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88, 다시 피아노에 도전하다

과정은 아프다

by 박아나

매일 출근할 직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 때문인지 운전을 할 일이 많다. 경기도에 사는 나는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해서 서울로 올라가는 상경길에 거의 매일같이 합류한다. 한 번 서울을 떠나기는 쉬어도 다시 서울로 돌아가기가 어려운 것이 헉 소리 나게 오른 부동산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정말 헉 소리가 나올 정도로 막히는 서울 가는 길은 무척이나 멀고 험난해 다시 서울에 나올 생각을 접게 만드니까 말이다.

경부고속도로.jpg 평일 출퇴근 시간, 월요일 오전, 금요일 오후, 토요일은 많이 막힌다. 사진 : 연합뉴스

양재에서 반포로 이어지는, 언제 출발하느냐에 따라 그 구간이 더 길어지기도 짧아지기도 하며, 요일에 따라 차이가 나는 이 길은, 차선을 바꿀 틈조차 노리기 쉽지 않은 빡빡한 구간이다. 처음 내비게이션을 찍었을 때와는 다르게 자꾸만 늘어가는 도착 시간에 약이 오르기도 하지만, 이젠 그것조차도 단련되어 너그러운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는다. 사실 제일 적응이 되지 않는 부분은 다리, 오른쪽 다리와 발이다. 쉴 새 없이 반복되는 액셀과 브레이크의 환상의, 아니 환장의 조합은 나의 오른 발목과 허리를 엄청 뻐근하게 만든다.


최근에 발목이 자주 불편해서 운전할 때 자세에 문제가 있나 생각하고, 스트레칭에 더 열을 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증이 예전보다 빨리 가시지 않아서 슬슬 걱정이 되었다. 이렇게 걱정이 되는 이유는 운전할 때 말고도 나의 오른발이 요즘 많이 혹사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아노 연습할 때 페달을 밟아야 되는데, 주로 이용되는 댐퍼 페달도 역시 자동차의 액셀의 위치에 있기에 오른발을 써야 한다. 공연을 앞두고 곡을 전체적으로 다듬고 있는 중인데, 페달링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아무래도 그래서 더욱 발목에 무리가 가는 느낌이다.


페달.png 오른쪽에 있는 댐퍼 페달은 서스테이닝 페달이라고 불려요. 사진: J lesson블로그

나의 발목은 불편하지만, 페달은 제2의 손가락이라고 할 정도로 피아노 연주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담당한다. 얼마 전에 내한 공연을 한 피아니스트 스티븐 허프는 최근에 낸 음악 에세이 러프 아이디어스(Rough Ideas)에서도 페달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예술의 전당 연주회를 앞둔 인터뷰에서도 "페달은 연주의 모든 것을 좌우합니다. 한국 음식에서 마늘과 같죠. 빠짐없이 사용합니다."라고 말했다.

스티븐 허프.jpg 피아니스트 스티븐 허프의 책, 주문했습니다. 사진 : 뉴시스

특히 음을 부드럽게 이어서 레가토 legato로 연주해야 하는 경우에 손가락만의 기술로는 부족할 수 있는데, 그 틈을 페달이 채워준다. 다시 말하면 댐퍼 페달 없이 완벽한 레가토 연주는 힘들다는 말이다. 쇼팽이나 드뷔시의 피아노 곡들을 페달 없이 그냥 연주한다고 상상해 보라. 글쎄... 곡이 주는 감동과 매력이 반감될 것임에는 분명하다. 댐퍼 페달은 다소 밋밋하게 들릴 수 있는 프레이즈를 꿈속에서 속삭이는 것처럼 부드럽게 만들어주기도 하고, 강하게 내려치는 음도 더 길게 울리게 만들어 여운을 준다. 우리는 이 페달을 효과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쇼팽의 음악은 더 감미롭게, 드뷔시의 음악은 더 몽환적으로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페달을 모든 곡에 적용해야 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던 스티븐 허프도 마늘 이야기를 하면서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한국음식에 마늘을 쓰지 않을 때가 있다고? 페달도 그래요. 하하.” 모차르트의 소나타는 마늘 없이 깔끔하게 요리, 아니 연주해야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페달을 많이 쓰지 않는다. 내가 연습하고 있는 또 다른 곡인 모차르트 소나타 12번도 페달을 최소한으로 사용해서 연주하고 있는데, 그 덕분에 발이 쉴 수 있어서 모차르트에게 새삼 감사함을 느낀다.


모차르트의 곡에서 휴식했다면, 드뷔시의 아라베스크는 페달의 향연이다. 첫 음부터 마지막 음까지 페달의 기운을 받지 않는 구간은 거의 없다. 계속되는 페달에 음들이 섞이면서 지저분하게 들릴 위험도 있기에, 페달을 밟고 뗄 때 그때마다 나름의 기술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페달은 음을 누르고 나서 바로 밟아야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근데 자꾸 음과 페달을 동시에 밟으니 피아노 선생님이 머리를 흔든다. 선생님은 어떻게 해야 지저분하지 않게 페달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 마디마디 실험적으로 접근한다. 한 번은 조금 더 짧게, 한 번은 조금 더 길게. 언제 페달을 밟고 떼야 좋을지 비교하고 또 비교한다.

페달 표시.JPG 연필로 표시된 페달 표시들... 잘 살려야 될 텐데!

"이런 구체적이고 미묘한 페달링을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가르쳐 주시나요?" 페달링을 딱히 배워본 기억이 없는 나는 묻는다. "어릴 때는 선생님들이 제가 지금 하는 것처럼 가르쳐 주기도 하는데, 대학 가서는 크게 어색한 부분만 지적을 하고, 나머지는 학생들이 알아서 쳐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어디서, 어떤 피아노로 연주하느냐에 따라 소리가 다르기 때문에 정확하게 어떻게 하라고 이야기를 해주기가 애매할 수 있거든요. 우리가 지금 하는 작업도 나중에 연주회장에서 리허설할 때 수정해야 될 거예요." 흠... 지금도 페달링이 쉽지 않은데, 다시 바뀔 수도 있다니 어쩌나. 걱정이 하나 더 늘었다.


페달도 그렇고, 아직 곡들이 내 마음에 흡족하게 완성되지는 않았다. 물론 완성이라는 표현 자체가 말이 되지는 않지만, 공연 날짜가 확정되니까 슬슬 조바심이 난다. 내 얼굴에서 그런 기운이 느껴지는 건지, 즐기면서 하는 사람은 이길 수가 없다는 이 말, 요즘 내가 제일 많이 듣는 말이다. 피아노 연주회라는 큰 도전을 앞둔 나는 연습이 잘 될 때는 자신감이 생기다가도, 잘 안 될 때는 많이 쪼그라든다. 하루하루 피아노 연습 결과에 일희일비하는 나를 보면서 과연 내가 이 과정을 즐기고 있는 사람인가 그런 의문이 든다. 그러나 과정 중에 있을 때는 알지 못한다. 나중에 돌이켜 봤을 때 그때야 알겠지. 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준비를 잘하는 것이다. 그래, 그럼 충분하지 않을까.

Draft.jpg 포스터도 빨리 완성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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