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아이를 탓하지 않기로 한다

아이의 힘을 믿기로 하자

by 바람부는 언덕

외동을 키우면서 가장 신경 썼던 것 중 하나는 아이의 버릇이었다. 외동은 누군가에게 양보를 할 필요가 없다. 외동은 무언가를 빼앗길 기회가 없다. 외동은 관심을 받기 위해 애써야 할 필요가 없다. 외동에게 '독차지'는 디폴트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아이에게 '엄마와 아빠'의 필요와 욕구에 대해 많이 말했다.


"엄마도(아빠도)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해. 그러니까 지금은 혼자 놀아."

"엄마도(아빠도) 하나 남은 피자를 먹고 싶어. 그러니까 반으로 잘라서 먹자."

"지금은 엄마 아빠 말하고 있으니까 조금 기다려줘."


그래서인지 아이는 괜한 일에 고집을 부리지 않는다. 거절에도 꽤 쿨하게 반응하고 기꺼이 다음 기회를 기다린다. 그런 면에서 우리 집은 잘 굴러가는 팀이다.



하지만 아이와 친구 관계는 또 다른 문제다. 나름 배려와 인내를 훈련시켜서 내보냈건만, 또래 사이에서 아이는 종종 고집을 부리고 이기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락스를 뿌려 세균을 제거하듯 아이를 가르쳤다.


"친구에게도 하고 싶은 게 있고, 하기 싫은 게 있어. 그걸 무시하면 안 돼."

"너무 잘난 척하지 마. 그럼 미움받아."

"친구 이야기를 잘 들어줘. 네 이야기만 하지 말고."


한 마디 말로 행동이 수정된다면, 그건 인간이 아니겠지. 아이 역시 마음과 행동을 고치기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기는 하는데, 내 성에 차지는 않는다.



그러다 친구들 사이에서 절교를 당하는 일이 일어났다. 사실 아이보다 내가 더 충격을 받았다. 결국 올게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여러 글과 영상을 통해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익혀 놓고 있었다. 아이에게 혼자서도 잘 지내야 한다고 말해주었고, 대신 엄마와 아빠가 좋은 친구가 되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아이는 매일, 매일 속상한 일들을 한 아름씩 들고 와서 풀어놓았다.


"나는 응원해주려고 했는데 친구가 째려봤어."

"그 친구가 내 과자를 다 먹어버렸어."

"오늘도 나랑 놀기 싫대."


노력은 했지만- 나는 결국 잔소리를 해버렸다.


"친구 입장에서는 그 말이 기분 나쁠 수 있지. 그럴 땐 사과해야 해."

"친구라면 과자를 넉넉히 나눠줄 줄 알아야지."

"너하고 놀기 싫은 마음도 이해해야지."


말할 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내 기준이 너무 높았던 것 같다. 나도 35살이 넘어서야 배려라는 걸 깨달았는데, 그걸 아이에게 강요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아이가 지나치게 함부로 행동하거나 문제적인 말을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지금의 잔소리가 아이에게 또 다른 억압으로 남을까 봐 두려워졌다. 초등학교 때 친구 관계가 어그러지는 것과 엄마의 잔소리로 억압을 경험하는 것 중에 뭐가 더 나쁠까. 나는 후자인 것 같다. 무엇보다도 내가 아이를 믿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제일 큰 문제였다.



그래서 당분간은 잔소리를 줄이기로 했다. 아이 마음을 더 공감해 주고 같이 아이스크림도 더 자주 사 먹어야지. 그 다짐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노력해 보기로 한다.


아이에게는 아이 나름대로의 힘이 있다. 회복탄력성이 있고 스스로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도 있다. 또 함께 하고 싶은 마음과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균형점을 찾아갈만한 지혜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말로 하는 가르침과 교정은 참 힘이 없다. 내가 먼저 아이를 배려하고 그 마음을 알아주어야 아이도 그러한 태도를 자연스럽게 익힐 것이다. 그걸 몰랐다. 아니 알았더라도 사실 너무 어려워서 나 역시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걸 아이에게 강요하고 있었으니.


다시, 우리 좋은 팀이 되기로 한다. 믿어주고 응원하고 격려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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