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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Jun 26. 2020

박아나의 일상뉴스

 작은 아씨가 아니어도 괜찮아

 작은 아씨들. 누군가에게는 인생책으로 불리기도 하는 고전 중의 고전이다. 내 또래의 친구들이라면 어렸을 때 다 읽었고, 물론 나도 읽었다. 이 책에 열광했던 다른 이들처럼 나도 네 자매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캐릭터는 누군지 고민했었다. 첫째인 메그는 그냥 첫째라서 매력이 없었다. 내가 첫째여서 그런지 나는 첫째가 아닌 편이 좋았다. 둘째 조는 뭔가 잘난 척하는 것 같아 별로였는데, 특히 로리의 프러포즈를 거절했을 때 더 싫어졌다. 셋째 베스는 피아노를 치고, 조용하고 소심한 면이 나랑 비슷해서 마음이 가긴 했지만, 그것은 호감이라기보다는 동정 같은 감정이어서 안타까움에 가까웠다. 막내 에이미는 귀엽긴 한데, 노력 없이 거저먹는 스타일로 보여 그 점이 부러우면서도 거슬렸다.

어릴 때 조가 맘에 들지 않았던 이유. 로리를 왜... 영화: 네이버 영화

 이쯤 되면 나는 작은 아씨들의 안티인가. 어렸을 때는 그랬다는 이야기다. 지금의 나는 각자의 이유로 네 자매들이 다 정이 간다. 그래도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나가는 조를 제일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기는 하다. 나도 나이 들면서 조가 점점 더 좋아진다. 얼마 전 개봉했던 영화 “작은 아씨들”에서도 조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끌고 갔다. 그만큼 자매들 중에 조의 지분이 제일 큰 것은 사실이다. 작가인 루이자 메이 올컷의 분신이 조이기 때문에 더 그렇겠지만.


 자매가 있는 친구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꽤나 자신들과 동일시했다고 하는데, 여자 형제가 없던 나는, 참고로 네 살 차이 나는 남동생만 있다, 그들의 세계에 솔직히 큰 공감을 하지는 못했다. 자매들 간의 미묘한 경쟁관계라든지, 자매들 간의 끈끈한 우애 같은 걸 경험해보지 못했으니 뭘 알겠나. 남동생이 있긴 했지만, 내게는 늘 상대가 되지 않는 어린이로만 보였기 때문에, 약간 외동딸 같은 느낌으로 자랐다. 남동생에게 물어보면 누나 말고 형이 있었으면 좋았겠다고 할라나.


 네 명에서 한 명이 모자라긴 하지만, 큰 외삼촌댁이 자매가 셋이었다. 명절에 큰댁에 놀러 가면 나는 묘한 소외감을 느꼈다. 작은 아씨들처럼 셋 다 성격은 제각각이었지만, 셋 사이에는 내가 끼어들 수 없는 친밀함이 있었다. 나와 남동생 사이에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그런 끈끈함 말이다. 그건 뭐 사촌이니까 어쩔 수 없다 치지만, 이건 정말 부러웠다. 예쁜 옷들로 가득 차 있던 자매들의 방. 셋이니까 나보다 옷이 세배 많은 게 당연했지만, 그 당시에 나는 그들의 옷방에 압도되었다.


  “어떤 여자애들은 이쁜 걸 잔뜩 가졌는데, 어떤 여자애들은 하나도 없다니 불공평해.” 가난이 지긋지긋하다며 자신의 낡은 드레스를 쳐다보며 한숨 쉬는 맏언니 메그의 말에 에이미가 덧붙인 말이다. 예쁜 옷이 많았던 사촌들에게 괜한 주눅이 들었기에 메그나 에이미의 불평에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그들처럼 가난하지도, 옷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왜 그랬을까.


 어렸을 때는 옷장 같은 얄팍한 이유로 자매들이 부러웠다면 지금의 나는 내편이 많은 자매들의 삶이 부럽다. 동생의 아이들을 지극 정성으로 돌봐주는 후배 언니의 이야기는 들을 때마다 감동인데, 만약 내게 자매가 생긴다면 반드시 언니였으면 좋겠다. 물론 이번 생에는 불가능하지만.


 주변에 작은 아씨들을 능가하는 딸 부잣집이 꽤 있다. 그중에서 독수리 오형제 뺨치는 다섯 자매를 둔 지인을 소개할까 한다. 그 지인은 다섯 명 중에 둘째로, 그러고 보니 성향도 약간 작은 아씨들의 조 같은데, 실제로도 글을 쓴다. 작은 아씨들의 자매들이 각각 예술적인 분야에 재능이 있었던 것처럼, 이 자매들도 글을 쓰거나 콘텐츠를 기획하는 일들을 하고 있다. 둘째 언니의 SNS를 보면, 자매들과 수시로 만나 어울린다. 자매 중에 누군가 힘든 일이 있거나, 누군가 축하할 일이 있거나, 아니면 별다른 이유 없이 모인다.


