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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Sep 11. 2020

박아나의 일상뉴스

아이엠 그라운드, 자기소개하기!

 언론인을 꿈꾸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스피치 수업을 한지도 어언 2년의 시간이 흘렀다. 스피치 수업이다 보니 주로 내가 묻고 학생들은 답하고, 다시 내가 피드백을 주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수업에 처음 들어오는 학생에게 일단 자기소개부터 부탁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무슨 과 몇 학번인지, 이 수업을 듣게 된 이유가 뭔지 말하며 자기소개를 마무리한다. 이 정도면 처음 인사치고는 충분하지 않겠나 싶지만, 다른 데도 아니고 방송국, 신문사를 지망하는 학생들이니 조금은 더 신박한 소개를 듣고 싶다. 언론사가 아니더라도 다른 회사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지원자들 중에 반짝반짝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조금은 다른 소개가 필요하다.


 사실 나도 예전에 방송사 면접시험을 준비할 때 제일 껄끄러웠던 질문이 자기소개였다. 아나운서에게 필요한 자질은 뭔지, 요즘 가장 중요한 시사 이슈가 뭔지는 자동으로 튀어나오면서도 나를 소개하라면 발끝을 쳐다보게 된다. 어디 학교, 무슨 과를 졸업했다는 정보는 이미 제출한 이력서에 나와 있을 것이고, 그것 외에 어떤 이야기를 해야 나란 사람을 어필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다. 예전에 비해 자기 PR에 더 능숙한 요즘 학생들은 어떨까. 내 경험상 학생들에게 자기소개를 하라고 하면, 약간의 동공 지진과 함께 어떤 식으로 해야 되는지 질문이 되돌아오거나, 소개를 하고 나면 흡족지 않은 표정을 짓는 경우가 많다.


 스피치 수업을 하고 있는 내게 갑자기 자기소개를 하라고 하면 땀이 삐질 나올 것 같다. 다행히 취직할 마음이 없으니까 잘 못해도 그만이다. 그러나 취업을 꿈꾸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좀 더 매력적인 자기소개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늘 고민이 많다. 홈쇼핑 쇼호스트가 물건에 대해 하나부터 열까지 다 꿰뚫고 설명을 해야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 수 있듯이, 자기소개도 마찬가지다. 자기, 즉 나라는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잘 팔 수, 아니 잘 소개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나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적어 본다. 나의 현재 관심사와 내가 살아온 지난날들의 관심사들이 무엇인가. 나를 예로 들어 설명해보겠다.


 나 : 피아노 연주를 즐김. 브런치에 한 주에 한 번씩 글을 올림. 책 낭독에도 관심이 있고, 무료한 박아나(레가토)라는 유튜브 채널도 운영. 작년에는 피아노 연주회도 가졌는데, 나름 엄청난 도전이었다고 생각함. 팟캐스트도 기획, 제작.(그러고 보면 뭔가 도전하고 일을 벌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인가?) 15년 동안 아나운서로 일했고 방송에 여전히 관심이 많음. 퇴사 후 책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책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고, 결국은 그것이 브런치에 글 쓰는 일로 연결된 계기가 되었음.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못 다니지만 여행도 좋아함. 혼자서도 여러 번 다녀옴. 뉴욕에서 살았던 경험 덕분인지도. 세상을 보는 시각이 좀 더 유연해짐. 다른 사람의 도움을 기다리기보다는 내가 먼저 해결하는 독립적인 스타일로 변함... 이런 식으로 생각나는 대로 적어본다.


