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아나 May 08. 2020

<나도 작가다> 공모전을 위한 글입니다^^

내 인생 2막의 테마는 시작이다

 시작. 시작이란 단어처럼 가벼운 말도 없고, 무거운 단어도 없다. 시작은 쉽다. 누구나 시작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가볍다. 그러나 그 시작 안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가 숨어 있다. 그 안에는 수만 가지 이야기가 들어 있기에 무겁다.


 무슨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될까. 방송사 아나운서. 그 당시 나는 이 찬란한 시작을 감당하기에는 버거웠고, 하루하루 주어진 일을 겨우 겨우 처리하고 있었다. 뉴스도 맘대로 잘 되지 않았고, 긴장도 많이 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신입 중에서는 뉴스도 곧잘 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TV 뉴스도 일찍 투입되었다. 이렇게 하다 보면 더 좋은 시간대의 뉴스도 할 수 있겠지 신이 났다. 그러나 그 열망은 오래가지 못했다. 새로 바뀐 상사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나를 괴롭혔다. 결국 나는 하던 프로그램들을 그만두게 됐고, 라디오 뉴스만 하라는 이야기까지 듣게 됐다. 나는 그 뒤로 조용히 숨죽이며 지냈다.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가장 활발하게 할 수 있는 시기에 거의 2년이라는 세월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어두운 회사 생활에 낙이 없었던 나는 점점 무기력해졌고 자신감을 잃어갔다. 나는 방송일을 즐기지도, 그렇다고 그만두지도 못했다.


 15년이라는 세월이 그렇게 지나갔다. 그사이 회사에 큰일이 터지고, 나도 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스트레스에 몸에도 문제가 생기자 그제야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마흔에 자연인으로 돌아왔다. 오랜 시간을 흔들려왔던 내게는 숨 돌릴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고민도 늘어갔다. 이 나이에 뭔가를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내게 남은 기회가 있을까.


 그러고 있는 사이 내게 새로운 변화가 찾아왔다. 문화센터에서 강연을 맡게 된 것이다. 나의 삶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면 되었기에 큰 부담은 없었지만, 카메라 앞과 진짜 청중 앞에 서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수강생들은 나보다 인생 선배였다. 나이로 그렇기도 했고, 인생 경험으로도 그렇기도 했다. 뭐 그 정도 가지고 힘들다고 하나. 수강생들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다. 고민만 끌어안고 있던 내가 누군가에게, 그것도 나보다 더 애썼고, 더 아팠던 분들에게 고작 배부른 소리나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 많이 경험해보자. 더 많이 깨져보자.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아프니까 할 말이 생기는 거다. 다음에 강의를 하게 되면 그때 들려줄 이야기를 더 많이 만들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15년의 시간을 감옥 속에 갇혀있던 열정이 세상 밖으로 나오면서 나의 인생 2막은 뭔가 달라지고 있었다. 그 첫 도전은 브런치 작가로서 글을 쓰는 일이었다. 막연히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에 시작했는데, 계속 쓰다 보니 글 쓰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어떤 영감도 떠오르지 않는 날은 공기 빠진 풍선처럼 글이 한 줄도 나아가지 않았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영감을 위해 나는 새로운 도전과 자극이 필요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팟캐스트. 사정이 생겨 8개월 만에 접긴 했지만, 하는 동안은 정말 열심히 했기 때문에 미련은 없다.


 팟캐스트가 끝나고 나니 다시 몸이 근질거렸다. 그때 피아노가 떠올랐다. 나의 어릴 적 꿈. 이루지는 못했지만 늘 마음 한편에 피아노를 품고 있었다. 너무 오랜만에 피아노 앞에 앉지만, 열심히 연습해서 피아노 연주회를 열어보면 어떨까 싶었다. 허황된 꿈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일단 시작하니 멈출 수도 없었다. 피아노 연습의 과정은 감정과의 싸움이었다. 하루에 네다섯 시간씩 아무 말 없이 혼자 연습에 매달리는 것은 나를 어두운 동굴 속으로 밀어 넣었다. “얼마나 잘 치길래 연주회까지 여니?”, “좋은 연주 기대할게.”같은 말을 들을 때마다 겁도 났다. 이제 와서 그만두겠다는 말을 누구에게 할 수 있을까. 외로웠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날은 왔다. 무대에 선  나는 예상대로 떨렸고, 실수할 때마다 흔들렸고, 여러 가지 생각으로 연주에 집중이 어려웠다. 길을 잃은 여행객처럼 방황하는 내 머릿속에 갑자기 이 말이 떠올랐다. 화양연화. 내 인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 그 화양연화가 지금, 바로 이 순간인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벅찬 감정이 끌어올랐다. 감격의 눈물 대신 미소가 지어졌다. 다시 지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런 미소가.


 피아노 연주회를 무사히 마치고 나는 유튜브 채널을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사실 이게 요즘 가장 큰 고민이다. 영 시원찮은 구독자 수를 볼 때마다 내가 만드는 게 콘텐츠가 아니라, 고민인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더 큰 고민에 빠질 사람이란 걸 알기에 도전을 멈출 수는 없다. 더 큰 고민이 두려운 나는 무엇이든 시작하고 도전하는 편을 택할 수 밖에. 어쩌면 이번 생의 내 인생 2막의 테마는 시작이 아닐까. 이 모든 시작과 그 시작에서 비롯된 경험과 실패들이 헛되지 않을 거라고 믿으며 오늘도 이렇게 도전한다.


저의 요즘 도전은 유튜브 “무료한 박아나”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박아나의 일상뉴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