉구가 초대를 했다는 말에 민수는 입이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
그 말을 듣고서 민수는 집 앞 은행을 찾았다. 한참을 기다려 굳이 창구에 가서 빳빳한 새 돈을 받아 왔다. 그리고 다시 문구점에 가서 예쁜 봉투를 넉넉히 샀다. 세뱃돈 치고는 많은 금액이었지만 민수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집에서 끓인 떡국이 얼마만이야.’
그렇게 설날 아침 부지런히 운전을 해서 지연의 집에 갔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민수는 그 찬란한 냄새에 숨이 멎을 뻔 했다. 집 안 가득 기름 냄새가 났고 갈비 냄새까지 솔솔 났던 것이다.
“이게 명절이지, 이게 명절이야!”
지연과 사위 봉구, 손녀 서린이와 사위 친구라고 소개 받은 학규 총각과 현경 처자까지, 장장 일곱 명이 상에 둘러 앉아 떡국을 먹었다. 민수는 카메라를 들고 오지 않은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했다. 이런 기념비적인 날에 카메라가 없다니. 아쉬운 대로 휴대폰으로 수 십장의 사진을 찍고 나서야 식사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음식은 훌륭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어제 다 같이 모여서 전도 부치고 나물도 무쳤다고 한다. 그럴 거면 나도 좀 부르지, 싶은 마음이 들었다. 다음 추석에는 미리 넌지시 말을 꺼내봐야겠다. 하지만 정작 민수를 서운하게 한 건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이거 장모님께서 주신 믹서기로 한 겁니다.”
사위 봉구가 녹두빈대떡을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갈비도, 옥돔도, 다 아내 현주가 준 카드로 샀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다들 김장을 하러 전주에도 다녀왔다던가. 서운했고 아쉬웠다.
‘여태 나만 쏙 빼고?’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그는 식사를 마치자마자 세뱃돈 봉투를 꺼냈다. 다행히 여분의 봉투가 있어서 학규와 현경의 세뱃돈까지 두둑하게 담아 두었다. 그 봉투를 세배를 받은 후 호탕하게 내민 것이다.
“아빠, 이거 너무 많은데?”
봉투를 열어본 지연이 놀라며 말한다.
“많으면 구 서방 주든가.”
민수의 말에 지연이 사위에게 봉투를 건넨다. 눈이 동그랗게 커진 구 사위는 우물쭈물 하다가 봉투를 받아들고는 주방으로 가서 전과 갈비찜을 부지런히 담아주었다.
“명절이라고 사위네 와서 음식 싸가는 장모는 나 밖에 없을 거야.”
현주가 투덜거리듯 말했지만, 민수는 알고 있다. 아내도 이 상황을 즐거워하고 있다는 것을. 집으로 오는 내내 차 안에는 기름 냄새가 진동을 했다. 평소라면 차 안에서 음식 냄새 나는 것을 아주 싫어해서 과자 한 봉지, 빵 한 조각도 안 먹던 민수였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얼른 집에 가서 전을 데워 먹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날 저녁 딸과 아들네 집에 차례로 다녀온 처형이 집으로 돌아왔다. 역시나 처형도 두 손 가득 명절음식을 싸왔다. 이에 질세라 민수도 구 서방에게 받아온 전과 갈비찜을 꺼내 데웠다.
“이거 맛있네! 구 서방이 했어?”
“응. 이거 말고도 산더미처럼 했어. 요새 누가 이런 걸 그렇게나 많이 먹는다고.”
처형의 말에 아내가 투덜거린다. 아내는 늘 속마음과는 다르게 까칠한 말을 한다.
“기특하네. 맛도 아주 좋다. 이거 이렇게 고소하게 부치기가 쉽지 않아.”
“맛은... 있더라. 좀 싸가든가.”
안 돼. 이 녹두전은 아깝단 말이다. 민수는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다행히 처형은 딸과 아들네 집에서 얻어온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녹두전을 마다했다. 육전과 고구마전 보다는 녹두전이 훨씬 맛있는데, 암튼 다행이라고 민수는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 민수는 현주와 함께 처형을 기차역까지 데려다 주었다. 처형이 차에서 내려 손을 흔들고는 돌아서자, 그 순간 현주가 큰 소리로 트림을 했다.
“꺼억~!”
현주는 얼른 창문을 내리며 민망해했지만 민수는 그저 허허허 웃음이 났다.
“아직도 처형 만나는 게 어려워?”
“어렵지. 언니는 나한테 부모님이면서 선생님이고 그렇잖아.”
어릴 때 일찍 부모를 잃은 아내를 키운 건 8할이 처형이었다. 손이 부르트도록 식당 일을 하고 새벽에는 시장 일을 도와가며 아내 뒷바라지를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늘 흐트러짐 없이 살림을 꾸려나가는 모습에 아내는 어리광을 부릴 수 없었다고 했었다.
“군대 말단 병사가 장교를 보는 느낌이랄까.”
그 말에 민수는 아내의 마음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근처에서 시원한 잔치국수나 먹고 갈까.”
“웬일이야, 친구들 안 만나요?”
“명절이잖아.”
“놀 사람 없어서 날 데리고 가는구먼?”
