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마음

멈추지 않고, 누구에게서 누구로.

by 소현

비가 내리던 오후였다. 정류장 벤치에 우산 하나가 놓여 있었다. 가지런히 세워진 우산 손잡이에는 작은 쪽지 한 장이 매달려 있다.


"오늘 우산이 없는 당신에게."


몇몇은 고개를 돌려 바라보다 그냥 지나쳤고, 누군가는 가볍게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우산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잠시 뒤, 한 여자가 버스에서 내리더니 비를 피해 정류장 아래로 달려왔다. 벤치 옆에 놓인 우산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리던 그녀는, 결국 조심스레 우산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길을 건넜다. 우산 아래로 묘하게 가벼운 표정이 드리워졌다.


그 우산이 어디서 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누가 남긴 것인지도. 하지만 그 마음만은 분명 어딘가로 전해졌다. 그날, 누군가의 어깨는 덜 젖었다.






세상에는 이름 없는 마음이 많다. 누가 시작했는지 어디서 끝나는지도 알 수 없지만, 그 마음은 어딘가에 남아 흐른다. 누군가에게 건넨 인사, 무심히 내민 손,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여긴 배려들. 그런 마음은 뜻밖의 순간 어느 골목의 햇빛처럼 나를 비추기도 한다. 곧장 되돌아오지 않아도 건넨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의 하루를 밝히고, 또 다른 사람이 어딘가에서 한 조각 마음을 내어주게 만든다. 이름도 없고 기억조차 나지 않는 마음들이 그렇게 사람 사이를 건너다닌다. 서로를 알지 못한 채 서로를 살게 하면서.


그런 마음을 마주칠 때마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되살아난다. 하루를 견디는 일도 벅찬 세상에서 아무 말 없이 누군가의 시간을 덜 춥게, 덜 외롭게, 덜 상처받게 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불현듯 마음을 적신다. 그 마음은 대단한 무엇으로 남지 않는다. 눈에 띄지도 않고 이름이 붙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마음의 온도를 조금씩 바꾸어 놓는다. 작은 행동 하나, 스쳐 간 친절, 남겨진 잔결로 오래도록.


엄마는 아이의 젖은 운동화를 벗기며 작은 수건으로 발을 닦아주고, 남편은 거실 불을 끄기 전 아내가 벗어둔 양말을 세탁기로 옮긴다. 이른 아침 누군가는 배달된 우유에 비닐을 씌우고, 골목 어귀에서는 퇴근길의 누군가가 고양이 앞에 물그릇을 놓아둔다. 이처럼 이름도 주인도 없는 작은 행동들이 하루를 지나며 어느 어깨를 덜 젖게 한다. 그 마음은 어디에선가 또 다른 하루를 밝혀내고, 그 빛을 받은 이가 다시 누군가를 향해 손을 내밀게 만든다. 말보다는 기척으로, 의도보다는 여운으로.


사랑은 늘 묵묵히 세상을 돌고 있다. 마음은 그렇게 흘러간다. 멈추지 않고, 누구에게서 누구로, 아주 오래도록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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