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88, 다시 피아노에 도전하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피아노

by 박아나

투명하다. "물 따위가 속까지 환히 비치도록 맑다. 사람의 말이나 태도, 펼쳐진 상황 따위가 분명하다. 앞으로의 움직임이나 미래의 전망 따위가 예측할 수 있게 분명하다."


‘투명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누구나 짐작 가능하듯이 이러하다. ‘투명하다’라는 말은 이런 사전적 정의처럼 단순히 맑은 물을 표현할 때 말고도 감정이나 상황을 묘사할 때 자주 쓰인다. 사랑에 빠진 그 미소와 눈빛은 숨길 수 없이 투명하다. 뛰어난 재능으로 볼 때 그의 미래는 의심할 여지없이 투명하다. 뭐 이렇게 대체로 긍정적이다.

멜로가체질.jpg 뭐... 고백 직전의 이런 느낌? 드라마 <멜로가 체질> 사진 :Tv report

요즘의 내게 ‘투명하다’라는 말은 그렇게 좋은 의미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상황은 이렇다. 피아노 연주회를 두 달 앞두고,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분명 많이 늘었고, 완벽까지는 아니어도 점점 기대했던 수준으로 가고 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내가 잘 안 되는 부분들이, 내가 놓치는 표현들이, 너무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매우 투명하게 보인다. 아니 들린다. 예전에는 틀리는 음들이 훨씬 더 많았고, 표현도 많이 부족했었지만, 그렇게 거슬리지 않았다. 내 마음에 들게 연주가 되는 부분은 많지 않아서 고쳐야 할 부분의 범위가 방대했기에 오히려 투명하다기보다는 불투명했다. 그래도 언젠가 연습을 계속하다 보면 훨씬 나아질 거라는 믿음이 있어 갈길은 멀어도 마음은 편했다.


예전에 비해 잘 안되던 부분들이 많이 해결된 지금은 뭐랄까, 이상하게도 더 거슬린다. 고화질 TV가 처음 등장했을 때 드라마 속 연기자들의 얼굴에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모공과 잡티가 보였던 것처럼, 나의 문제점들이 매우 투명하게 보인다. “정말 흠잡을 데 없이 투명한 소리네요!”가 아니라 “정말 흠이 투명하게 들리네요!”라고 말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전체적으로 완성도는 많이 높아졌는데 왜 이렇게 더 투명하게 들리는 걸까.


사람의 형상을 만드는 조각가를 떠올려 본다. 처음에는 깎아내야 할 곳들이 너무 많아 지루한 작업이 당연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언젠가 완성될 작품을 상상하면서 슬쩍 흥분되기도 한다. 그렇게 기대 반, 지루함 반의 시간이 지나면 극도로 예민해진다. 끝나야 될 것 같은 작업을 언제까지 붙잡고 있어야 할지 슬슬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완성된 것 같은 내 앞의 사람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듬어야 할 부분들이 너무 많다. 날렵하게 세웠다고 생각했던 코끝은 두리뭉실하고, 선한 인상을 주려고 했던 눈매는 날카롭고, 인위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애써 만든 입술의 주름은 부자연스럽다. 조금씩 더 깎아내야 할 것 같은데, 잘못 깎으면 더 이상해 지거나, 어쩌면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모르니 무척 조심스럽다. 조각칼을 잡은 손에도 날이 선 것처럼 긴장되는 작업. 뚫어지게 쳐다보며 더 다듬을 부분은 없는지 몇 번을 돌려보고 확인한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로댕도 엄청 생각하면서 이 조각을 완성했겠지.

그렇다. 이 부분을 고치면 저 부분이 거슬리고, 다른 부분을 손대면 또 다른 부분이 불만족스러워 조각칼을 놓지 못하는 조각가처럼 피아노를 연습하면 연습할수록 고칠 부분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여기저기 몸을 돌아다니는 신경통처럼 곳곳에서 치료를 원한다. 왜 갈수록 투명하게 아픈 데가 보일까. 일단, 그만큼 곡의 완성도가 높아졌기 때문에 기대치도 높아져서겠지. 처음에는 이 정도면 괜찮아라고 만족했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그 이상이 돼야 만족이다. 더 깎아내고 도려낼 부분이 선명하게 들린다. 듣는 귀도 날카로워졌기 때문이다.


