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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Jul 24. 2020

박아나의 일상뉴스

프리랜서 해도 될까? (프리랜서가 되기 전에 생각했으면 좋았을 것들)

 MBC를 그만둔 지 이제 5년이 다 돼간다. 2015년 이맘때 나는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렸었고, 9월에 사표를 냈다. 예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회사에 들어갈 때는 ‘나 같은 인재를 알아봐 주다니 보는 눈이 있네.’ 했지만, 나올 때는 나의 능력 따위는 흔하디 흔한 것이어서 나 없이도 회사는 아무 문제없이 굴러간다는 것을 깨닫고 나오는 게 직장 생활의 교훈인 것 같다. 정년퇴직할 때까지 회사를 다닐 생각도 애초에 없었지만, 그래도 막상 그만둔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다시 생각해 보라고 붙잡아 주지 않았으면 섭섭했을 것 같다. 예의로라도 내 손을 잡아 주었던 선후배 동료들에게 뒤늦은 감사의 말을 전한다.


 프리랜서의 길을 미리 준비하고 사표를 던졌으면 떠나는 뒷모습이 멋져 보였을까. 내 경우에는 그런 뒷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여러 가지 상황이 힘든 가운데 몸도 아팠기 때문에 일단은 저지른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이런 표현이 적절한 지는 모르겠지만, 반강제적으로 프리랜서가 된 것 같았다. 아나운서들이 프리랜서로 전향하면 흔히 붙는 타이틀인 프리랜서 방송인을 꿈꾼 것도, 그렇다고 퇴사 이후로 아무 일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도 아닌 상태에서 그만둔 나는 15년의 회사 생활 끝에 찾아온 휴식의 시간이 참으로 달콤했다. 적어도 첫 3개월은 그랬다. 컨디션이 점점 좋아지면서 나는 약간의 의욕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이 의욕이라는 것이 꿈틀댈 때마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씩 불안해졌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래, 이제 뭐할 거야?”라는 질문에 말발로 간신히 버텼고, 활발한 활동을 하는 주변 동료들을 보면서 침울해지기도 했다.


 물론 내게도 기회는 왔다. EBS에서 라디오 디제이로 방송도 하고, 단발성이긴 하지만 잠깐씩의 출연과 강연, 행사 진행, 대학에서의 강의, 그리고 직접 기획 제작한 팟캐스트와 유튜브 채널까지. 뜬금없지만 피아노 연주회도 보탠다. 뭐라도 해보겠다고 이런저런 시도를 계속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어제는 나와 같은 처지인 후배 아나운서와 함께 유튜브 영상을 함께 찍었다. 물론 그녀는 TV 프로그램 진행도 맡고 있기 때문에 굳이 말하자면 TV에 나오시는 분이라 나와 상황이 같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활동에 대한 갈증이 크다는 공통점을 공유한다. 방송 환경도 변화가 많아서, 아나운서 출신인 것이 더 이상 장점은 아닌지 오래다. 당연하게도 분발할 필요가 있다.


 프리랜서를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글인데, 내 이야기가 길었다. 5년간의 반강제적 프리랜서 경험과 주변에 급증한 프리랜서 동료들을 보면서 나름대로 생각했던 것들이다. 방송인에 한정된 부분도 있지만, 넓게 보면 어떤 직종이든 해당된다고 생각된다.


 1. 인싸력

  특히 방송 분야에서 혹은 인플루언서로, 프리랜서 일을 하려면 정말 중요한 능력이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으면 내가 굳이 일을 찾지 않아도 일이 나에게 알아서 온다. 그러나 프리랜서는 다르다. 일을 찾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 일이 나를 찾아오게 만들어야 된다. 예를 들어, <동상이몽> 같은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를 찾는다고 하자. 육아하면서 고군분투하는 방송인이 누가 있지? 뭔가 의외의 면이 있으면 더 좋고. 그럼 어디서 어떻게 찾겠는가. 입소문이나 누군가의 추천으로 찾아낼 수도 있지만, 요즘이 어떤 세상인가. 인터넷 세상 아닌가.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같은 SNS에서 어떤 사진을 올리고 어떻게 육아를 하는지, 또 사람들과 얼마나 소통하는지 그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것이다.

  사실 그것으로도 부족하다. 요즘은 유튜브 채널을 웬만하면 다 갖고 있다. 심지어 나도 있다. 그 채널을 통해서 본인이 어필하고 싶은 부분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고, 컨택을 하는 피디나 작가들도 그런 영상들을 보면서 힌트를 얻을 것이다. 뭐가 됐든 SNS를 통해서 끊임없이 존재감을 어필해야 한다. 내가 뭘 하는지, 뭐에 관심 있는지, 뭘 보여줄 수 있는지. 몇만 팔로워도 중요하지만, 내 관심 분야 관계자들과의 소통도 숙제처럼 해야 한다. 누군가 피드를 올리면 반응을 보이고 댓글이나 질문도 던져라. 그렇게 해서 형성된 관계들도 오프라인의 관계만큼이나 소중하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 기억에서 사라지고, 방송에서도 사라진다.


