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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Sep 26. 2020

박아나의 일상뉴스

숫자, 이게 뭐라고

 밀가루 끊은 지 이제 19일 차다. 밀가루 끊기 며칠 차라고 꼬박꼬박 SNS에 올리는 이유는 당연히 소문을 내기 위해서다. 내 성향상 소문을 내야 그나마 흔들리지 않고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대단하다, 나도 끊어봤는데 좋았다, 그 맛있는 빵들을 어떻게 저버릴 수가 있는가, 너무 독한 것 아닌가 등의 반응이 올라온다. 대단히 장한 것도 아니고, 대단히 독한 것도 아니다. 빵들을 그냥 쳐다보지 않으면 괜찮다. 빵들을 접할 곳은 가급적이면 가지 않기 때문에 생각보다 어려운 일은 아님을 알려드린다. 그러나 계속할 생각은 없다. 4주 동안만 하고 그 이후로는 멈출 예정이다. 다시 만나는 빵맛은 어떨까. 상상만으로도 갑자기 빵이 먹고 싶어 진다. 흠... 옛날 느낌의 보들보들한 단팥빵. 우유랑 먹으면 맛있지.(역시 언급을 안 하는 게 상책이다)

 밀가루가 주었던 심리적 포만감이 사라지니 헛헛한 마음이 올라온다. 그 자리는 독서로 채우고 있다고 주장한다.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기도 하니까 그 핑계로 다른 때보다는 책을 더 많이 읽는다. 1일 1책이라든지, 1만권 독서법 같은데 집착하는 사람들은 이성 교제 횟수를 자랑하는 고등학생을 보는 것 같다고 <책, 이게 뭐라고>에서 장강명 작가가 말했다. “혹시 독서량을 내세우는 이들은 자기들의 독서의 질에 자신이 없어서 그런 건가.” 살짝 뜨끔하다. 운동을 평생 습관으로 삼고 늘 일정 시간을 투자해서 열심히 해 왔던 사람들 중에 평소에 자기 운동 많이 한다고 자랑하는 거 못 봤다. 그냥 당연한 거다. 독서도 가을이라 특별히 하는 게 아니라 꾸준히 하는 거다. “독서할 테니 다들 조용하시오!” 하고 하는 게 아니라 지하철 타고 이동할 때, 카페에서 친구 기다릴 때 틈틈이 하는 거다...라고 장강명 작가의 생각을 조금 빌려 덧붙여 본다.


 실제로 장작가는 20대 중반부터 읽은 책을 기록하고 있는데, 40대 중반인 지금까지 1500권 조금 넘게 읽었다고 한다. 그가 100살까지 지금 속도로 책을 읽으면 만권을 채울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는데, 1만권 독서법의 저자는 단 3년 동안 그렇게 한 것이다. 1일 1책을 해도 1년에 365권, 곱하기 3하면 3년에 1095권인데, 만권이면 대충 10배니까 그럼 뭐야... 하루에 열 권씩 읽었다는 이야긴가. 숫자적으로만 보면 방탄소년단의 다이너마이트 뮤직비디오 조회수처럼 엄청난 기록이긴 하다. 세상에! 하루에 10권이면... 다른 일은 안 하고 책만 읽었다는 건가. 보통 한 권에 빨리 읽으면 2시간, 이것도 책에 따라 다르지만, 대충 이 정도 걸린다 치고, 10권이면 20시간, 그럼 4시간밖에 안 남는데... 독서 머신이구나.


 곱하기까지 하면서 이 이야기에 집착하는 이유는 사실 1일 1책에 도전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1일 1책을 며칠하고 있었는데, <책, 이게 뭐라고>에서 뜻하지 않게 만난 이야기 때문에 자랑하듯 하는 독서는 독서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에 은근 동의하게 된다. 이것은 다이어트를 하는 과정과도 뭔가 통하는 지점이 있다. 흔히 살을 뺀다고 하면 우리는 몸무게에 무척 집착한다. 1킬로그램이 오르고 내릴 때마다 희비, 아니 비희가 엇갈리니까. 밀가루를 끊은 지난 3주 동안 나는 총 3킬로그램을 감량했고, 앞으로 4킬로그램을 더 빼서 내 목표를 달성할 계획이다. 요즘에는 다이어트를 도와주는 앱도 잘 나와서 하루에 먹은 음식들을 몇 그램 먹었는지 입력하면 몇 칼로리인지 바로 뜬다. 그렇게 하루 종일 내가 먹은 것들을 숫자로 기록한다. 내 키와 체중을 고려했을 때 제시한 칼로리보다 적게 먹으면 그날은 안심이 되고, 그렇지 않은 날은 불안하다. 300kcal를 먹으나 310kcal를 먹으나 얼마나 큰 차이가 있겠냐만은 마음이 쓰인다. 이렇게 다이어트를 할 때마다 나는 숫자의 노예가 된다.

