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17년 2월부터 샌프란시스코의 DoorDash(https://www.doordash.com)라는 스타트업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인만큼 나름대로 신중하게 직장을 선택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첫 블로그에 담아보려 한다.
01. 개발 입문
나는 UC Berkeley에서 Computer Science를 공부했다. 대학 내내 같은 수업을 들었던 대부분의 친구들과는 달리 나는 대학교에 들어와서 처음 코딩을 접하게 되었다.
처음 내가 실무 개발을 경험한 것은 대학교 2학년을 마친 여름방학이었다. 당시 운이 좋게도 Expedia 샌프란시스코 지사에서 3개월간 인턴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좋은 팀원들과 멘토, 그리고 인턴에게 주어지는 것 치고는 꽤 영향력이 있던 프로젝트까지 정말 좋은 근무 환경에서 그렇게 첫 회사 생활을 하였다. Expedia에서의 인턴십은 비교적 실무 경험이 부족했던 나에게 웹앱에 대한 깊은 이해와 회사 체계에 대해서 배울 수 있던 좋은 기회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이는 내가 나중에 창업을 시작할 수 있었던 발판이 되어주었다.
사용자의 다음 일정을 홈페이지에서 바로 볼 수 있는 기능을 구현하였다
그렇게 인턴 3개월이 지났고, 내가 맡았던 프로젝트가 좋은 결과를 (그 해 고객 센터에 걸려오는 문의 전화의 비율을 줄이는 top 10 기능에 선정되었다) 낳았고, 같은 팀 동료들도 좋게 봐준 덕분에 좋은 조건으로 풀타임 오퍼를 받았었다. 그러나, 회사가 컸던 만큼 코드 베이스도 크고 복잡했고 작은 일들을 진행하기 위한 프로세스도 너무 복잡하여 (웬만큼 큰 회사라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그에 대한 아쉬움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내게 주어진 일 외에 주도적으로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이 어려워 보였고, 근무 환경이 정말 좋았지만 살짝 loose 하게 보였던 탓에 내가 이 회사에 입사하고 3년이 지났을 때 과연 경쟁력이 있는 개발자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했다. (물론 모든 대기업이 이렇다는 게 아니다. 내가 인턴을 하고 느꼈던 개인적인 감정이었을 뿐). 그래서 결국 좋은 오퍼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오퍼를 거절했다. 그리고, 나 스스로 내린 이 결정을 정말 후회하지 않길 바랬다 (다행히도 현재 후회하지 않는다 ㅎㅎ)
02. 창업의 시작
그러던 어느 날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K Group(bay area 한인 커뮤니티) 행사에서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영이가 처음 “TasteHome”의 아이디어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딱히 창업이라는 단어를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회사 일에 무료해진 나에게는 정말 솔깃한 아이디어였고, 나 역시 공감하고 있던 부분이라 망설임 없이 같이 해보자고 했다.
TasteHome 랜딩 페이지
TasteHome은 처음에 집밥을 플랫폼화 시키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요리를 좋아하는 누군가가 만든 음식을 시간이 없거나 집밥이 그리운 누군가가 소비하는 플랫폼이었다. 심심찮게 지역 한인 커뮤니티들에서 반찬을 사고파는 것을 볼 수 있었고, 한국인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나라의 유학생/이민자들의 커뮤니티에서의 니즈를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음식에 대한 규제와 번거로운 프로세스 탓에 meal kit provider라는 결국 조금은 다른 모델로 pivot 했다. 그렇게 TasteHome은 미식(Miisik)이라는 이름으로 "15분 요리"를 내세운 한식 쿠킹 키트로 다시 런칭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요리는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이었고 우리는 그 과정을 단순화하고 싶었다.
미식 랜딩 페이지
짧지 않았던 8개월 동안 나는 웹사이트 개발을 담당하였고 회사 일 이후 처음으로 나만 보고 끝낼 포트폴리오 용이 아닌 사용자들이 직접 쓰는 웹앱을 만들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운영에 필요한 모든 일들을 나와 가영이가 하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우린 정말 무모했었다 싶다. 갑작스럽게 휴학을 하면서까지 무모하게 시작했던 터라 많은 선배 개발자 분들께 조언을 구했고, 나름대로 성공적인 결과물을 낼 수 있었다. 결국 우리가 생각했던 방향성과 미식이 가는 길이 달라 서비스를 종료하기로 했지만 주체적으로 일을 진행하면서 배운 게 가장 많았던, 그리고 정말 재밌었던 시간이었다. (더 자세한 미식 이야기는 이 곳에서)
미식을 시작한 것은 생각보다 꽤 내 대학 생활에 큰 부분을 차지했다. 짧지만 길었던 시간 동안 직접 end-to-end 서비스를 만드는 것을 경험하였고 고객들과 직접 소통을 하며 (미식 아니었으면 알지 못하였을) 개발 외의 많은 부분에 대해서 경험하고 배우게 되었다. 다만 처음에 막연하게 Food Tech를 접목시키고 싶었다가 결국 온라인으로 음식을 판매하는 서비스(e-commerce 형태의)가 되어버린 점은 아직도 아쉽다.