2. 고독력

  한마디로 혼자임에 익숙해야 한다. 프리랜서는 언제 어떻게 투입될지 모르기 때문에 조용히 때를 기다려야 한다. 물론 기다릴 때도 앞서 말한 것처럼 인싸력은 유지해야 한다. 이 인싸력의 한계란 온라인상에서는 엄청 만남이 많지만, 실제 생활인 오프라인에서는 혼자서 하루를 보낼 때가 많다. 혼자 무엇을 하는가. 그것에 따라 일과 빨리 만나느냐, 늦게 만나느냐가 결정된다. 나 같은 경우는 마치 회사에 출근했던 시절처럼 규칙적으로 생활한다. 나만의 일상의 루틴을 만들어 외로운 생각이 들 틈도 없이 나를 굴린다. 방송에 나갈 때를 대비해 운동은 기본이고, 언제 어떻게 쓰일지 모르는 피아노 연주를 위해 연습을 매일 한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전시회도 가고 음악회도 가고 (코로나 이후로는 좀 어렵지만) , 문화적 소양을 쌓는데 집중한다. 피아노 연습도 여전히 하고 있다.

   내 유튜브 채널, <무료한 박아나>를  촬영하고 편집하는 일은 참으로 고독함의 절정을 맛보게 한다. 예전에 회사 다닐 때는 어떤 프로그램을 하면, 작가도 있고, 프로듀서도 있고, 공동 진행자도 있고, 패널도 있고, 코디네이터도 있고 그랬는데, 지금은 모든 작업이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다. 유튜브 촬영을 위해 내 작은 스마트폰을 마주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혼자 주절거릴 때 뭐하나 싶을 때도 많다. 그래서 가끔 어제 후배랑 했던 것처럼 콜라보도 진행하는데, 혼자 할 때가 더 편했나 싶을 때도 있다. 공동 작업이 즐겁기는 하지만, 신경 쓸 부분이 당연히 많다. 이것은 아마도 내 고독력이 엄청 커져서 누군가와 같이 일하는 것이 낯설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후배여, 오해하지 마시라. 그대와 함께 한 시간은 참으로 즐거웠다).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 실제로 자주 경험하는 일인데, 사람들을 만나면 심하게 반가운 마음이 들어서 그런지, 너무 흥분해서 말이 많아질 수 있다. 문제는 말을 재밌게, 조리 있게 잘하면 괜찮은데, 오랜 시간을 입 다물고 지내서 그런지 말주변도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 게다가 TMI도 남발한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긴 프리랜서들이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3. 전문성

  만약 당신이 전문 분야가 있다면, 이미 당신은 승자다. 보통 프리랜서를 선언할 때는 나름의 전문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자신 있게 그 세계로 진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같은 방송인의 경우에는 꼭 그렇지 만은 않다. 여러 분야에 대해 관심이 참 많다. 다만 깊이는 알지 못할 뿐. 세상이 급속하게 변하고 있다. 그것도 우리에게 불리하게.  

  지금은 특정 분야에 전문성이 없으면 알아주지 않는다. 예전에는 방송 진행만 잘하면 여러 프로그램에서 러브콜을 보냈지만, 지금은 다르다. 변호사나 의사 같이 전문성을 갖춘 사람이 패널이 아니라 MC가 되는 경우는 이제 너무 흔하다. 영화 전문 기자이자 책도 여러 권 낸 지인은 영화와 책, 그리고 글쓰기에 대한 전문성을 인정받아 여러 프로그램에서 메인 진행자로 활약하고 있다. 작가나 피디 입장에서는 진행자가 전문성이 있으니 얼마나 믿음이 가겠는가.

  개인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조차도 브이로그 같은 일상 이야기만 찍으면 조회수를 올리는 데 한계가 있다(그러면서도 찍고 있는 1인). 인지도 높은 셀럽이 아니라면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조건이다. 상담을 전공했다면 상담 전문 채널로, 아이 교육에 관심이 있다면 그림책 전문 채널로 그렇게 자기 전문 분야를 확실하게 보여준다면 그 채널은 충성도 높은 구독자들로 엄청난 조회수를 올릴 수 있다. 물론 내 주변에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 멋진 후배들이 있어 몹시 부럽다. 과연 나는 어떤 전문이 될 수 있을까. 반드시 찾아야 할 숙제다.