덕붕에 1일 1책을 안하게 되서 마음의 부담을 줄였습니다.

  어렸을 때는 그냥 굶는 것만으로도 살이 쉽게 빠졌다. 여기에 약간의 유산소 운동까지 한다면 정말 빠른 속도로 내가 원하는 지점에 도달할 수 있었다. 40대의 다이어트는 경험상 예전의 것과는 달라야 한다. 단순히 굶고 달린다. 이것도 쉽지 않겠지만, 일단 몸의 탄력이 떨어져서 체중이 줄어도 예뻐 보이지 않을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근육량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에 탄력 있게 건강해 보이려면 조금 더 복잡한 루틴이 요구된다. 유산소 운동도 물론 해야 하지만, 근육운동으로 근육을 채우고 긴장된 몸을 이완하는 스트레칭도 필수다. 먹는 양을 줄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먹느냐이다. 대학 들어가서 처음 다이어트를 했을 때 거의 2주를 수박만 먹었던 적도 있었는데, 물론 효과는 대단했다, 지금 그렇게 하면 아마 몸에 이상이 생기지 싶다. 원푸드 다이어트는 아무래도 위험하니, 단백질의 양을 늘리고 탄수화물을 평소보다 줄이면서 골고루 영양분을 섭취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루틴을 꽤 오랫동안 반복해야 몸이 변한다. 이렇게 다이어트를 하면 시간이 엄청 걸리지만 그만큼 유지하는 기간도 길다. 40대의 다이어트는 결국 밖으로 보이는 모습보다는 몸 안에서부터 변화가 있어야 올바른 다이어트가 되는 셈이다.


 1일 1책이 무조건 굶고 달리는 어릴 때의 다이어트라면, 한 권이라도 천천히 곱씹으며 내게 필요한 생각들과 감성들을 채워나가는 조금 느린 독서는 40대의 다이어트와 비슷하다. 어렸을 때의 독서가 이런저런 책들을 마구 접하는 것만으로도 내 지식을 쌓는데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면, 나이가 들어서의 독서는 문장에 담긴 생각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리고 내 삶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치는지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숫자에 집착한 몸무게가 전부가 아니라 탄탄한 근육과 몸에 좋은 식단으로 다져진 내실 있는 다이어트가 올바른 것처럼, 우리의 독서도 비슷하지 않을까. 거창한 다이어트까지 가지 않더라도 정신없이 후루룩 먹는 것보다도 어떤 재료들이 들어있는지 하나하나 음미하면서 먹는 음식이 깊은 맛도 더 느껴지고 나중에 소화도 잘 된다. 이런 방식으로 섭취한 책들이 내공이 되고 실력이 된다. 단순히 글씨를 먹는 (읽는) 게 아니라, 글 안에 있는 생각들과 느낌들을 잘 음미하고 소화해 내 것으로 만드는 게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일 것이다.


  그나저나 말은 이렇게 해도 내가 숫자에서 정말 자유로울 수 있을까. 잠시 쉬고  있는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수가 하루에 한 명씩 사라질 때마다 마음이 조급해지고, 다시 회복할 수 있을지, 솔직히는 엄청난 숫자로 불어나길 희망하고 있는데. 게다가 추석 연휴 끝나고 나면 왠지 2020년도 얼마 남지 않은 느낌이 부쩍 들 것 같다. 잔인한 2020년이 지나가는 일은 기쁜 일이지만, 그렇게 또 나이 한 살을 더 먹어야 하는 현실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지만, 숫자, 이게 뭐라고! 숫자가 중요한 것을...




##제 인스타에  http://www.instagram.com/@nylover.lifestyle 며칠 차도 당분간 계속 올리겠죠? 일단은 4주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마지막 주에 추석 연휴가 있어서 정말 괴로운 한 주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숫자에서 자유롭고 싶지만, 이왕 시작한 거 숫자의 힘으로 버텨봅니다. 즐거운 추석 연휴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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