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아가라
나이아가라 폭포를 처음 보러 갔던,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이십몇 년 전 대학교 3학년 때였나. 폭포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으며 “나이야 가라!”라고 외치는 어른들을 보면서 "나이아가라 폭포 앞에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강산이 두 번쯤 바뀌어 나이아가라 폭포의 풍경도 달라졌을 것 같은 세월이 흐르고 보니, 나도 이제 그 앞에서 “나이야 가라!”를 절로 외치고 싶다. "나이야 가라, 제발 가라고!"
‘나이’라는 단어조차 잊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나이가 주는 무게를 최근 들어 심히 느끼고 있다. 나 혼자가 아니라 이제는 내 친구들의 무게까지 더해져 살짝 버겁기도 하다. 요즘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다들 뭔가의 기로에 서 있는 느낌이랄까. 새롭게 도전을 하자니 몸도 지치고 마음도 힘들고 핑계가 백개다. 그렇다고 그냥 이대로 가만히 있자니 답답하다. 여기서 더 시간이 지나면 그때는 더 이상 어떤 것도 새롭게 시작할 마음조차 생기지 않을 것 같아 그것도 겁난다. 그래, 만약 뭔가를 한다면 지금 밖에 없겠지! 그런데 뭘 하지...?라는 의문으로 시작해서 뭘 할 수 있을까...!로 끝나는 대화들. 몇 년 전만 해도 "그런 거 저런 거 생각할 여유가 있니, 그냥 이렇게 사는 거지 뭐." 했던 친구들도 요즘은 조금씩 흔들리나 보다.
비교적 여러 가지 제약들로부터 자유로운 나도 엄청 흔들린다. 시간이 많으면 고민도 많은 법. 그나마 고민이 많은 덕분에 이런저런 시도를 할 수 있었고, 새로운 목표도 세울 수 있으니 오히려 잘 된 일이라고 해야 되는 건가. 당분간 피아노에 올인하기로 했다는 말에 진심으로 지지해주는 친구들에게 고맙다. 얘들아, 나도 올인할 게 있어 얼마나 기쁜지 몰라. 또 얼마 전에 만난 내 친구가 뭔가 새롭게 배우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치는데 내 일처럼 너무 반가웠다. 20대나 30대에는 누군가가 뭘 한다고 하면 질투 비슷한 부러운 감정이 있었는데, 이제 친구들이 도전한다고 하면 막 응원해주고 싶고, 격려해 주고 싶다. 나이 들어 철이 든 것도 있겠지만, 어찌 보면 친구를 통해 일종의 대리 만족을 경험하는 것 같기도 하고, 친구와 같은 처지인 나에 대한 응원과 격려의 마음도 함께 섞여 있는 게 아닐까.
이번 달부터 매일 아침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피아노 연습이다. 피아노 선생님은 내게 하루에 두 시간씩 매일 연습할 것을 권했다. "하루에 두 시간, 그것도 매일같이 시간을 낸다. 한 번 해보지 뭐!" 하고 시작했는데, 한 달의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돌이켜보니, 일주일에 두어 번은 연습 없이 지나가는 날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나처럼 어디에 매여있지 않은 사람도 이런저런 일을 하다 보면 피아노 연습을 자꾸 빼먹기 마련인데, 회사에 다니거나 육아를 책임져야 하는 경우라면 정말 쥐어짤 시간이 있을까 싶다. 그러나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하루 스물네 시간을 두 시간 더 붙여 스물여섯 시간처럼 쓸 수 있는 마술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나의 피아노 도전에 불을 붙인 앨런 러스브리저는 자신의 책 “다시, 피아노”에서 이른 아침 시간을 활용해서 연습한 과정들을 상세히 기록했다. 그는 영국 가디언의 편집국장으로서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그 시간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고, 1년 뒤 그 어렵다는 쇼팽의 발라드 1번으로 무대에 섰다.
