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 때리는 말
설리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악플과 악플러들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댓글, 뭐하러 봤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지만, 댓글도 일종의 소통의 창구니까 대중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긴 하지 않을까. 사실 팬의 입장인 나도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의 기사를 읽으면 자연스레 댓글까지 보게 될 때가 많다. 다른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생각이길 바라면서,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에 대한 응원이 나에 대한 응원이라도 되는 듯 댓글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물론 좋은 내용만 있는 경우는 없다. 세상에는 나와 아니, 우리와 다른 시각을 가진, 호불호가 다르고 취향도 다른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당연하다. 그걸 알면서도 내 생각과 달리, 내 아티스트들을 공격하는 악플을 보면 마치 나에 대한 선전포고인 것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간접 경험을 해도 마음이 좋지 않은데, 만약 이런 악플들이 직접 ‘나’를 향한 것이라면 내 마음은 어떨까.
내 생각과 다르면 틀린 게 되는, 틀렸으니까 그건 비난받아야 마땅한,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상처 받는 것은 너의 나약함 때문이라고. 감당도 못할 거면 누가 댓글 보라고 했냐고. 그리고 애초에 제대로, 내 기준에 벗어나지 않게 행동했으면 이렇게 악플 달릴 일도 없지 않았느냐고 우리는 말한다. 연예인은 어차피 대중 없이는 의미 없는 존재이니 이런 악플들은 감수해야 공평한 거라고, 그렇게 돈 벌면서 좋은 소리만 듣고 살 수는 없다고 누군가는 말한다. 표현의 자유라는 것이 있으니까 선플이든 악플이든 얼마든지 달 수 있는 거 아니냐고 하면, 뭐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럼 도가 지나친 경우에는 어떨까. 그 지나침의 기준도 사람마다 다 달라 문제지만. 문득 무플보다는 악플이 낫다며 관심 가져 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어느 연예인의 얼굴도 떠오른다. 본인에게는 너무 치명적이었던 악플들을 공개하는 프로그램이 인기가 있는 걸 보면 그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나에게,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쏟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인터넷에는 수많은 말들이 오간다. 그리고 개인 SNS에도 마찬가지다. 달콤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무슨 소리인지 도저히 알 수 없기도 한 말들은 우리 곁에서 공기처럼 떠돈다. 그러다 아무 의미 없이 흩어져 버리기도 하고, 어느 날 갑자기 머리에, 가슴에 콕 박히기도 한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난다. 내 곁에 존재하고 있는 실체들을 오프라인 공간에서 만나는 일은 여전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 나이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그럴 것이다. 몇 번의 톡이 오가고 간신히 날짜를 맞춘다. 어렵게 시간을 내서 만났으니 요즘 핫하다는 맛집에서 만나야 제맛. 서로 마주한 우리들은 반가움에 서로의 근황을 묻고 주문도 한다. 한참을 떠들다 보면 음식들이 나온다. 서빙이 끝나기가 무섭게 스마트폰으로 찍어보는 음식. 그래, 우리는 만나러 오긴 했지만 먹으러도 온 거니까 음식 사진은 중요하다. 사진 촬영 뒤, 조금은 식은 음식을 먹으며 다시 활기찬 대화 속으로 빠져든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시작되는 아이들 학교, 학원, 과제 이야기. 아이들 엄마니까 당연한 걸 알지만 삼십 분 이상 듣고 있으면 지루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내가 궁금했던 건 너희들의 아이들이 아니라, 너희였는데.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건 나의 고민, 내가 듣고 싶었던 너의 고민이었는데, 그걸 나눌 틈은 없었다. ‘말은 많이 했지만, 남는 말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 아쉬워.’라는 말을 삼키고 다음 만남을 기약한다. 여전히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음식 사진들과 함께 친구들을 만나 행복한 하루였다며 자평한 오늘을 SNS에 올린다.
현실 어른을 만났다. 선배는 내가 혼자서만 하는 일에 몰두하는 게 걱정스럽다며 연주회가 끝나면 그다음에는 도대체 어쩔 계획이냐고 물으신다. 당황스러웠다. 연주회 이후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 게 아닌 것은 맞다. 그래도 나는 연주회 준비에, 유튜브에, 글쓰기까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열심히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선배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나 보다. 한창 일할 나이에 뭐라도 나가서 적극적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안타까운 마음에 그렇게 말씀하셨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만, 뭐가 됐든 마음이 좋지 않았다.
선배의 조언이 내 인생을 꼬집는 악플처럼 느껴졌다면 내가 너무 예민했던 걸까. “나를 자신의 기준으로 재단하지 마시오.”라고 마음속으로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사실 듣고 싶은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인생 선배로서 충분히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선배는 나와 만나는 도중에도 끊임없이 일과 관련된 전화를 받고 일을 처리한다. 은퇴를 하고 싶다고 하시지만, 그녀는 일을 너무 사랑하고 일도 그녀를 사랑한다. 선배의 기준에서 나의 일은 취미 정도로나 하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게 피아노와 글쓰기는 취미가 아니라 나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 내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꼭 필요한 일들이다. 뭐 이렇게 길게 설명하고 싶었지만, “그냥 자기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게 되나 봐요. 지금은 제가 이렇게 살고 싶어서요.”라고 나름 훈훈하게 마무리해본다.
다른 사람들이고, 상황도 다르고, 다 아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은 서운하고, 약간은 불편한 감정이 드는 건 왜일까. 누구도 서로를 나무라거나 공격할 의도가 없는 말이 오가는 데도 그렇다. 누구나 인생에서 우선순위가 다른 것뿐인데 강요하고 있다. 내 친구들에게 내가 그랬고, 선배가 내게 그랬고, 어쩌면 나도 선배에게 그랬을지도 모른다. 다른 게 틀린 거라고. 잘못된 거라고.
지난번에 아는 동생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새로 사업을 시작하려는 그녀가 힘들어하길래, 당분간은 그냥 모든 걸 다 쏟아부어 보라고, 그런 자기희생의 시간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해줬다. 그녀는 주변에서 다 자기에게 잘한다, 잘한다만 하는데, 그녀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뼈 때리는 말을 해 줘서 고맙다고 했다. 내 말이 그렇게 정신이 번쩍 들 정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이 그렇다면 그렇게 믿어야겠지. 그렇게 말하고 뒤돌아 나오는데, 나도 그러지 못하고 있는데 내가 뭐라고 너무 오지랖이었나 싶다. 내가 그녀에게 건넨 말이 뼈만 때리지 가슴까지 때리는 악플은 아니길 뒤늦게 바라본다.
말이 뭘까. 뭐길래 우리를 대놓고, 혹은 은근히 흔드는 걸까. 그래서 입으로 삼킨 말을 이렇게 글로 남기고 있는 것일까. 그나저나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글을 쓰고 싶은 건 어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