 현재의 관심사부터 적다 보니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에 대한 중요한 단서들이 등장한다. 피아노, 아나운서, 책... 여기까지 보면 뭔가 정적인 이미지일 것 같지만, 유튜브 채널, 팟캐스트, 피아노 연주회, 혼자 여행... 이런 것들은 도전과 모험에도 관심이 있는 사람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나를 소개할 때 반전의 이미지라는 전략을 넣는다면?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몇 시간씩 피아노 연습에 몰두하는 집중력도 있지만, 혼자서도 훌쩍 떠날 수 있는 도전 정신도 있다. 모든 일에 있어서 파고들 때는 파고들고, 활동적으로 움직여야 될 때는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나를 확장시켜 본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주어진 일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일을 만들어, 그러니까 일을 기획해서 할 수 있는 능력 쪽으로 어필하는 것도 괜찮겠다. 피아노 연주회라고 하면 피아노만 연습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연주회를 어디서 할 것 인지, 예산은 어느 정도 잡을 것인지, 연주회 포스터는 어떤 디자인으로 할 것인지, 티켓 판매 방법은 어떻게 할 것인지, 홍보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등 생각하고 실행할 일들이 너무 많다. 연주회 때를 돌이켜보면, 연습에만 신경 쓰기에도 벅찼는데, 그 많은 일들을 어떻게 해냈는지 모르겠다. 기억이 나는 것은 뭔가 하나 간신히 해결하면, 다음 해야 할 업무가 바로 기다리고 있었고, 연주회 준비 과정 자체가 처음이라서 엄청 버벅댔던 일들만 떠오른다. 뭐가 됐든 결국 해냈고, 피아노 실력 외에 기획력과 업무 추진력이라는 능력들을 득템한 셈이다. “처음 시도하는 일도 어떻게든 해내는 그런 추진력으로 회사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바로 저입니다!”


 쓰고 보니 내 자랑처럼 보이는데, 그것은 어쩔 수 없다. 자기소개란 원래 그런 거다. 입사하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관문인데, 없는 능력도 있다고 주장해야 할 판이다. 이 주장이 그럴싸하게 보이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나에 대한 정보를 내가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 대학생이라면 지금의 관심사와 대학 다닐 때 했던 여러 가지 활동들을 작은 것까지 다 기억해 내야 한다. 중고등학교 때 가졌던 꿈은 뭐였는지, 그때도 지금처럼 언론인이 꿈이었다면 계속 이 꿈을 키워온 원동력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언제부터 기자나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는지 그 시점을 떠올려보고 그런 꿈을 갖게 된 계기도 살펴보고, 영향을 준 사람이나 사건이 무엇인지도 떠올려본다.


  모든 이야기는 일방적인 주장만으로 이루어지면 신빙성이 떨어진다. 예를 들어 “저는 끝까지 파고드는 성격입니다. 그러면서도 툭툭 털고 일어나야 될 때는 망설이지 않고 떠날 수 있는 모험정신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만 나열하면, ‘뭐 어쩌라고!’가 될 수 있다. 구체적인 에피소드가 들어가야 믿을만해진다. “저는 피아노 전공자는 아니지만 피아노에 대한 제 열정을 믿고 피아노 연주회 무대에 올랐습니다. ‘아마추어가 무슨 피아노 연주회냐?’ ‘무모한 도전 아니냐?’는 말에 흔들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한 번 해보자는 도전정신을 불태웠습니다. 하루에 대여섯 시간씩 연습을 하면서 집요하게 노력한 결과 성공적으로 무대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면접 위원들이 ‘저 친구 뭐지?’라는 호기심은 들지 않겠나.


 면접 때 하는 자기소개도 그렇고 우리가 흔히 자소서라 부르는 글로 쓰는 자기소개서도 마찬가지다. 면접관들은 우리 회사가 당신을 뽑아야 하는 이유를 찾고 싶은 것이다. 일단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특장점을 가지고 있는지 먼저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그 특징들이 본인이 지원하는 일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연결고리를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출판사에서 교정 보는 일에 지원한다고 치자. 그런데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해서 어디 가든 금방 친해집니다.”라는 이런 장점을 쓴다. 이 장점이 업무와 관련이 있을까. 없다고 생각되면 이런 장점은 아쉽지만 과감히 지운다. 쉽게 말해, 내가 지원하는 분야와 연결된 나의 특장점들을 골라서, 그와 관련한 에피소드를 간략히 말할 수 있다면 꽤 괜찮은 자기소개가 될 수 있다. 면접이라면 호감 가는 목소리나 태도, 자기소개서라면 작문 실력 같은 약간의 포장 능력을 더하면 신박한 단계까지도 갈 수 있지 않겠나.


 결국 멋진 자기소개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과 일치한다. 면접이나 취업과 관련이 없는 경우라도 “내가 지금 뭐하고 사나”라는 공허함이 밀려올 때,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은데 떠오르는 영감이 없을 때, 자기소개서를 써보는 것을 제안한다. 나란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뭘 좋아하는지, 뭘 원하는지 알게 될 테니까. 그것만으로도 이미 문제는 반쯤 해결된 셈이다. 그렇게 믿으십시오.


문득 떠오르는 영화 <인턴> 속 벤 인턴 지망생의 자기 소개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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