연습 방법과도 관련이 있을지 모르겠다. 보통 처음 곡을 연습할 때 곡의 첫마디부터 시작한다. 당연하다. 처음이니까 처음부터 시작하는 게 맞다. 소나타를 처음 연습 시작한다 치면, 첫 제시부가 익숙해질 때까지 보통 제시부가 있는 앞부분만 연습한다. 그러다 어느 정도 완성된 것 같으면 슬슬 전개부로 넘어간다. 이때도 일반적으로 제시부부터 전개부까지 함께 묶어서 친다. 습관적으로 첫마디부터 치게 되어 있으니까. 그럼 제시부는 새로 시작한 전개부보다 먼저 연습을 해왔기 때문에 연습량이 이미 많은 상황. 그러고 나서 제시부와 전개부에 이어 재현부까지 들어가면, 연습량의 순서로 따지면 조금 극단적으로는, 제시부가 3이면 전개부 2, 재현부는 1이 될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제시부는 본의 아니게 반복 연습하면서 더 잘하게 되고, 전개부와 재현부는 상대적으로 부족한데도 그냥 넘어간다. 첫 제시부가 잘되니까 곡이 전체적으로 잘 흘러가고 있다는 착각은 덤. 그런 착각 속에 이제 좀 완벽한가 싶지만 그럴 리가. 연주회를 앞두고 예민함과 꼼꼼함이 뒷심을 발휘하면, 뒷부분에서 집중적으로 반복되는 실수들에 적지 않게 당황한다. 뒤로 갈수록 연습이 많이 부족했구나. 진작에 순서를 바꿔가면서 연습할 걸.


그래도 현재 상황이 어떤지 잘 파악하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투명하게 잘 안 되는 부분은 투명하게 잘 치도록 연습해서 고치면 되는 일이니까. 사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연주회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연주회를 앞두고 기분이 어떠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 연주회 날을 상상하면요, 엄청 신나든지, 아니면 긴장이 많이 될 것 같아요.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는 거니까 잘해야 된다는 부담도 있으니까요.” 긴장될 것 같다는 말에 선생님은 걱정이 됐을까. “결과보다는 과정에 의미를 둬야 될 것 같아요. 연주회를 준비하는 과정을 즐기면 결과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요.”

인터파크 홍보.jpg 인터파크에서 예매 시작요! 티켓을 사기만 하다가 팔아보니 뭔가 새로운 경험이에요. 아... 즐겁다?!

정답이다. 요즘 내게 가장 필요한 말, 결과보다는 과정을 즐기자. 나는 “떨지 말고 큰 실수만 안 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정말 잘 쳐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해 줘야지!” “생각지 못한 감동으로 무대를 꽉 채울 거야.” “진작 피아니스트 하지 그랬냐?” 뭐 이런 걸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들이 스멀스멀 나를 잠식하면서 나도 나에게 기대하고, 나에게 큰 부담을 지우고 있다. 결과에 쏟아질 박수에만 의미를 두고, 과정에서 오는 고단함을 이겨낸 나 자신에게 보내는 박수는 잊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나만 아는 수고, 그리고 그 수고를 기꺼이 해내고 있는 요즘의 나는 어떤가. 계획은 있었지만 머뭇거리다 이제야 시작하는 유튜브 채널과 연주회 관련 이런저런 서류 작업과 홍보 업무들로 하루가 길다. 어디 멀리 가면 연습을 못할까 봐 불안하고 주말에도 마음 편히 쉬지 못한다고 불평을 늘어놓지만, 만약 연주회라는 이 멋진 프로젝트가 없었다면, 요즘의 내 삶은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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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와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공연에서 들었던, 쇼버가 쓴 시로 만든 슈베르트의 가곡 “음악에 An die Musik” 가 마음에 콕 박힌다. “너 아름다운 예술이여. 세상이 어두울 때마다, 삶의 잔인한 현실이 나를 옥죌 때마다 너는 내 마음에 따뜻한 사랑의 불을 지폈고, 더 나은 세상으로 나를 이끌었지. 너의 하프에선 종종 한숨소리도 흘러나왔지만, 너는 언제나 달콤하고 신성한 화음으로 더 나은 시절의 천국을 내게 열어 주었지. 아름다운 예술이여, 내게 감사할 뿐.”

조성진 괴르네.JPG 공연을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를 더 나은 세상으로 이끌어주는 기분. 물론 조성진, 괴르네, 슈베르트가 함께 했기에 그렇지만.

난 그렇게 음악으로 더 나은 세상으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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