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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Jun 05. 2020

박아나의 북토크

나의 원씽 원픽

 피아노 레슨이 다시 시작됐다. 코로나 19 때문에 수업이 없다 거의 3개월 만이다. 그 사이 나의 피아노 연습 상황을 돌이켜보면, 첫 한 달은 그래도 혼자 연습을 이어 나갔다. 그 한 달이 지나고 나니, 점점 피아노 앞에 앉는 횟수가 줄기 시작했고, 결국은 피아노 위에 먼지가 뽀얗게 앉았다. 성인이라면 자신의 취미 정도는 누구의 도움이나 지시 없이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이가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목표가 있고 없고의 차이였지 싶다. 작년처럼 피아노 연주회라는 큰 목표가 있었다면, 3개월의 공백을 그리 허무하게 날려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입 수능 시험을 앞둔 학생들은 코로나로 답답한 이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공부를 계속했을 테니까. 그렇다. 지금 내겐 목표가 없었다.


  첫 수업을 앞두고, 그동안 연습을 게을리했던 내가 원망스러웠다. 시간도 많았는데, 하루에 한 시간, 아니 단 30분이라도 피아노를 쳤다면 어땠을까 싶었다. 그렇다고 후회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급한 마음에 피아노 앞에 매일같이 앉았다. 개학을 코앞에 두고 방학 숙제를 해치우는 것처럼 연습도 해치웠다. 쇼팽 녹턴 두곡에, 왈츠 한곡에, 그리고 새로 막 시작한 즉흥곡까지 쇼팽의 감성을 느낄 틈도 없이 기계적으로 연습했다. 만약 쇼팽이 내가 연습하는 모습을 본다면 혀를 찼을 것이다. 내 곡은 그렇게 치면 안되거든?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은 문득 “올 하반기에 목표로 생각하고 있는 게 있을까요?”라고 묻는다. 예상치 못한 큰 질문에 순간 흔들렸다. “네? 연주회를 또 준비해야 될까요?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힘들 것 같은데, 뭘 해야 할까요?”가 내 진심이었지만 그 대신 “네, 아직 말씀드리기는 조금 이르지만, 뭔가 목표를 세우고 싶어요. 연주회는 코로나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고, 다른 쪽으로 고민해보고 있어요.”라고 얼버무렸다. 나는 뚜렷한 목표도 없었고, 모든 것이 불확실했다.


 어느 저녁, 한 체로키 인디언 장로가 손자에게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다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가 말했다. “아이야, 그 싸움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두 마리 늑대 사이에서 벌어진다. 하나는 두려움이지. 놈은 불안과 걱정, 불확실성, 머뭇거림, 주저함 그리고 대책 없음을 가지고 다닌다. 다른 한 늑대는 믿음이라고 한다. 그 늑대는 차분함과 확신, 자신감, 열정, 단호함, 흥분, 그리고 행동을 불러온단다.” 그 말을 들은 손자가 잠시 생각하더니 쑥스러운 듯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그럼 둘 중에서 어느 늑대가 이겨요?” 그러자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바로 네가 먹이를 주는 늑대란다.”


 게리 켈러와 제이 파파산이 함께 쓴 원씽(The One Thing)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지금의 나의 상태와 너무 일치했다.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불안과 걱정, 불확실성이 코로나 19와 함께 어두운 모습을 드러낸 바로 지금의 상황 말이다. 그 늑대는 잘 먹고 잘 자라서 어느덧 큰 늑대가 되었다. 덩치가 커진 만큼 먹는 양도 늘었는지, 내가 가지고 있었던 꿈이나 작은 목표들도 하나씩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피아노에서 멀어지게 만들었고, 글 쓰는 것을 멈추게 했다. 유뷰브도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생겼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뭘 해도 주저하게 되었고, 뭘 하지 않아도 불안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두려움이라는 녀석에게 먹이를 주고 있었다.


 두 마리 토끼를 쫓으면...

 두 마리 다 잡지 못하고 말 것이다.


