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기홀에서 피아노를 친다면
설 연휴에 뉴욕을 다녀오고 시차 적응이 바로 돼서 신기하다 싶었는데, 며칠 지나니 도리어 새벽에 자꾸 깬다. 사실 뉴욕에서도 시차 적응이 잘 되지 않아 무척 피곤한 상태로 다녔는데, 급기야는 음악회를 보러 가서도 도저히 참지 못하고 잠깐, 아주 잠깐, 졸았다. 카네기 홀에서 있었던 피아니스트 유자 왕과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의 듀오 리사이틀이었다. 설마 싶었는데... 아무리 훌륭한 연주자들의 연주여도 올 잠은 오고 말았다. 정말 심하게 졸릴 때는 갑자기 툭하고 떨어진 내 고개에 소스라치게 놀라도 그때뿐, 잠이 확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러고 보니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을 여기서 본 적이 있는데, 졸고 있는 나를 원망하며 죄 없는 허벅지만 꼬집어댔던 기억이 있네. 다른 데서는 이러지 않습니다만... 왜 카네기홀에서만 유독 이런 일이 일어날까. 혹시 건물 탓인가. 카네기홀은 예전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의 영향을 많이 받은 네오 르네상스 양식이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마치 유럽 어딘가에 와 있는 느낌이다. 1891년에 처음 문을 열었으니 백 년도 넘는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곳. 백 년의 시차와 미국에서 유럽을 넘나드는 시차 때문일까. 그래서 그렇게 졸렸나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드네.
비록 몇 번 존 부끄러운 기억은 있지만 카네기홀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가든, 이제 막 데뷔하는 음악가든, 누구나 꿈꾸고 원하는 무대임은 분명하다. 카네기홀을 통해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나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같은 세기의 피아니스트들이 미국에서 첫 데뷔 무대를 가졌고,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브렌델도,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도 그들의 고별 무대를 여기서 가졌다. 그 외에도 루이 암스트롱이나 비틀스 같은 대중 음악가까지 다양한 예술가들이 카네기홀 무대를 채웠다.
이렇게 많은 음악가들의 사랑을 받아온 카네기홀도 아예 없어질 위기에 처한 적이 있다.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새로 세워지는 복합 문화 공간인 링컨센터로 옮겨가게 되자 이용 가치가 없어졌다고 판단됐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제기된 카네기홀 철거 계획은 1960년대에 있었던 일인데, 그 자리에 고층건물을 세워 뉴욕의 그 흔한 다른 건물들처럼 쓰였을 생각을 하니 아찔하다. 카네기홀을 살리려는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스턴을 비롯한 여러 음악가들의 노력 덕분에 그로부터도 50년 훨씬 넘게 건재하고 있으니 정말 감사할 일이다. 그중 가장 큰 기여를 한 아이작 스턴은 1943년부터 2001년 그가 죽기 전까지 200편이 넘는 공연을 카네기홀에서 펼쳤고, 그를 거치지 않은 지휘자가 없을 정도로 20세기 지휘자의 역사는 그와 함께 한다. 그런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세상 어디에서든 음악은 연주회장의 가치를 높이지만, 하나의 예외가 있다. 카네기홀은 음악의 가치를 높인다." 그의 말은 카네기홀에 선 많은 음악가들을 통해서 여전히 증명되고 있다.
100년을 훌쩍 넘기도록 57번가와 7번 애비뉴의 모퉁이를 지키고 있는 카네기홀의 주소는 881 7th Ave. 영화"그린북"의 한 장면에 나온 이 주소를 보자마자 단번에 카네기홀이라는 것을 알아챈 관객들도 꽤 있을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영화 속 피아니스트 돈 셜리는 카네기홀 건물 위층에 살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니 실제로 그곳에 살았을 것 같은데, 연주회장 위에 살고 있는 기분은 어떨까. 집같이 편안한, 아니 실제로 집이니, 카네기홀 무대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마음 편하게 연주했으려나. 연주를 마치고 난 뒤 청중이 보내는 환호에 흥분하다 이내 모든 것을 쏟아부은 데서 오는 헛헛함까지, 모두 같은 공간, 카네기홀에서 경험했을 거라 상상해본다.
음악가가 아닌 청중으로서 나는 카네기홀과 걸어서 10분도 채 되지 않는 가까운 곳에 살았었다. 그러다 보니 연주회가 없는 날이라도 종종 그 길을 지날 일이 많았다. 연주회가 끝나고 카네기홀에서 나와 7번가와 브로드웨이를 지나 우리 집이 있는 50가 쪽으로 내려오는 길은 평소와 달랐다. 분명 같은 길인데 다른 길이었다. 타임스퀘어에서 뿜어내는 현란한 빛이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설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다른 세계로 갑자기 뛰어든 느낌이다. 뭐랄까. 보이지 않는 보호막에 쌓여 걸어가고 있다. 사람들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지만, 내 보호막에 모두 튕겨져 나간다. 그리고 이내 신데렐라가 자정이 되면 마법이 풀리면서 현실로 돌아올 때 느꼈을 법한 아쉬운 감정이 나를 감싼다. 그래, 아쉽지만 충분히 누렸으니 됐다. 그렇게 위로한다.
“카네기홀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되나요?”라고 길을 찾는 관광객이 묻자 “연습하세요!”라고 했다는 카네기홀 유머가 있다. 이 말을 처음 했다는 사람으로 바이올리니스트 야사 하이페츠나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이 언급되는데, 원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뭐 틀린 말은 아니다. 이 시점에서 갑자기 떠오르는 "서울대는 어떻게 가나요?"라고 서울대 찾아가는 방법을 묻던 학생에게 "공부하세요!"라고 했던 옛날 유머도 여기서 영감을 받았나 싶다. 아직도 스카이 캐슬의 여파가 남아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뭐가 됐든 틀린 말은 아니네.
뉴욕 다녀오느라 한 주 넘게 피아노 연습을 하지 못했다. 하루를 연습하지 않으면 이틀을 연습하지 않으면 비평가가 알고 사흘을 연습하지 않으면 청중이 안다고 말했던 바이올리니스트 야사 하이페츠의 말이 떠오른다. 난 그럼 온 우주가 알겠군. 카네기홀까지 갈 생각은 꿈도 꾼 적 없지만, 어디로 가든 간에 갈 길이 멀다. 굳은 손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