 스스럼없이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이 기본적으로 네 명이 확보되어 있다는 게 제일 부러운 지점이다. 나도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고 싶지만, 한창 아이들 뒤치다꺼리에 바쁜 친구들에게 연락할 때마다 망설여진다. 자매들이라면 ‘그냥 안되면 말고’라는 식으로 번개도 치고, 치우다 만 집에서 편안한 차림으로 맞이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정말 큰 이변이 없는 한, 나를 배신할 일이 없다. 친구와 나누기 쉽지 않은 속 깊은 이야기도 나눌 수 있으니 생각만 해도 든든하다.


 언젠가 이 둘째 언니와 전화 통화를 하다가, 내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좀 느리고 사람 보는 눈도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아마 소현 씨는 자매가 없어서 어렸을 때부터 그런 훈련이 덜 돼 있어서 그럴 거야. 우린 어릴 때부터 서로 경쟁하고, 눈치도 보고, 치고받고 싸우면서 그런 것들을 얻어냈지.” 아... 자매들 간의 우애도 거저 얻어지는 것은 아니었구나. 하긴 대부분의 자매들이 어렸을 때 많이 다투지. 그러다가 나이를 들어가면서 원수 같았던 어린 시절은 추억이 되고 둘도 없는 절친이 된다.

작은 아씨들 아니고 절친 아씨들!  사진 :  네이버 영화

 내 동생과 나는 절친도 아니고 뭐일까. 나는 어린 시절에 남동생과 사사건건 부딪힐 일이 많지는 않았다. 일단 취향이 달라서 서로의 것을 탐낼 필요가 없었고, 밖으로 뛰노는 동생과 안에서 인형 놀이하는 내가 같이 놀 일도 없으니, 싸움이나 갈등으로 이어질 소지가 적었다. 공부를 더 잘했던 내가 동생에게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줬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평온한 편이었다. 그렇게 지내다 동생과 둘이만 살게 되었다. 일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간 부모님 때문에 직장과 대학이 서울인 나와 동생은 따로 나와 살게 된 것이다. 그 당시 게임에 빠진 흡연자 동생과 나는 그야말로 최악의 조합이었다. 입사 초기라 직장생활에 적응하느라 예민했던 나는 동생이 밤늦게까지 게임하는 것도, 그러느라 아침마다 학교 가라고 깨워줘야 하는 것도, 가끔 내 방으로 들어오는 담배 냄새에 경악했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먹으려고, 넉넉하게 해 놓은 전기밥솥의 밥은 다 사라져 있었고, 빨래통에는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냄새나는 동생의 옷들로 가득했다.


 동생과의 생활은 뭐랄까. 남매 관계가 아닌, 모자관계 같았다. 나는 마치 엄마처럼 동생을 쫓아다니며 치우고, 수습하고, 큰소리 내기 바빴다. 그때마다 동생은 ‘안그럴께, 조심할께’를 연발했지만 별로 바뀌는 것은 없었다. 한번은 엄마와 전화 통화를 하다가 울분을 토했다. “내가 엄마도 아닌데, 어디까지 참아야 하느냐고!”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동생이 그때의 나의 노고를 별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에 동생과 옛날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내가 그랬나?’하면서 멋쩍어하기만 했다. 동생이 결혼하고 나서 거리는 더 멀어졌다. 자기 가정을 꾸리느라 바쁘니 그걸 탓할 수도 없다. 먼저 결혼했던 나도 그랬으니까. 설사 여유가 있다 해도 나눌 이야기도 별로 없다는 게 우리 남매의 상황이다.


 돌이켜보면 나와 동생의 관계는 일방적이었던 것 같다. 나는 뭔가 엄마처럼, 때론 선생님처럼, 동생의 문제를 해결하고 고치려고 애썼다. 동생이 어떤 의도인지, 어떤 마음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동생이니까 조금이라도 나은 내가 다 해주는 게 맞는 것 같았다. 그런 영향 때문일까. 사회에서의 나의 인간관계도 남을 배려하는 것 같으면서도 나 중심이었다. 은근히 내 주장을 강요하고, 내 생각을 크게 양보하지 않았다. 내가 보고 싶은 대로 사람을 보니까 그 사람이 진짜 어떤 사람인지도 잘 파악하지 못했다. 그래서 꼭 나중에 뒤통수 맞을 일이 생겼는데, 생각해보면 사람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내 잘못도 크다.


 어릴 때 동생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지 않았던 일, 그리고 내가 누나니까 늘 옳다고 믿었던 일들이 떠오른다. 그래도 회사에 야구팀도 창단해 몇 년 넘게 이끄는 동생을 보니 누나보다 사회생활을 더 잘하는 것 같아 다행이다. 아내바보, 딸바보로 활약하고 있는 모습도 보기 좋다. 부모님께 무슨 일이 생기면 같이 의논할 수 있어서 그것도 고맙다. 외동딸이었으면 부담이 컸을 텐데, 동생이 있어줘서 의지가 많이 된다. 그래, 이제는 동생이 있어 든든하다 말할 수 있다. 그렇다고 동생 앞에서 표현할 것 같지는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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