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상처는 아이의 불안이 된다

엄마가 행복해야 하는 이유

by 바람부는 언덕

나는 내 아이가 공부를 못할까봐 걱정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 이유는 단연, 내가 공부를 잘 했기 때문이다.


내 아이가 나를 닮아 공부를 잘 할 것이라고 믿는다는 말은 아니다. 지금의 한국 교육은 적당히 머리가 좋아서 정복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오랜 말처럼 이 나라에서는 엄마의 정보력과 할아버지의 재력이 있어야 원하는 성적과 입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나는 애초에 교육 정보를 찾아다닐 마음도 없고 양가 할아버지 또한 손녀의 교육에 투자할 만큼 넉넉하지 않다. 주변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어야 될까 말까 한 것이 입시 전략이겠으나, 우리 집은 거기에서 꽤 많이 동떨어져 있다는 얘기다.


아이의 학업 성취도를 일찌감치 포기한 것이냐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나는 초중고에서 배우는 내용은 지식이라기보다는 '상식'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사회에 나와서 사람들과 대화하고 일을 하려면 그 정도는 '기본적으로' 알아야 한다. 따라서 내 아이에게도 학교 공부는 성실히 해야 한다고 말한다. 수업 내용은 이해가 되는지 종종 묻고, 만약 어렵다고 하면 함께 문제집을 풀어본다. 단원평가를 본 후 틀린 문제를 다시 풀어보기도 한다.


그럼에도 아이는 단어 시험 10문제에서 2개만 맞아서 온 적도 있고, 수학 단원 평가에서 70점을 맞은 적도 있다. 그래도 나는 딱히 걱정을 안 한다. 앞서 말했듯이 내가 공부를 잘했기 때문이다. 내가 아이 성적에 연연해하지 않는 이유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자면.


1. 초등학교 때 공부는 학습이라기 보다는 경험에 가깝다.


매일 일어나서 학교에 가고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고 오는 것. 그것이 초등학교 생활의 95%라고 생각한다. 반복되는 하루 일과를 충실하게 해내는 연습은 초등학교 때 하는 것이다. 아직은 어떤 성과나 결과를 기대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매일 학교에 잘 다녀오는 것을 기뻐하고, 칭찬해준다.


이와 더불어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주려고 노력한다. 줄넘기 학원에서 자신의 몸에 집중하는 경험. 땀 흘리고 숨이 차는 경험. 피아노 학원에서 내 손으로 음악을 연주해보는 경험. 틀린 부분을 반복해서 연습하는 경험. 방과 후 요리 수업에서는 다양한 재료를 만져보고 스스로 만들어 보는 경험. 뭐 이런 거 말이다.


2. 초등학교 시절은 마음이 크는 시기다.


이 때는 엄마 아빠와 애착을 보다 강화하고 견고하게 만들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곧 사춘기가 시작되면 아이의 정체성은 크게 흔들릴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 가족간의 대화가 원활하게 흘러가도록 문화를 만들고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을 함께 하고 이 가정을 함께 꾸려나간다는 의식을 심어주고 싶다.


안타깝게도 요새 우리나라 중고등학생의 마음은 많이 병들어 있다. SNS나 학교 폭력 같은 사회적 문제도 문제겠으나, 그보다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아이들의 마음이 튼튼한가 이다. 그리고 아이들의 마음은 어쨌든, 부모와의 관계를 바탕으로 성장한다.


3. 공부는 본인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대치동에서 학원을 많이 다니는 아이들 중에서도 공부를 하는 아이가 있고 안 하는 아이가 있다. 물론 환경적인 요인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의지다. 의지만 있으면 선행학습 없이도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다.


내 아이가 공부에 의지가 있는지 없는지 난 모르겠다. 초등학교 시절은 그것을 알 수 없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길 바란다. 아이의 꿈과 상관 없이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야해! 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4. 좋은 대학은 정말 좋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많다.


