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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Mar 30. 2022

미술관 가는 길

대구 미술관

 아트 디렉터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단 지 이제 한 달이 지났다. “저희 회사에 새로 만들 아트 부서 업무를 맡아 주십시오.”라며 처음에 이 일을 제의받았을 때, 덥석 받을 수만은 없었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란 생각에 망설임의 시간들이 지속되었다.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 미술관과 갤러리들을 찾으면 찾을수록, 미술 관련 서적들을 파고들면 들수록, 내 부끄러운 감각과 얕은 지식에 부끄러워졌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그래서 나는 더욱 미친 듯이 전시회를 찾아다녔다. 오아시스를 찾아 헤매는 사막의 여행자처럼 자꾸 목이 말랐다.

 심한 날은 서너 개 정도는 다녀야 직성이 풀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말 한 군데만 제대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절실해졌다. 일단 내 마음의 감동이 자꾸 줄어들었다. 예전에는 좋은 작품들을 보면 기쁨과 즐거움에 휩싸였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기계적으로 사진만 찍어댔기 때문이다. 단체전으로 엮인 경우는 참가한 작가들의 이름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내가 기억해야 할 정보량이 너무 많아져서 소화가 안될 지경이었다. 작가와 작품들의 엇갈린 조각으로 어수선한 내 머릿속처럼 몸 상태 역시 피곤에 절어 있었다. 운전도 지쳤고, 지하철도 지겨웠고, 다리도 아팠다. 북서울시립미술관을 가려고 7호선을 타고 왕복으로 한 시간 반 가까이 다녀오던 날, 그전날과 전전날의 피로가 쌓여서 바닥에 드러눕고 싶은 지경이었다. 하마터면, 임산부 자리에 앉을 뻔했지 뭐야. 코로나 상황에서 이렇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게 괜찮을까 조심스럽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한 나는 전시회도, 그리고 작가들도, 갤러리 관계자들도 많이 만나야만 했다. 과부하 따위를 불평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 와중에 나는 슬그머니 대구로 가는 기차표를 예매했다. ‘하루 안에 대구 찍고 부산까지’라는 미친 스케줄도 처음에는 고려했었다. 요즘 전시회 때문에 자주 찾는 한남동에서 삼청동 가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무리인 것 같았다. 예매를 하고 나니, 대구까지 가는 것도 벅찰 것 같아 두어 번은 취소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아트 디렉터라면 대구 미술관 개관 10주년 기획전에는 다녀오는 게 예의 같았다. 끝나기 직전에 간신히 발을 디미는 것일지라도 어쨌든 가야만 될 것 같았다.

 대구 미술관은 친한 작가 동생과 함께 했다. 혼자 가기에는 대구가 처음이라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작가 동생의 도움이 필요한 일들이 있어서 동행을 요청했는데, 기꺼이 함께 해주었다. 수서역에서 출발한 지 두 시간 만에 대구미술관에 도착했다. 대구는 낯선 곳이라 어디가 어디인지 잘 몰랐지만, 대구 미술관이 있는 이곳은 분명 중심가는 아니었다. 원주에 있는 뮤지엄 산처럼 뭔가 휑한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이날 미세먼지가 그윽하게 껴서 실제보다 더 외진 느낌이 들었다. 이곳을 처음 찾는 내게 속내를 쉽게 보여주지 않으려고 일부러 뿌옇게 위장한 것 같기도 하고.

 자, 아무튼 미술관으로 들어가 보자. 1 전시실에서 열린 <모던 라이프> 전은 올해로 개관 10주년을 맞은 대구 미술관이 프랑스 매그 재단과 공동 주최하고, 객원 큐레이터 올리비에 들라발라드와 공동 기획한 특별전이었다. 매그 재단은 프랑스 최초의 사립 미술 기관으로, 컬렉터였던 매그 부부가 당시 프랑스 문화부 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의 제안으로 프로방스의 생 폴 드방스에 문을 열었다. 조르주 브라크, 알렉산더 칼더, 바실리 칸딘스키, 알베르토 자코메티, 마르크 샤갈 등 20세기 유명 예술가와 전후 현대 미술가의 작품 130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2007년인가, 생 폴 드방스로 여행한 적이 있는데, 왜… 안 갔을까… 지금의 나라면 여기 가려고 일부러 비행기표를 끊을 판인데,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 변화에 대해서 다음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리라.

장 뒤뷔페, Faits et raisons,1976

이번 전시는 공동기획이다 보니, 대구 미술관의 소장품과 매그 재단의 소장품을 <모던 라이프>라는 전시명 아래 함께 소개하는 자리이다. 전시는 굳이 말하자면 8개의 카테고리, 탈-형상화, 풍경-기억, 추상, 글, 초현대적 고독, 평면으로의 귀환, 재신비화된 세상, 기원으로 나뉘어 있었다. 큐레이터님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각각의 테마에는 별로 연연하지 않았다. 같은 섹션에 있는 작품들 사이에 어떤 의미와 공통점까지 찾아내고픈 여유가 없었다. 입장권을 꾸역꾸역 가방에 집어넣으며 첫 발을 내딛는 순간, 장 뒤뷔페의 그림과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조각상을 보며,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다. 탈-형상화라는 테마에서 이탈된 것은 내 정신줄이었다. 조심스럽게 작품들을 눈에, 그리고 스마트폰에 담고, 다음 섹션으로 넘어가니 권오봉 작가님의 대작에 또 한 번 넋이 나간다. 뭐, 그러고 나서 이우환, 이강소, 차계남 작가님의 작품들이 잔잔하고 묵직하게, 브람 반 벨데와 장 폴 리오펠의 작품이 화려하게 나를 감싼다.

