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피아노
우리 집은 가족이 많지 않다. 양가가 다 모여도 아홉 명 밖에 되지 않는다. 한쪽만 모여도 아홉이 넘는 가족도 많을 텐데, 그런 가족과 비교하면 참 단출하다. 그래서 추석이라고, 명절이라고 모여봤자 왁자지껄하지도 않고, 특별할 것도 없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사촌들과의 교류도 예전 같지 않아서 어머니를 통해 가끔 소식이나 듣는 정도가 됐다. 어렸을 때는 가족들끼리 자주 놀러도 다니고, 명절 때면 음식 준비하는 어른들에게 혼나가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놀았었는데, 지금은 얼굴 보기도 힘든 지경이다.
평소에 못 느끼던 외로움을 명절에 느낀다고 하면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까. 명절 스트레스로 열 받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명절 스트레스에 예외가 있는 사람은 없으니, 내 말은 거기에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추가로 더해진다는 뜻이다. 마치 명절에 사촌들이 놀러 왔다가 썰물 빠지듯이 다 빠져나갔을 때 느끼는 공허함을 느껴본 적이 있다면 어떤 느낌인지 알 것이다. 북적댔던 예전 명절의 기억을 아직 갖고 있기에 공허함인지, 외로움인지 모를 그런 감정이 생기는 것일지도.
하나밖에 없는 조카가 지난번에 봤을 때보다 재롱이 늘었다. 같이 놀 사촌이 없어서 심심할지도 모르겠지만, 일흔이 넘은 아버지와 마흔이 코앞인 남동생이 열심히 쫓아다니며 놀아주니 그래도 뭐 괜찮은 것 같다. 까르르르, 까르르르 신난 아이를 바라보며 어머니와 어릴 적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머니는 20대 이후의 나보다는 그 이전의 나를 더 또렷이 기억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대학생이 되면서 떨어져 산 시간이 훨씬 길어져서 그래서인지, 아니면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님과 많은 시간을 공유하지 못한 탓인지, 결국 둘 다 같은 이야기긴 하지만, 어머니가 기억하는 나와 현재의 나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그래도 예전 어릴 때의 나에 대해서는 나보다 더 많이 기억하시는 것은 분명한 듯. "어렸을 때 참 얌전했는데, 쟤는 있어도 없는 듯했어. 친구가 놀다 집에 간다고 하면 붙잡지도 못하고 뒤에서 막 울었어." "엄마, 나 말 많아진 지 오래됐어. 별로 얌전한 스타일 아니야."
"그런가? 옛날에는 그랬다고... 어렸을 때 피아노도 엄청 잘 쳤는데, 지금은 치냐?"
피아노라... 어느 프로그램에서 돈 스파이크 씨가 어머니를 위해 피아노를 치는 장면이 스치고 지나갔다. 잠시 아들의 피아노 연주를 감상하던 돈 스파이크의 어머니는 이내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아니, 왜 울어?”라는 돈 스파이크의 말에 어머니가 대답한다. “옛날 생각나서. 네가 어릴 때 피아노 치던 생각.” 나도 마음이 짠했다. 사실, 이 대답을 듣지 못했어도 그런 이유 때문에 눈물이 났을 거라고 이미 짐작했는데... 그래, 피아노. 피아노와 함께 했던 나의 어린 시절, 피아노로 어머니를 기쁘게 했었고, 피아노로 어머니를 슬프게 했었다.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처음 만난 피아노는 어머니의 바람대로 나와 궁합이 잘 맞았다. 선생님의 온갖 칭찬을 들으며 피아노 꿈나무로 무럭무럭 자라던 나의 어린 시절은 어머니의 자랑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피아노를 연습할 때면 설거지를 하면서도, 걸레질을 하면서도 내 피아노 소리를 흥얼거렸고, 아버지가 퇴근하시고 돌아오시면 그동안 연습했던 곡들을 메들리로 연주하게 하셨다. 누군가 우리 집에 놀러 오면 그분들이 청하기도 전에 “우리 딸이 피아노를 좀 치는데... 들어볼래요?” 하면서 피아노를 시켰는데, 그때마다 흐뭇해하던 어머니의 미소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어머니의 응원에 힘입어 나의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늘었고, 피아니스트를 꿈꾸게 만들었다. 어느 날 어머니랑 대판 싸우기 전까지는.
예중을 목표로 연습하던 때이니까 6학년 때로 기억한다. 언제부터인가 어머니의 잔소리가 자꾸 커져만 갔고, 그 소리가 듣기 싫었던 나는 이리저리 도망 다니고 싶었다. 그때는 나름 연습을 한다고 했는데, 어머니가 생각한 기준에는 못 미쳤던 걸까. 자꾸 연습을 재촉하는 어머니와 아직은 나가 놀고 싶은 어린 마음은 결국 충돌했다. 이젠 그만두겠다고 선언한 나와 그럼 그만두라고 소리치는 어머니. 우리 둘 다 내가 피아노를 그만두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싸움은 점점 뜨거워졌다. 그 당시 내가 무슨 심한 말을 해서 어머니의 화를 더 돋우었는지는 지금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그날 피아노 전투의 마지막 씬은 어머니가 내가 연습하던 악보를 다 찢어버렸던 분노의 역류로 끝났다. 나도 놀라고, 어머니도 놀라고. 그 이후 나는 피아노 앞에 앉지 않았고, 어머니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 피아노랑 나는 어떻게 됐을까. 어머니가 나의 어릴 적 모습을 더 많이 기억하는 것처럼 나도 피아노에 대해서는 예전 기억만 간직한 채 시간이 흘렀다. 정말 쓸데없이 독해서 어머니와 다툰 그 날 이후로 피아노 뚜껑을 절대 열지 않았다. 오죽하면 대학생 때인가 어머니가 물어보셨다. "혹시 몰래라도 피아노 쳐본 적은 없니?" "없는데..." "진짜 독하다. 나 같으면 한 번은 치고 싶을 텐데..." 시간이 좀 더 흐르고 나니 그 쓸데없던 독기는 미련으로 바뀌었다. 회사 들어오고 나서 다시 피아노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뉴욕에서는 줄리어드에서 피아노를 제대로 배울 기회를 얻으면서 실력도 많이 향상되었다. 그러나 서울로 돌아온 나는 고달픈 현실살이에 다시 피아노를 놓쳤다.
요즘 다시 이 피아노에 다가서려 한다. 일단은 굳은 손가락부터 먼저 푸는 게 순서이겠지만, 다른 방식으로 피아노에 접근할 생각이다. 요즘 그 프로젝트 준비로 머리 속이 복잡하다. 연휴에 다른 사람들보다 사람들에 덜 시달렸으니, 그 힘으로 찬찬히 준비할 생각이다. 아니, 찬찬히 할 단계라기보다는 이제부터는 조금 리드미컬하게 움직여야 하겠지만. 그리고 언젠가는 어머니를 위해 쇼팽의 녹턴을 근사하게 들려드리고 싶다. 그리운 옛 시절로 잠시라도 여행을 보내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