4. 체력

  회사 다닐 때 프리랜서를 생각하면 제일 부러웠던 것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리고 원할 때 자유로이 휴가를 떠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프리랜서가 되고 보니 맞는 말이기도 하면서 틀린 말이기도 하다. 직장인들의 경우, 퇴근하면 일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물론 그렇지 않은 분들도 많다는 것 안다), 프리랜서는 일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조용히 활동하는 내 경우만 봐도, 보통 아침 7시나 8시부터 글을 쓰거나 편집을 하거나 뭔가 일을 시작한다. 그렇게 달리다 보면 점심시간. 대충 점심을 챙겨 먹고 다른 일정들을 소화하고 나면 저녁 준비해야 할 시간이 돌아온다. 내 일을 하는 사이 틈틈이 빨래, 청소기 돌리기, 화장실 청소, 설거지 등을 처리하는데, 그때가 허리를 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너무 한자리에 계속 앉아 있다 보면 허리도 안 좋아지고 배만 나온다. 생각날 때마다 일어나고, 여유가 좀 더 있다면 운동도 해야 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주 자주, 주말에도 이런 식으로 빈틈없이 돌아간다. 일에 대한 생각이 온통 머릿속에 가득 차 있어서 그런지 누구를 만나도 일 이야기를 주로 하게 된다. 예전에 회사 다닐 때 점심시간에는 주말에 본 영화 이야기라든지, 휴가 계획이라든지, 마음에 들지 않는 상사 흉을 본다든지, 이런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화제로 삼았던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그런 이야기들은 다 어디로 갔지?

  아니,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한다고 바쁜 척을 하느냐. 그것은 누구의 도움 없이 본인이 다 해야 되기 때문이다. 예전에 회사 다닐 때는 일이 나뉘어 있어서 프로듀서나 작가, 카메라맨, 분장팀 등등 모두가 각자의 일만 하면 됐다. 그러나 프리랜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본인이 다 해야 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유튜브 같은 경우에는 프로듀서 겸 작가 겸 카메라맨 겸 메이크업 아티스트 겸, 코디네이터 겸, 아 그리고 진행자 역할까지 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편집 같은 경우는 전문 편집자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지만, 비용도 만만치 않고, 편집자에게 이렇게 저렇게 해달라고 말하는 과정 자체가 그냥 피곤해서 내가 다하고 있는데 체력이 달린다. 각종 영양제는 필수다. 눈도 침침해져서 루테인을 복용하고 있다.

  그래도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그에 대한 책임은 다른 이야기지만.

  또, 하나의 일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여러 사람의 능력이 발휘되고 있었다는 것. 나만 잘해서 그 일이 잘된 것은 아니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그만큼 여러 가지 면에서 역량이 늘었고 정신은 없다.


5. 인내력

 ‘ 참을 인자 셋이면 살인을 면한다’는 말이 있지만, 프리랜서 세계에서는 세 개가 아니라 삼백 개 정도는 각오해야 될 수도 있다. 한동안 일이 없어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꿋꿋이 버틸 수 있는 그런 인내력이 없다면, 애초에 프리랜서를 하겠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 일이다. 나의 경우에는 지금까지 말한 다섯 가지 능력 중에 이 인내력이 제일 뛰어난 것 같다고 생각한다. 가족들의 눈총에도, 지인들의 도발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 나는 어쩌면 눈치가 빠르지 않은 점이 인내력으로 승화된 면도 없지 않음을 인정한다. 물론 그 안에는 언젠가는 잘 될 것이라는 나에 대한 강한 믿음이 버티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겠지. 가끔은 나도 사람인지라, 언제까지 ‘조용하게’만 활동해야 하는지 화날 때도 있지만, 지금의 시간이 그리워질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또 다른 믿음으로 인내하고 있다. 그렇게 보면 인내의 힘은 믿음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그러나 기다림에도 한계는 있고 무작정일 수는 없다. 현실적인, 특히 경제적인 문제가 발목을 잡을 확률이 크다. 꿈을 위해 밥까지 굶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하긴 돈 이슈는 무엇을 하든 우리의 참을성을 시험하는 가장 큰 부분이다. 프리랜서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부디 많이 휘둘리지 않기를 바랄 뿐.


 위에서 언급한 다섯 가지 능력이 아주 없지는 않은 것 같은데, 여전히 상황이 답답하다면... 오늘 만난 후배가 던진 말이 떠오른다. 누구나 계획은 있다. 그러나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또 드는 생각. 그래, 나나 잘하자.

영화 <친절한 금자씨> 너나 잘하세요. 사진: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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