권오봉, 무제, 2009
이강소, 섬으로부터 2003 / 멀리 이우환, 바람과 함께 1990
브람 반 발데, Composition abstraite,1973

 잠시 숨을 돌릴 시간도 없이 언제 봐도 반가운 박서보 작가님의 묘법이 내 눈에 포착된다. 요즘 내가 관심을 많이 두고 있는 이배 작가님의 Issu du feu, 1996. 대구 인당 뮤지엄에서 올초에 전시를 했다는데, 그때 이미 대구에 왔었었야 했다. 단색화 들도 좋아하지만, 색감이 화려한 작품들에도 끌리는 나는 장 미셸 뫼리스와 조안 미첼, 페르낭 레제의 작품들을 보며 또 다른 에너지를 받는다. 이번 전시회의 하이라이트는 마르크 샤갈의 <La Vie>,1964. 매그 재단에서 이번 전시회에 엄청나게 힘을 실어주었다는 느낌이다. 호안 미로의 작품들도 빠질 수 없다.

이배, Issu du Feu, 1996
조안 미첼, Mon paysage,1967
마르크 샤갈, La Vie,1964

 뭔가에 홀린 듯, 가던 발길을 돌려서 봤던 작품들을 보고 또 보고… 그런 내 모습을 지켜보던 작가 동생은 내가 정말 행복해 보인다고 한다. 마스크 위로 내 눈빛이 반짝거린다나? 마스크 안의 입도 봤으면 더 놀랄걸. ‘너무 좋아, 너무 좋잖아!’ 이렇게 끊임없이 중얼거리고 있었으니까. 나는 작품들에 행복하게 압도되었다. 그리고 그런 작품들이 있는 미술관이라는 공간과 사랑에 빠졌다.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미술관에만 가면, 작품만 바라보면, 사랑에 빠진 사람의 특유의 설렌 표정으로 바뀌는 마법이 일어날까.

 나의 여행은 늘 이랬다. 모든 여행 계획의 일정이 미술관과 전시회 중심으로 결정된다. 내가 자주 가는 뉴욕의 예를 들면, 도착 첫날은 모마, 다음날은 휘트니 뮤지엄, 그리고 소호의 갤러리들, 그다음은 구겐하임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뭐 이런 식으로 출석부에 도장 찍듯이 다닌다. 모마에 가면 간 김에 피프스 애비뉴를 거닐고, 휘트니 뮤지엄을 가면 그 주변인 미트패킹과 첼시마켓을 돌아다닌다. 한 번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열렸던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회에 가기 위해 비행기표를 무리하게 조정해서 뉴욕을 다녀온 적도 있다. 전시 마지막 날 오전에 도착한 나는 바로 미술관으로 직행했더랬지. 뉴욕에 비하면 대구에 나타난 것은 놀랄 일도 아니었네.

 아트 디렉터 일을 하기 전에도 그렇게 신나게 다녔었는데, 지금은 더 좋지 않냐고? 좋아하는 것을 일로 하면 덕업 일치라고, 꿈을 이룬 것 같기도 하다. 예전에 영화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선배를 따라 영화 시사회에 종종 갔었다. 고마운 마음에 “선배님, 좋아하는 영화를 이렇게 매일, 그것도 누구보다도 먼저 보니까 너무 행복하시겠어요!”라고 던졌다. “좋지, 근데… 마냥 좋지만은 않고. 사실 예전보다는 영화가 싫어지는 기분이 들 때도 있어.” 선배의 대답에 피식 웃었었는데, 요즘은 가끔 생각이 난다. 주변에 지인들도 너무 달리지 말라고, 처음부터 이러면 금방 지친다고 내게 조언하는 것을 보면 이 말이 영 틀린 말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진짜’ 아트 디렉터가 되고 싶은 나는 마음이 급하다. 급한 마음 말고 아트 디렉터로 가는 지름길이 있을까. 아… 여기서도 또 빨리 가려고 지름길을 찾네. 사실 아트 디렉터라는 명칭이 지금의 내 일에 딱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그 외에 달리 부를 명칭도 없다. 뭐가 됐든 미술계에 발을 들여놓은 내가 가장 듣고 싶은 호칭은 아트 디렉터인 것은 맞으니까. 다행히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미술도 역시 마찬가지다. 당연히 아트 디렉터도 고정된 개념이 아닐 터. 나는 그것만 믿고, 새로운 미술 시장에서 활동하는 아트 디렉터, 박소현의 모습에 조심스럽게 기대를 해본다. 기다리면 조금씩 조금씩, 보여주겠지, 하고 말이다.


#<미술관 가는 길>이라는 시리즈로 다시 글쓰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동안은 새로운 일에 적응하느라, 여전히 적응 중이지만, 글까지 쓸 자신이 없었어요. 물론 지금도 많이 부족하지만, 글을 쓰면서 성장하는 부분도 크기 때문에 용기를 내어 다시 도전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3월의 어느날, 대구 미술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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