03. 취준생으로 돌아가다
미식을 통해 정말 많은 경험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개발적으로도 성장했음을 느꼈지만 서비스를 중단하기로 결심하고 난 뒤엔 나름 멘붕의 시기를 겪어야 했다. 유학생으로서 무작정 한 학기 휴학을 했던 터라 막상 여름방학에 인턴을 구하던 중 인턴 비자(CPT) 발급 조건에 미치지 못한 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full-time과 직결되는 대학 마지막 인턴십을 하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이 시기의 인턴십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당혹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2016년 여름에는 평소 관심 있던 분야의 리서치와 졸업 학점을 위한 여름학기를 병행하였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아쉽게 흘러갔다. 여름 인턴이 없었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과 달리 full-time offer가 없었고, 가을 학기가 시작하자마자 나는 직장을 알아보는 것에 매달렸다. 나는 12월에 졸업을 하는 터라 그전에 원하는 직장을 구하려면 시간이 촉박했다. (채용 프로세스가 2-3달 혹은 그 이상이 걸린다)
우리 학교에서는 매 학기마다 커리어 페어가 있었는데, 회사마다 2-3명의 리쿠르터 및 개발자들이 배정되어있고 학생들이 돌아다니며 자기소개를 하면서 이력서를 제출하는 식이었다. 커리어 페어가 끝날 때쯤이면 리쿠르터 손에는 몇백 장의 이력서가 들려있고 그중 선택받은 몇 명 혹은 몇십 명만이 인터뷰 기회를 얻게 된다. 그 때문에 나는 수많은 구직자들 사이에서 각 회사 담당자들에게나를 기억시키는 것을 최우선 순위로 삼았다. 그래서:
1) 레쥬메를 일단 A4 종이가 아닌 두툼하고 비쌌던 종이에 프린트해갔고 (담당자들이 거의 다 내 종이에 대해서 한 마디씩을 했다. 종이 정말 좋은 거 썼네라고 ㅎㅎ)
2) 몇 번을 쓰고 지우길 반복하다 미식 및 나의 이야기를 30초-1분 정도로 외워서 갔다. 그 결과 내가 들렸던 거의 모든 회사에서 커리어 페어 당일 밤 혹은 그다음 날 인터뷰를 보자고 연락이 왔다. (인터뷰 준비에 관련해서는 나중에 따로 포스팅을 할까 한다)
04. 선택
그러던 중 몇 달 사이 몇 개의 회사에서 최종 오퍼를 받았고 앞으로 어떤 곳에서 함께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고민 끝에 아래와 같은 기준을 세웠다:
1) Interesting product - 나는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할 때와, 해야 되기 때문에 하는 일을 할 때의 에너지가 달라서, 정말 내가 좋아하고 재미있어할 프로덕트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2) Hands on experience/growth - 내가 성장할 수 있고 또 그에 따른 책임감을 가질 수 있는 회사였으면 했다. 단순 버그나 사내 프로그램 고치는 것만이 아닌 실제 프로덕트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프로젝트를 하고 싶었다.
3) Team & Culture - 대부분의 시간을 같이 보낼 동료들이기 때문에 정말 같이 일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회사 오퍼 레터 사인을 하기 전, 회사에 방문해서 팀을 만나고 알아보는 Batch day라는 이벤트가 있었다. 이 회사에서 일하는 여러 엔지니어들을 만나며 느낀 점은 정말 이 일이 좋고 재밌어서 하고 있구나였다. 만났던 사람들 모두가 너무나 열정적이고 똑똑한 사람들이라 이 사람들과 같이 일을 하며 배워보고 싶었다. 또한 실리콘밸리 회사들의 tactic 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입사 확정을 하기 전에, 대표인 Tony가 직접 이메일을 보낸 부분이 내게 더 와 닿았었다:
CEO 토니의 이메일 중
사소하지만, 정말 구성원 한 명 한 명을 소중히 생각하는 회사라고 느껴졌다.당시 여러 오퍼들을 받았었고, 몇 개의 대기업 인터뷰들을 진행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DoorDash 오피스에 방문하고 난 뒤 모든 인터뷰들을 종료했다. 나는 꼭 이 회사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기간이지만 대기업 인턴, 그리고 창업을 거쳐, 다음 달부터는 스타트업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2016년은 나에게 멘붕의 시간이기도 했지만, 그 멘붕의 시간을 겪은 덕에 더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는 해였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봐도 무모한 결정들을 많이 내렸었던 것 같은데, 결국 후회 없는 결정들이었고 덕분에 다양한 일을 경험해 볼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05. 2017년도 목표
이제 학생 신분에서 벗어나, 직장인이 되었는데 알찬 한 해를 보내고 싶어 아래와 같은 목표들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