나는 좋은 대학을 나왔다. 하지만 저소득자다. 그 이유는 내 마음이 썩 건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도 참 많이 애를 써 왔다. 직장 생활도 열심히 해보려고 했고 이것저것 찾아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늘 쉽게 지쳤고 그 지침의 정도가 좀 컸다.


그러다보니 아이에게도 좋은 대학보다는 건강한 마음을 주고 싶다. 물론 둘 다 가지면 참 좋겠지만, 만약 둘 중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건강한 마음을 선택할 것이다.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는 아이가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 받기 보다는 오늘 하루 행복하게 지내기를 바란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 곧 다가올 중간 고사나 수능을 위해 애써야 하는 시간이 오겠지만 일단 지금은 하루하루가 즐거웠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아이의 학업 성취도에 대해 전혀 스트레스 받지 않는다.



반면, 나는 아이의 인성이나 친구 관계에 많이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 이유는 내가 나 자신을 그리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자주 어리석었고,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기도 했다. 내 필요에 의해 만나고 헤어졌으며 감정을 숨기지 못해 상대를 곤란하게 만든 적도 많다. 나는 늘 어린 아이 같았고, 이런 기억들은 나를 지금까지도 괴롭힌다.


중 2때 따돌림은 받은 후로 나는 평생을 타인의 눈치를 보며 살았다. 그 눈치는 매일 밤 나를 후회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때 이 말은 하지 말걸. 내가 그 말을 해서 그 사람이 속상했겠지. 나를 싫어할 거야. 이런 말들이 내 안에 가득했다. 괴로웠고 지쳤다. 일을 해야 할 에너지는 모두 여기에 소진되었다. 나는 밤새 울며 뒤척였다.


여전히 나는 그대로다. 그나마 결혼을 하고 남편과 함께 살면서 많이 좋아졌지만 꽤 자주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고 나 자신의 못남을 감당하지 못해 허덕인다.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의 인성과 친구 관계에 예민하다. 아이가 날 닮아서 나처럼 살까봐 그게 너무 무섭다. 아이가 내 딸이라서 사람들에게 미움 받을 까봐 미안하다. 사라지고 싶다. 내가 없는 게 낫지 않을까 자주 생각한다.




결국 엄마의 양육 방식은 엄마 자신의 삶을 고스란히 담아 낸다. 공부에 컴플렛스 였던 엄마는 아이에게 공부를 시킬 것이고 몸이 약한 엄마는 운동을 시킬 것이다. 누구나 다 자신이 좋았던 것을 시키고 나빴던 것을 피하려고 한다.


문제는 이러한 엄마의 마음을 아이들이 귀신같이 알아차린다는 것이다.


아이는 다 안다. 엄마가 무엇을 힘들어하는지. 그리고 눈치를 본다. 아이도 불안한 것이다. 엄마가 매일 같이 학교 성적 이야기만 하면 아이는 시험이 두려울 것이다. 나처럼 매일 친구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면 아이는 관계를 맺어야 할때마다 망설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엄마가 먼저 자신의 상처를 털어내고 건강해져야 한다. 상처를 극복해 본 경험은 자부심이 되고 힘이 될 것이다. 아이가 같은 경험을 하게 되었을 때 극복하지 못한 엄마는 놀라고 당황하겠지만, 극복한 경험이 있는 엄마는 좀 더 의연하게 필요한 이야기들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아직 나는 내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을 모른다. 머리로 아는 사실들만 되뇌이며(다 지나갈 거야. 내 아이는 내가 사랑해주면 돼. 너무 휘둘리지 말자) 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라는 수 밖에 없다. 최대한 내 아이가 내 상처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자주 웃고 씩씩하게 말하고 부지런히 움직인다.


행복해야 한다. 더 달리고 잘 먹고 좋은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좋은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아이는 나를 보고 어른을 꿈꾸고 세상과 사회를 예상할 것이다. 좋은 그림이 되어주고 싶다. 거기에는 까만 얼룩도 있고 붉은 눈물 자국도 있겠지만, 이 모든 것이 결국 좋은 그림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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