앨런은 너무 바빠서 하루 두 시간씩 연습할 시간은 없었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하는 게 아예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며 언급한 내용을 잠깐 들여다볼까. “아침 5분, 차 한 잔의 기적”이라는 책에서 저자인 아널드 베넷은 우리는 우리의 주어진 책무를 완수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는 삶을 살 수 없다며, ‘뭔가 다른 일’을 찾아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바깥일에, 가족도 부양하느라 매일매일 지쳐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과연 있긴 한가라고 맞서는 독자들을 그는 다시 설득한다. 그렇지 않다. 우리에게 필요한 시간이 모두 주어져 있다. 다만 깨닫지 못할 뿐이라고. 간단히 말해 시간이 없다 불평하지 말고 아침에 좀 더 일찍 일어나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라고 말이다. 알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어려워서 그렇지. 만약 우리에게 학교 공부를 더 하거나 회사 일을 더 하는데 시간을 투자하라는 거였다면 거세게 저항했을 텐데,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이나 취미에 시간을 쓰라고 하니 참 난처하네. 못 이기는 척하고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나 연습 시간을 마련하고 있는데, 이불 밖은 위험해가 아니라 이불 안이 너무 좋아서 자꾸 갈등이 생긴다. 여름에 시작했으면 더 쉬었을까. 그때는 그때 나름대로의 핑계가 있겠지, 아마.
요즘 유행하는 책 제목들과는 아주 반대로, 쓸데없이 열심히 살아서 나중에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괜한 일을 했다고. 손가락 아프게 쳐봤자 뭐가 달라지냐고. 그렇지만 난 이 말은 진짜 믿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내 삶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그러니까 뭔가 아쉬움이 있다거나 조금이라도 바라는 게 있다면, 뭐라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흠.... 그래서 피아노 진도는 어떻게 잘 나가고 있나. 솔직히 말하자면, 헤매고 있다. 모차르트 소나타 11번 악보를 보는 순간 금방 잘 치겠거니 싶었는데, 마음처럼 손이 따라주질 않는다. 특히 터키행진곡으로 알려진 3악장에 도달하면, 힘차게 행진곡풍으로 연주하라는 지시는 잊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손에 힘이 빠져서 허우적 대기 시작한다. 손가락이 짧지도 않은데 옥타브를 치면서 자꾸 옆에 음을 건들고, 또렷이 다 들려야 하는 음들이 가끔 어디론가 사라지기도 한다. 게다가 연습 때 잘 되던 부분도 선생님 앞에서는 당황의 연속이다. 팔힘만큼 멘탈도 약한 건가. 답답한 마음에 "선생님, 저랑 모차르트랑 잘 안 맞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더니,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요, 모차르트랑 잘 맞으세요. 모차르트 소나타에 필요한 또랑또랑한 소리를 낼 줄 아세요." "그런데 왜 이렇게 확 나아지지 않는 걸까요? 저 나름 열심히 친다고 쳤는데..." "모차르트는 소화하기 은근히 까다로워요. 쇼팽이나 라흐마니노프처럼 분위기로 압도하는 스타일도 아니고요. 음들을 정말 정확하게 내야 하거든요. 정말 익숙해질 때까지 계속 반복 연습하셔야 돼요. 부분으로 쪼개서 집중 연습하시면 이주 뒤면 확 좋아지실 거예요." 역시 선생님은 선생님이다. 이제 막 다시 시작한 나이 든 학생의 기를 살려주면서 효과적인 연습 방법을 바로 제시해주신다. 그래, 지금의 연습량으로 발전을 논할 때는 아닌데, 왜 이렇게 마음이 급한 걸까. 아... 이것도 나이 탓인가. 마음이 급해지는 것도...
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나이 때문이라기보다는 한 해가 지나가고 있는 시점이어서 더 그런 거다. 만약 1월에 피아노를 시작했다면, "뭐 아직 시간 많은데, 여름쯤이면 잘 치겠지." 할 것을, 12월에 시작했더니 뭔가 올해 안에 성과를 내야 할 것 같은 압박이 나도 모르게 느껴졌나 보다. 그렇다. 12월, 올해의 마지막 날도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매년 겪어 잘 알고 있는 일이지만, 올해가 지나간다고 해서 너무 다른 내년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긴 시간의 흐름 속에 작은 점을 찍는 것일 뿐, 우리의 시간은 계속 이어진다. 나중에 돌아보면 그 작은 점들은 보이지도 않을 텐데, 그 점들에 연연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럼 이제 나는 절대 서두르지 않고 나의 시간들을 피아노로 채워가야겠다. 나이가 주는 무게는 잠시 내려놓고, 조급함은 떨쳐내면서 그렇게 말이다. 그래, 그렇게 할 수 있겠지. 잘할 수 있어...!
p.s 구독해주시고, 가끔이라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려요. 우리의 시간은 이어지니 당분간은 계속 브런치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