 멀티태스킹을 하고 있는 내게 첫 장부터 저런 구절로 시작하니 조금 거슬렸다. 그러나 어느새 나는 펜을 들어 줄을 치고 있었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뚜렷한 우선순위를 가지고 일한다. 할 일 목록은 긴 경우가 많지만, 성공 목록은 짧다. 할 일 목록은 당신을 여기저기로 잡아끌지만, 성공 목록은 구체적인 한 방향으로 이끌어준다. 할 일 목록은 어지럽게 적힌 명단이지만, 성공 목록은 잘 정돈된 지시사항이다.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할 수는 있지만 한 번에 두 가지 일에 모두 효과적으로 집중할 수는 없다. 한 번에 너무 많은 일을 하려고 하면 결국 아무것도 잘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현재 자신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알아내고 그 일에 전념하라.

 

 피아노 선생님은 어느 날 문득 내게 이 책을 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건 아마도 선생님이 내 상황을 헤아렸기 때문일 것이다. 선생님과는 수업이 끝나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일이 종종 있는데, 수업 시간 못지않게 그 시간들도 뭔가 충만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한 분야의 전문가들은 삶의 태도도 깊이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선생님이 그렇다.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나이는 나보다 조금 어리지만, 뭔가 인생 선배 같은 느낌이 있다. 아주 어릴 때부터 피아노라는 만만치 않은 상대를 만나서 좌절과 고통, 인내, 외로움 같은 어려운 감정들과 함께 살아왔기 때문에 단단하면서도 섬세한 어른으로 성장한 것 같다. 그래서 선생님과의 대화는 늘 곱씹게 된다.


 선생님은 왜 내게 올 하반기의 목표에 대해서 물어봤을까. 이 질문도 역시 곱씹어 본다. 이 질문을 받았을 때는 선생님의 의도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뭔가 뚜렷한 목표 하나를 세우라는 뜻인가 생각했다. 그러나 선생님이 다음에 한 말은 나를 작게 만들었다. “아... 쇼팽곡을 치고 있으니까, 올 하반기에는 레가토를 연마해 보시는 게 어떨까요?”


 선생님이 묻고 싶었던 것은 피아노에 있어서 내게 가장 중요한 하나, 우선순위를 무엇으로 생각하고 있는지였다.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진지하게 거기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일단 나는 피아노를 생각하면 무대에서 드레스를 입고 멋지게 연주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기 위해서는 피아노부터 제대로 연주할 줄 알아야 한다. 피아노를 제대로 연주한다, 그것은 레가토 같은 테크닉이나 감정 표현을 잘 구사하는 일인데, 나는 그런 것들을 어떻게 연마할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연주회를 열면 멋있겠지, 랜선 음악회라도 해볼까. 나는 기본적인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구체적인 목표들은 무시한 채, 아직은 갈길이 먼 큰 목표에만 신경 쓰고 있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영어 작문 한 줄을 겨우 하는 사람이 영어 소설을 출간하겠다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달까. 물론 이렇게 앞서 나가는 목표들이 나의 성장을 끌어올릴 수는 있다. 그러나 차근차근 쌓아야 할 단계들이 먼저다. 그게 완성되면 그다음은 더 수월하게, 더 완벽하게 이루어질 수 있음을 알면서도 은근 마음만 늘 먼저 가있다.


  제대로 된 목표를 세우는 일이 여전히 뚜렷하지도, 구체적이지도 않다. 나를 멋져 보이게 만들 것 같은 허황된 목표에 더 흔들린다. 나도 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의 마지막 챕터에 있는 마크 트웨인의 말로 용기를 얻는다. “앞으로 20년 뒤 당신은 한 일보다 하지 않은 일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배를 묶은 밧줄을 풀어라. 안전한 부두를 떠나 항해하라. 무역풍을 타라. 탐험하고, 꿈꾸고, 발견하라.” 어떤 목표든 간에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만으로도 이미 나는 후회 없는 삶에 가까워진 셈이다. 후회없는 삶을 살고 싶다.


 

게리 켈러, 제이 파파산의 원씽, 2012년에 나온 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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