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모든 기도는 나를 향해 있었다
거울 앞에서 종종 멈추게 되는 순간이 있다. 나에게서 아빠가 겹쳐지는 순간. 나는 아빠를 많이 닮았고, 그럴 때마다 가슴이 먹먹하게 내려앉는다. 내가 가장 닮은 사람은, 마음 깊이 오래 밀어냈던 사람이었다.
작년, 병상에 누워 있던 아빠를 기억한다. 푹 꺼져버린 뺨과 힘없이 늘어진 앙상한 손. 아빠라는 사람의 온기를 기억할 수 없을 만큼 낯설었다. 나는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고, 그저 숨을 죽이며 그 낯선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날의 침묵은 깊고 무거워서 마음 어딘가가 조용히 꺼져가고 있었다.
아빠는 늘 먼저 다가오는 사람이었다. 언제나 먼저 전화를 걸었고, 손을 내밀었으며, 마음이란 것도 늘 그쪽에서 먼저 건넸다. 말끝에 있던 문장도 비슷했다. "우리 딸 사랑해. 아빠한테도 사랑한다고 해주라." 왜 그렇게 그 말이 어려웠을까.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언제나 거기서 멈췄다. 말은 안 나갔고 마음만 돌고 돌았다. 그러다 끝내, 아빠가 세상을 떠나가려던 날에야 입을 열었다. 무너지는 마음을 붙잡은 채, 더는 미룰 수 없어서 겨우 꺼낸 한마디였다. "아빠 사랑해, 사실은 늘 그랬어요." 아빠가 천천히 눈을 떴다. 아주 잠깐, 아주 천천히. 오래 기다린 말을 마침내 들은 사람처럼 나를 바라봤다. 그게 전부였고 마지막이었다.
아빠의 장례식장 한켠에 동생과 마주 앉았다. 나보다 더 아빠에 대한 기억이 없는 아이였다. 동생은 아빠가 밉지 않다고 했다. 그냥 아무 감정이 없다고 했다.
나는 말했다. "아빠가 있어야 할 자리에 없었다는 것, 그 빈자리가 상처였던 걸지도 몰라." 그 말을 하며 나도 내 감정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아빠가 남긴 작고 희미한 사랑의 흔적들을 더듬으며, 오랜 세월 품고 있던 원망과 사랑의 경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장례식장 안에는 화환들이 벽을 따라 길게 줄지어 있었다. 아빠를 배웅하는 길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고, 내내 자리를 지키던 아빠의 친구들은 새벽이 되어도 떠나지 못한 채, 술에 잠겨 이곳저곳에 누워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알게 됐다. 아빠는 아빠 나름의 방식으로 충분히 기억될 만한 삶을 살아왔다는 걸.
아주 어릴 적, 바다에 간 어느 여름날. 아빠가 안전선을 넘어 멀리까지 나아가던 날을 기억한다. 나는 한참을 바라보다 울음을 터뜨렸다. 금세 돌아올 줄 알았는데, 물 위로 점점 작아지는 아빠의 뒷모습에 겁이 났다. 소리 내 울면 돌아와 줄 것 같아서 울음은 커져만 갔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들이 그날 바닷가에서 조용히 밀려들었다. 아빠는 그 일을 참 오래 이야기했다. 누군가, 자신을 세상의 전부처럼 바라보던 순간을 오래도록 기쁘게 여겼다. 나 역시 또렷하게 기억한다. 아빠가 웃던 얼굴, 그날의 바닷바람. 그랬다. 나에게도 아빠가 전부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 순간이 아빠에게 기쁨이었듯 내게도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다.
첫사랑에 아팠던 어느 새벽, 가장 힘들고 외로웠던 날, 떠오르는 사람은 항상 아빠였다. 늘 먼저 걸려 오던 아빠의 전화였지만 그럴 때만큼은 내가 먼저 전화를 걸었다. 아빠의 목소리를 들으면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아빠를 미워하면서도 삶의 가장 아픈 순간엔 결국, 그 사람을 가장 먼저 찾는다는 것을.
아빠의 삶이 얼마나 버거웠는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남들 앞에선 강한 모습이었지만, 내 앞에서는 한없이 약한 사람이었다. 아빠는 자신의 고단한 삶을 내게 단 한 조각도 물려주지 않으려 애썼고, 나는 그 덕분에 마음 놓고 철부지로 자랄 수 있었다.
아빠의 기도는 언제나 나로 시작해 나로 끝났다고 했다. 내가 태어난 날부터 줄곧 그는 날 위해 빌었다.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밥을 끊고, 한겨울 새벽 아무도 없는 예배당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단 한 가지 바람만을 되뇌었다고 한다. 자신의 딸이 아프지 않기를, 외롭지 않기를, 길을 잃지 않기를. 그 조용하고 절절한 기도들 안에 그가 할 수 있는 사랑의 전부가 담겨 있었다. 나는 그걸 너무 늦게 알았다.
이제야 내 안의 아빠를 온전히 품는다. 어설프고 서툴렀지만 그 사랑이 내게는 가장 귀한 것이었다. 그 사랑은 시간이 흘러도 내 삶 깊숙이 남아 있는 그리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