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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Jul 17. 2020

박아나의 일상뉴스

어느 성덕의 일기 (ft. 피아니스트 손열음)

  뜻밖의 기회에 피아니스트 손열음 님을 만났다. 단순히 얼굴을 본 것을 가지고 “만났다”라는 표현을 쓴다면, 나는 조성진 님도 만났고, 임동혁 님도 만났다. 이렇게 당당히 말하는 것은 사진도 찍고, 사인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려 대화도 나누었다.


 진짜 피아니스트 앞에서, 이 자리를 만들어준 선배가 나를 피아니스트라고 소개하는 바람에 처음부터 몹시 당황스러웠다.

“어머, 진짜요?” 호기심으로 가득한 눈빛으로 변한다. 선배는 작년에 내가 연주회를 했다는 이야기까지 보탠다.

“어떤 곡 연주하셨어요?” 갑자기 훅 들어오는 질문에 약간의 패닉 상태가 되었다. 내가 연주했던 곡명이 바로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내 이상형이었던, 지금도 말하려고 하는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그녀, 할리우드 배우, 미녀 삼총사의 그녀, 누구지...?

영화 “마스크”에서 처음 보고 그때부터 좋아했다

 카메론 디아즈처럼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기만 했다. 다행히 모처럼 순발력이 발휘되어 곡명이 생각났다.

“모차르트 판타지...”

“D minor 요?”

“네...” 우물쭈물 대답한다.

“우와! 아름다운 곡이죠. 그리고 또요?” 똘똘하게 뜬 그녀의 예쁜 눈을 보니 정신이 번쩍 들었나, 대답이 술술 나온다.

“모차르트 소나타 작품번호 332번, 드뷔시 아라베스크 하고, 슈베르트 즉흥곡 작품번호 90번...”

“와... 연주회 때 악보 없이 연주하셨어요?”


 이것은 암보 고수인 그녀가 할 수 있는 질문이다. <하노버에서 온 음악편지>에서 그녀는 새 악보를 읽고 외우는 것은 본인이 이 세상에서 가장 자신 있어하는 것이라고 고백한 바 있다. 심지어 본인보다 악보를 더 빨리 읽거나 외우는 사람을 아직 못 봤다고 했는데, 그런 그녀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여러분도 연주회를 다녀와 봐서 알겠지만,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는 드물다. 물론 가끔은 악보를 보고 할 때도 있다. 그럴 때도 악보를 펼치고는 있지만, 거의 보지 않는다. 혹시나 해서 두는 것이다.

펼치면 손열음님의 사인이 있다는 거. (글도 잘 쓰는 그녀, 못하는 게 무엇입니까?)

 암보는 피아니스트의 숙명이다. 암보가 되어야만 연주가 완성된다. 작년에 연주회를 준비하면서 나도 절감한 사실이다. 악보를 외우면 연주의 질이 달라진다. 손을 보면서 연주할 수 있기 때문에 건반을 누를 때 정확한 지점을 누를 수 있고, 근육이 미리 준비할 수 있기 때문에 실수가 줄어든다. 자세를 체크하면서 운동하면 운동 효과가 훨씬 좋아지는 것처럼 손가락의 움직임을 보면서 연주를 하면 내는 소리도 달라진다. 암보를 했다는 것은 기술적인 측면에서 실수가 거의 없을 정도로 연습이 많이 됐다는 뜻이기 때문에 자유롭게 연주에 빠져들 수 있어 감정을 표현하는데도 훨씬 유리하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암보를 했다는 것은 그 곡을 내 것으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기술적으로, 감정적으로 곡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준비가 됐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수많은 고민 끝에 악보를 앞에 두고 했다. 내 생애 첫 연주회, 나도 뭔가 당당히 악보 없이 완벽하게 외워서 연주하고 싶었다. 그러나 갑자기 머리가 하얘지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생각만 해도 아찔한 상황이 생기면 어떡하지 싶었다. 완벽하게 외우고서도 심장 쿵쿵거리는 소리에 무대에 올라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보노라면 역시 제일 중요한 것은, 난 완벽하게 외웠다고 스스로와 관객들에게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마음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하지만 난 그 유명한 카메론 디아즈도 자꾸 잊어버리는 사람 아닌가. 물론 페이지를 넘기며 연주하는 것도 나 같은 아마추어에겐 곡예에 가까운 일이다. 페이지터너를 두고 싶었지만, 누군가 바로 내 옆에서 내 연주를 숨죽여 듣고 있는 것도 편치 않을 것 같았다. 결국 악보를 작게 인쇄해서 최대한 넘기는 횟수를 줄였다.


 “외우긴 했는데, 처음이라 자신이 없어서...” 이렇게 대답하는 내가 너무 작게 느껴진다.

“그렇죠~ 어디서 연주하셨어요?” 내 마음을 읽었는지, 그녀의 눈빛이 상냥하게 빛난다.

“JCC홀이요.”

“와~ 거기 좋은 덴데, 멋지세요.”

“아니죠, 멋진 건 당신이랍니다.”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왔네.


  사실 나는 내 이야기를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나야말로 그녀에게 묻고 싶은 질문들이 많았다. 하루에 얼마나 연습하는지, 연습 과정은 어떤지, 곡을 해석할 때 자신만의 방법이 있는지, 글은 또 왜 그렇게 잘 쓰는지... 그러나 내게 쏟아진 질문에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고, 내가 준비한 질문들은 어디론가 다 사라져 버렸다. 진짜를 만난 가짜의 심정이 이런 걸까. 피아노를 잘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는 “저 연주회도 했었어요.”라는 말을 그렇게 자연스럽게 하더니만, 대가 앞에서는 완전히 쪼그라든다. 어렸을 때 엄마 치마 뒤에 몸을 감추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은 가려지지도 않겠지만.

최근에 슈만의 곡으로 앨범을 낸 손열음 님께 내가 갖고 있는 유일한 슈만 악보를 들고 와서 사인을 받았다.

 이날 손열음 님과 박종해 님이 함께 연주한 슈베르트의 네 손을 위한 헝가리 디베르티스망(Op. 54 D.818)이 귀에 맴돈다. 디베르티스망 divertissement은 원래 기분전환이나 오락의 의미를 담고 있는데, 오페라의 막간극을 의미하거나 줄거리의 진행에 관계없이 삽입되는 짧은 기악곡을 뜻한다. 그녀가 또박또박 정성 어린 말투로 소개했던 것처럼 소박하면서도 군데군데 다이내믹한 요소들이 살아있는 아름다운 곡이었다. 발레리나의 걸음걸이처럼 우아하게, 때론 농구공을 자유자재로 드리블하는 것 같은 그녀의 손을 쫓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다이내믹하달까. 그녀의 연주로 처음 알게 됐지만, 오래오래 계속 만나고 싶은 친구 같은 곡이다. 내 소박한 일상에 디베르티스망이 되었던 이날의 만남이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떠올려지겠지. 지난 연주회의 추억까지 덩달아 소환되니 최고의 디베르티스망, 기분전환인 것 같다. 흠...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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