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몸도, 마음도 아픈 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을 본다

by 바람부는 언덕

설레는 여행길이었다.

조수석에 앉은 나는 남편과 나, 아이가 좋아하는 노래를 골고루 틀었다. 남편은 요새 [너에게 닿기를]에 빠져 있었고 아이는 키키의 [I DO ME]에, 나는 백예린의 [산책]을 즐겨 듣는다. 남편과 나 사이에는 나초칩이, 아이의 좌석 옆에도 나초칩이 있었다.


저녁을 먹으러 휴게소에 도착했을 때 아이가 말했다.


"나 밥 안 먹어도 돼?"


나초를 먹었으니 입맛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와 남편만 와구와구 밥을 먹고 다시 길 위로 올라섰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서 속초에 도착했다.


다음 날 푸른 바다를 보러 갔다.


ChatGPT Image 2025년 6월 29일 오후 09_18_41.png

우리 가족은 바다를 매우 좋아한다. 특히 동해바다를.


아이는 한 없이 넉넉한 모래사장에 퍼질러 앉아 모래 놀이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와 남편은 그 모습을 물끄러지 바라보는 것이 참 행복하다. 이번 6월에도 그런 시간을 보냈다. 아이는 처음 보는 어린 동생과 한참을 놀았다. 나도 아이를 따라 바다에 발을 몇 번 담그고 있던 찰나, 남편이 바다로 풍덩 뛰어 들었다. 놀랍고도 경쾌한 순간이었다.



그날 저녁부터 아이의 컨디션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속이 안 좋다고 했고 표정도 영 어두웠다. 다음 날 집으로 오는 내내 힘겨워했고 월요일에는 학교에서도 기운이 없었다고 했다. 화요일 아침 왈칵 토를 하고 나서 하루 학교를 쉬기로 했다.


겁이 났다.


나는 아이가 아프면 사고가 멈춘다. 대체 왜 아픈 걸까, 얼마나 아픈 걸까, 아이의 속으로 들어가서 느껴보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나도 속이 좋질 않았다.


그래도 엄마는 씩씩해야 한다. 나까지 기운 없어 하면 아이가 눈치를 본다. 나는 애써 아이가 그나마 먹을만한 반찬을 찾아 요리한다. 달콤짧짤한 생선 조림을 하고, 메추리알도 조렸다. 다음 끼니에는 고등어도 굽고 구수하게 된장찌개도 끓였다.



힘든 나날이다.


아이는 학교에서 여전히 놀 친구가 없다고 했다. 일이 안 풀리려고 하니 계속 엉키려는지, 예전부터 친했던 친구들에게서도 연락이 오질 않는다. 당분간 친구들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아이는 그저 기다려야 한다. 심심하고 지루하고 고독하다. 이대로 친구가 없는 아이가 될까봐 아이도, 나도 불안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티를 내지 않는다. 이를 악 물고 너는 멋진 아이니까 곧 친구가 생길거라고 말한다. 세상 일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답을 말한다. 아이의 삶이 정답을 비켜가면 어쩌지. 고개를 흔든다. 그건 나중에 생각할 일이다. 지금 그것까지 생각했다가는 나도 나가떨어질지 모른다.



큰 병원에 가야할까 여러번 생각했다.


아이가 자꾸 가슴께가 답답하고 뭔가 걸린 것 같다고 한다. 흔한 증상이니까 그냥 넘길 수도 있겠지만 가끔 인터넷에는 증상을 가볍게 생각했다가 나중에 큰 병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는 사연이 왕왕 있다. 겁이 난 나는 부랴부랴 전화를 해서 엑스레이와 씨티 촬영이 가능한 소아과를 찾는다.


병원에 가서 주절주절 아이의 상태에 대해 설명했다. 의사는 아무래도 멀미가 오래 가는 것 같다고 말하면서도 나를 위해 엑스레이 촬영을 잡아준다. 심장 문제 일 수도 있으니 심전도 검사도 하잰다. 했다. 아무 이상 없었다. 그래도 불안하다.


저기 혹시, 어떤 증상이 있으면 큰 병원을 가야 할까요.


의사가 말하길 못 먹어서 체중의 10%가 빠지면 검사를 받아보는 것도 좋다고 한다. 아이의 몸무게는 29kg이다. 이번에 아프면서 벌써 1kg가 빠졌다. 이제 2kg 남았다. 이대로라면 그것도 금방 빠질 것이다.


조마조마하다.



아이는 힘들다.


심심하고 지루한 일상을 견디는 것도 힘겹고, 몸이 아파 엄마 아빠 걱정 시키는 것도 괴롭다. 뭘 먹으면 속이 좋질 않으니 식사 시간이 다가오는 것도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이러다가 신경성 소화불량이 될까 엄마는 또 두렵다.



그럴수록 엄마는 말이 많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 속에서 사금을 찾듯 애깃거리를 찾아낸다. 재택 알바를 하면서 있었던 일, 식사 준비를 하면서 했던 생각, 여기저기서 들은 갖가지 사연들. 그 말을 하면서 아이가 힘들다는 것을 잠시 외면한다.


아이는 안심한다.


자신이 아픈 것은 속상하지만, 그것이 우리 가족을 무너뜨리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아프기 때문에 좀 더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엄마 아빠가 제 자리를 지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래서 엄마는 애써 말을 한다.



내 마음 속에서 아이의 아픔은 폭풍이다. 밑바닥 진흙까지 모두 휘저어 바닷물을 탁하게 만드는 폭풍 말이다. 하지만 아이 앞에서는 말간 물빛을 보여주기로 한다. 늘 그 자리에 한결같이 출렁이는 바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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