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기억하는 것
며칠 전 영화배우 윤정희 씨의 알츠하이머 투병 소식을 기사에서 접했다. 10년 전부터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해, 이제는 딸도 못 알아볼 정도로 악화되었다고 한다. 영화 ‘시’에서 알츠하이머가 진행되고 있는 주인공 역을 맡았던 그 당시 그녀의 상황을 생각하니 마음이 저릿저릿하다. 꽃과 시를 사랑하는 주인공 미자의 모습이 실제 그녀의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연기가 훌륭했는데, 연기로 채울 수 있는 것 이상이 그 안에 녹아져 있었구나 싶다.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의 아내, 윤정희 씨는 그야말로 내조의 여왕이었다. 영화배우 일에 전념할 수도 있었지만, 연주 투어를 다니는 남편 곁을 지키며 매니저 역할을 자청해왔다. 2011년인가, 이분들을 잠깐이나마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는 행운이 있었다. MBC에서 기획한 ‘백건우의 섬마을 콘서트’를 앞두고, 사내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의 진행을 맡게 되었다. 백건우 선생님(인연이 있으니 이제부터는 선생님이라 쓰겠습니다)과 윤정희 선생님을 뵙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소탈하고 꾸밈없는 두 분 덕분에 간담회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남편이 연습하는 것을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고, 투어 따라다니는 일도 즐겁다며, 백건우 선생님을 진심으로 자랑스러워하던 윤정희 선생님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두 분은 서로 닮아 있었다. 편안한 표정이, 은은한 미소가, 조곤조곤 답하는 말투가 똑같았다. 사이좋은 부부들은 으레 서로 닮는다고는 하지만, 이 두 분에게는 뭔가 더 특별한 느낌이 있었다. 간담회를 마치고 윤정희 선생님이 수고했다며 연락처를 꼭 남기고 가라고 했다. 정신없이 나오느라 깜박해서 나중에 관계자에게 대신 전해달라고 했었다. 이제와 돌이켜보니, 그게 제대로 전달되었다 해도 어쩌면 그날의 나는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니, 아득하다.
기자 간담회 진행도 했는데, 백 선생님의 콘서트에 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통영에서 45분 정도 배를 타고 들어가면 나오는 욕지도로 향했다. 통영도, 욕지도도, 섬마을 콘서트도, 모든 게 처음이었던 나는 무척 설레었다. 간신히 잡은 숙소에 짐을 풀고 발바닥과 장판이 들러붙는 딱한 내 방의 상황이 좀 아찔하긴 했지만. 섬마을에 해가 뉘엿뉘엿 질 때즘, 콘서트가 열리는 바닷가로 갔다. 욕지도 주민들도 이런 콘서트는 처음이라며 무척 들떠 보였다. 예술의 전당의 클래식 공연에서 느낄 수 있는 진중하고 무거운 분위기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마실 나온 것 같은 주민들과 나처럼 외지에서 구경온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마치 동네잔치 같았다.
흥겨웠던 야외 공연장은 백건우 선생님이 작은 나룻배를 타고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붉게 물들어가는 바다 위, 조각배를 탄 노년의 피아니스트의 등장에 나도 모르게 ‘아...!’ 소리가 흘러나왔다. 모두가 비슷한 감정을 느꼈는지, 옆사람에게 들릴 정도로 크게, 속으로 나지막하게 되뇌듯 작게, 여기저기서 탄성의 물결이 넘치고 있었다. 그리고 배에서 내려 피아노 앞에 앉은 선생님은 소중한 선물 보따리를 조심스럽게 하나하나 푸는 것처럼 청중들에게 아름다운 연주를 들려주었다. 노을에 취해, 바다에 취해, 연주에 취해,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몰입하다가도 곡이 끝나면 우렁찬 박수를 보내던 그날의 관객들이 아직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클래식은 처음인데”, “우린 피아노 연주 같은 건 몰라” 우리 동네까지 와서 유명한 피아니스트 선생이 한다니까 호기심에 나와본 할머니들과 신나게 앙코르를 외치던 아이들도 여전히 그날의 기억을 기억하고 있을까.
콘서트의 밤이 각자의 기억 속으로 사라진 다음날, 통영으로 돌아가는 배를 타러 나가면서 섬을 둘러보기로 했다. 정신없이 왔던 어제는 몰랐는데, 욕지도는 꽤나 이국적인 섬이었다. 나무의 종류가 달라지면 그때부터 딴 나라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 기준이라면, 욕지도는 딴 나라에 속했다. 그렇게 아름다운 경치에 정신이 팔려 있는데, 어디서 많이 본 뒷모습이다. 와. 백건우 선생님과 윤정희 선생님이다. 두 분이 소소하게 대화를 나누며 경치를 둘러보는 모습을 보니 경치에 경치를 더한 것 같다. 두 분은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을까. ‘다음에도 섬마을 콘서트를 또 해볼까’, 아니면 ‘나중에 이런 데서 사는 것도 좋겠다’, 뭐 이런 내용이었을까. 방해가 될까 봐 인사만 드리고 멀찍이 걸었다. 또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두 분에게서 애틋한 공기가 흘렀기 때문이다. 사이좋은 부부에게서 느낄 수 있는 그런 특유의 친밀감이라는 표현으로는 약하다. 함께 있는 두 분의 모습은 연한 톤으로, 아주 여러 겹 정성스럽게 붓질한 수채화처럼 애잔했다.
몇 년이 지나고 또 지나고, 욕지도에서의 추억은 향수처럼 사라졌다. 아침에 집에서 나올 때 뿌린 향수는 집에 돌아오면 손목에 코를 가까이 대야지만 겨우 그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어떨 때는 아예 남아있지 않기도 하지만. 그동안 잊고 있었는데,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깜박하고 있었는데, 별안간 날아든 안타까운 소식 때문에 기억이 되살아났다. 물론 손목에 남은 향수처럼 아주 일부분만 아련하게. 그러나 그렇게라도 기억을 해내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기억을 기억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허락된 일이 아닌 소중한 것이니.
내 인생에 다시없을 도전인 “다시 만나는 피아노” 연주회를 앞두고 있는 지금을 나는 어떻게 기억할까. 몇 년 뒤,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는 아침에 뿌리고 나온 향수처럼 희미해진 향만 남아 있을까. 일주일 남은 시간, 내 기억이 더 진하게 오래 기억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보는 것 외에는 기억을 더 기억할 방법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