“자네가 바쁘니까 내가 친구들을 만나는 거지. 오늘은 자네가 나랑 놀아주니까 친구들이 필요 없는 거고.”
민수의 말에 현주가 살짝 웃는 것도 같았다. 그렇게 부드러워진 아내의 얼굴을 곁눈질로 보며 민수는 종로 어느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길을 몰라 두리번거리는 아내의 손을 잡았다.
국수집에 들어서자 차게 식었던 얼굴이 한순간에 따뜻해졌다. 멸치 국물 냄새가 가득한 그 공간에서 민수와 현주는 작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잠시 후 말간 국물에 소면이 정갈하게 담겨 있고 그 위로 계란 지단과 김가루, 깻가루가 뿌려진 국수가 나왔다.
호로록.
민수는 그릇 째 들고 국물을 먼저 마셨다. 시원했다. 아내 현주도 숟가락으로 국물을 연신 떠먹는다.
“어제 먹은 기름기가 다 내려가는 것 같네.”
아내의 말에 민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국수를 한 젓가락 먹었다. 이어 잘 익은 김치를 입에 넣자 그 깔끔함과 시원함에 절로 탄식이 나왔다.
“하아... 맛있다. 그렇지?”
“응. 맛있다.”
그렇게 말하는 아내의 얼굴이 살짝 붉었다. 아마도 찬바람에 붉어지고, 뜨끈한 국물에 붉어졌을 테지만 그 모습에 민수는 젊었던 날 처음 데이트를 하던 날을 떠올렸다. 아내는 민수를 만나면 늘 수줍어했다. 부끄러워 눈도 잘 맞추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항상 피어나는 꽃처럼 싱그러웠다. 그 싱그러움이 지금의 까칠함이 된 것은 아무래도 8할이 민수의 탓일 것이다.
“고단했지, 우리.”
“갑자기 무슨.”
민수의 말에 현주는 어색하다는 듯 국수 그릇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연이 사는 거 보니까 말야, 내가 당신한테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이만큼 먹고 살게 해줬으면 됐지 뭐.”
“정말 그거면 돼? 당신은?”
민수가 묻자 현주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새초롬한 표정에 서운한 빛이 떠올랐다. 아주 오래전부터 마음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서운함일 것이다.
“구 서방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 당신도 참 지연이 같았잖아. 일 좋아하고, 욕심도 있고, 능력도 있었고. 그런 당신이 딸 낳고 키우느라, 일도 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어. 내가 조금 더 깨어 있는 사람이었다면 나도 구 서방처럼 살림을 했어도 좋았겠다.. 싶더라고.”
“난 싫어요.”
민수의 구구절절한 말에 현주는 단칼에 대답했다.
“이 서울 땅에 발붙이고 사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지연이 걔 혼자 벌어서는 어림도 없지. 우리도 같이 맞벌이 했으니까 이정도 사는 거잖우. 물론 지연이가 조금 고생하긴 했지만, 그 덕에 지연이도 마음 편히 대학가서 공부한 거잖아요. 난 단지...”
현주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수면 위로 올라온 서운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말을 고르고 있을 것이다.
“난 단지 지금처럼, 당신이 고생이 많네, 한 마디만 해주면....”
거기까지 말을 하고서 현주는 김치를 집어 입에 넣었다. 울컥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짭짤한 맛으로 막으려는 것이다. 국물과 함께 남은 눈물을 삼키는 모습에 민수도 마음이 저렸다.
“미안해. 내가 그 말을 못했어. 마음은 있었는데 그땐 나도 어려서.”
민수는 현주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당신도 수고 많았어요. 살림 못하는 날 만나서 참 고생했지.”
“살림은 나도 못하는데 뭐. 그런데 이제 조금 해볼까 싶어. 구 서방 보니까 자신감이 생기더라고.”
“난 못해요, 난 못해.”
“알아. 내가 해, 내가. 당신은 그냥 쉬어. 가끔 이렇게 나랑 놀아주고.”
싱긋 웃으며 국수 그릇으로 시선을 돌리는 현주를 보며 민수는 인생이란 지금 먹는 이 잔치국수의 맛이라고 생각했다. 함께 먹는 사람을 돌아보게 만드는 맛. 중요한 것을 잊지 않게 만드는 맛 말이다.
어쩌면 민수의 마음에는 두 가지 구멍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중 하나는 어제 아침 가족이 모두 둘러 앉아 기름진 명절음식을 함께 먹는 것으로 채워졌다. 그리고 남은 하나는 이렇게 현주와 마주 앉아 한 그릇에 5천 원 하는 국수를 먹으며 채우고 있다. 민수는 알고 있다. 자신의 마음에는 첫 번째 구멍보다 두 번째 구멍이 훨씬 많았다는 것을. 아마 현주의 마음도 같을 것이다. 어쩌면 집에 있는 그 수많은 물건들은 현주가 자신의 마음의 구멍을 채우기 위해 사들였던 것인지도 모른다. 제발 좀 치우라고 매일 잔소리를 하면서도, 그것이 마음의 문제라는 것을 여태 몰랐다.
민수는 자신의 어리석음에 고개를 절래 절래 저였다. 그리고 다짐했다. 이제부터라도 현주와 함께 그 구멍을 함께 메워가며 살아야겠다고. 그리고 구 서방을 좀 더 자주 만나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