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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Jul 03. 2020

박아나의 일상뉴스

일의 기쁨과 슬픔 그 사이

 “방송사 라디오 보도 계약직에 뽑혔어요.” 코로나 사태 이후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문자다. 문자를 보낸 학생은 적극적이고 활달해서 수업 시간에 분위기 메이커였는데,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학생만큼 내가 설렌다. 6개월 계약직 업무이지만, 사람일은 알 수 없지 않은가. 그게 인연이 되어 또 다른 좋은 기회를 잡게 될지. 답문을 보내고 나니 예전에 회사 다닐 때 라디오 뉴스부에서 AD로 일했던 친구가 떠올랐다. 그 당시 내가 진행하던 새벽 라디오 프로그램을 즐겨 듣는다는 이야기에 그녀와 부쩍 가까워졌는데, 알고 보니 그녀의 꿈은 라디오 피디였다. 그녀는 눈밑이 늘 검은 게 피곤해 보였다. 아침에 일찍 나와서 그런가 했더니 새벽까지 라디오를 듣느라 늦게 자서 그랬던 거였다. 그렇게 자는 시간도 줄여가며 꿈을 향해 나아가던 그 친구는 잘 나가는 라디오 피디가 되었다.


 평생직장으로 일할 것 같았던 방송사를 그만둔 내가 방송사에 들어가고 싶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게 아이러니한 것 같기도 하지만, 계속 다녔으면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의 소중함과 기쁨, 또 (뒤늦게 터득한) 직장 생활의 알짜 노하우가 있다. 요즘 학생들에게 잔소리처럼 나오는, 몰두해야 할 때 몰두하지 못하면 미래에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한다는 냉혹한 말을 다시 들추어 본다. 이다혜 기자가 쓴 “출근길의 주문”에서 봤던가. “이것 하나만 명심하려고 한다. 내가 얻는 좋은 기회는 (미래의 퍼포먼스가 아니라) 과거의 퍼포먼스의 결과다. 현재의 내가 누군가에게 고마워해야 한다면 그것은 과거의 나다. 미래의 나여, 현재의 나에게 고마워하길.” 진작 알았다면, 당연히 진작 알았어야 됐지만,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좀 다르길 바라며 오늘도 잔소리를 한다.


 과거의 나는 돌이킬 수 없기에 현재의 나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의심과 불안이 나를 조용히 때론 시끄럽게 흔들지만, 당분간은 그런 감정에 눈을 돌리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래도 예민해지는 날이면 자기 일을 야무지게 하고 있는 지인들을 만나 마음을 다잡는다. 요즘은 주변에 일 잘하는 후배들이 많아서 상당한 자극이 된다. 대부분 MBC 아나운서국에서 만나 각자의 길을 찾아 떠난 후배들이다. 모두 같은 일을 했기에 비슷한 일을 하겠지 싶지만, 그럼 또 너무 재미가 없는 법. 자신만의 코어를 찾아 거기에 모든 역량을 쏟아붓는 슬기로운 후배들이 참 부럽다. 난 아직도 내가 뭘 잘하는지, 어떤 일을 지속 가능하게 할 수 있는지 찾고 있는 중인데, 이미 그걸 찾다니. 아마 그들은 과거에 몰두해야 할 때 몰두했기 때문에 지금의 모습으로 또다시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멋진 후배를 만난 김에 책을 좋아해서 북카페를 경영하는 그녀에게 책 한 권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한참 나이 많은 선배의 요청에 잠시 당황했지만, 내 책 취향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하더니, 장류진 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을 추천해 주었다. 심지어 선물로 받았는데, 그 마음이 고마워서 책을 묵혀두지 않고 얼른 읽었다. 그녀가 이 책에 대해 “재밌는데, 뭔가 뜨끔해요.”라고 했었는데, 역시나 때늦은 현타가 왔다. 내겐 너무 옛날 일이긴 하지만 별로 친하지 않은 사이에 청첩장을 주고받을 때, 가사 도우미 아주머니와의 관계에서 생기는 약간의 미심쩍은 감정들, 현실인 듯 현실 아닌 것 같이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았던 나의 첫 출근길이 떠올랐다. 어쩜 이렇게 이야기를 감칠맛 나게 쓰지. 장류진 작가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낄 수 있는 미묘한 감정들을 별일 아니라는 듯이 툭툭 건드리며, 그럼 뭐 별 수 있겠냐며 조곤조곤 말하는 이야깃꾼이었다.

판교의 스타트업 직장인들에게 이미 필독서?

 그중에서도 책의 제목이기도 한 일의 기쁨과 슬픔은 요즘 젊은 직장인들의 고단함을 들여다볼 수 있는 내용이었다. 중고 거래 사이트를 운영하는 스타트업 회사에서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의 애환을 다루고 있다. 방송일과는 분야가 다르지만, 을의 입장은 본질적으로 통하는 면이 있으니 예전의 내가 겹쳐 보였다. 회사에서 울어본 적이 있냐는 질문에 마음이 덜컥한다. 여러분은 그런 적이 없는가? 나는 예전에 회사에서 화장실로 달려가 울어본 적이 있다. 선배에게 하소연하다가 눈물이 흐를 때도 있었고, 심지어 후배랑 이야기하다가 눈물이 고일 때도 있었다. 회사에서 어떻게든 참아야 되는 것 아니냐고 하면 할 말 없지만, 나도 약한 모습 보이기 싫은데, 초라해지기 싫은데, 눈물이 났다. 눈물이 나서 초라해진 게 아니라, 내가 초라한 약자라는 사실에 눈물이 났다. 아니 눈물이 나니 더 초라해졌다.


 물론 직장 일에는 슬픔만 따르는 것이 아니다. 제목에도 분명 기쁨이 있지 않은가. 상사에게 인격 모독성 발언을 들거나 동료의 뒤통수에 어리둥절할 때, 내가 하고 싶은 프로그램과 점점 멀어져 갈 때, 나를 기꺼이 위로해 주는 것은 월급이다. 월급은 지친 현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기쁨을 준다. 책 속의 이야기 주인공처럼 홍콩도 가고 피아니스트 조성진도 만날 수 있다. 꽤나 현실적인 이 기쁨은 일의 슬픔에 대한 위로금일지도 모른다. 그것으로 충분한 위로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 없이 그 자리에서 버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 혼자 일을 하는, 그러니까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나는 예전에 경험했던 것과는 다른 기쁨과 슬픔을 느낀다. 글을 쓰거나 유튜브 영상을 만들거나 하는 일들은, 돈과는 아직 거리가 멀지만, 언젠가는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하는 중이다, 일의 시작부터 끝까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즐거움이 있다. “요즘엔 뭐해?”라고 간혹 물어보는 분들께 “저는 사장이면서 동시에 신입사원의 일도 함께 합니다만.”이라고 말해야겠다. 이런 괜찮은 답이 있었군. 누구도 뭐라는 사람이 없다는 점에서 마음이 편하기도 하지만, 프리랜서 생활은 생각보다 마음이 편하지 않다. 잘되면 내 덕, 못되면 내 탓인 게 부담으로 다가오는지, 요즘 나는 눈치를 본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의 눈치를.


 여름의 아침은 일찍 시작된다. 잠에서 깨자마자 터벅터벅 내 책상에 앉아 이렇게 글을 쓴다. 시간을 쏟아부은 만큼 결과물이 달라질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해야겠지. 현재의 나에게 고마워할 미래의 나를 위해 나의 성실함을 플렉스 해본다. 뭔가를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다 보니 일곱 시 반. 커피라도 한 잔 내려야겠다.

사실은 자전거 타고 나가서 사먹고 싶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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