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웨이의 모차르트
패션계의 거장, 칼 라거펠트가 영면했다. 천재적인 재능과 감각으로 젊은 세대까지도 샤넬에 열광하도록 만들었던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들이 많다. 럭셔리 브랜드의 수장으로서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는 영감의 원천은 무엇이냐고 묻는 기자에게 삶 자체라고 말했던 칼 라거펠트. 그러고 보면 영감이라는 것은 그것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누군가의 걸음걸이도 자극이고 길바닥에 돌멩이 하나도 의미가 되어 돌아오는 모양이다.
칼 라거펠트는 샤넬만의 디자이너는 아니었다. 끌로에서도 오랜 기간 몸담았었고, 펜디도 이끌었으며, 본인 이름을 딴 브랜드도 있다. 정식으로 패션 스쿨을 다닌 것은 아니었지만, 그에게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죽기 직전까지 패션쇼를 준비했다는 그는 일을 사랑한 완벽주의자이기도 했다. 그가 디자인한 옷들을 보라. 왜 아니겠는가. 그는 옷만큼 어록도 많이 남겼다. “뭐든 즉흥적으로 해라. 더 창조적으로 생각해라. 무엇보다 누가 시켜서가 아닌, 본인의 의지에 의해서 움직여라.” 이 말을 들으면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다. 모차르트, 이 천재 작곡가는 즉흥적으로, 창조적으로, 본인의 의지로 움직이며 아름다운 작품을 많이 남겼다. 칼 라거펠트와 공통점이 많은 그가 만일 작곡가가 아니라 디자이너를 했어도 그 시대의 샤넬 같은 브랜드를 만들지 않았을까.
요즘 내가 꽂혀 있는 이 모차르트의 소나타는 피아노를 연습하는 재미를 주고 있다. 한없이 기뻤다가 한없이 슬프기도 한 감정의 변화를 모차르트식으로 또랑또랑하게 표현하는 방식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양한 연습이 된다. 작은 트릴조차도 버리는 음없이 정확하게 건반을 눌러야 함은 물론이고, 아무리 감정이 북받치는 부분이라도 박자가 딱딱 맞아떨어져야 깔끔하게 슬프다. 다섯 손가락 모두 골고루 힘을 분배하여 빠른 음계를 소화해 내야 하는데, 그 어떤 음도 적당히 뭉개져서는 모차르트가 아니다. 조금이라도 힘이 덜 전해 지거나 머뭇거리는 음이 있다면 완벽하게 될 때까지 연습하고 또 연습해야 한다. 모차르트의 음악세계에서는 적당히라는 것은 없다. 정확하게 혹은 일사불란하게 피아노를 쳐야 한다. 그렇다고 숨이 막히지는 않는다. 그 안에 절제된 아름다움이 있을 뿐이다.
사실 모차르트 소나타 11번, k 331을 이제야 겨우 끝냈다. 겨우라는 표현은 모차르트에게 미안하지만 내 실력이 그것밖에 안돼서 어쩔 수 없다. 고백하자면, 처음부터 모차르트 소나타 연습이 즐거웠던 것은 아니었다. 모차르트 소나타를 1악장부터 3악장까지 충분히 익히면 다른 곡들을 만나도 당황하지 않고 금방 익힐 수 있다는 선생님의 권유로 시작했는데, 시켜서 하면 재미가 반감되는 경향이 있으니까. 어렵지 않을 줄 알았던 이 곡은 그동안 굳어 있었던 손가락까지 합세하며 공공의 적, 아니 나의 적이 되었다. 실력이 이 정도였나, 연습을 해도 왜 이러지 등등,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러다 볼링공이 도랑으로 빠질 때 느끼는 수치심은 조금씩 방향을 틀어, 핀을 하나씩 맞추기 시작하면 쾌감으로 바뀌는 것처럼, 그날이 왔다. 그렇다. 자꾸 매달리니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나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실수하던 음들의 수가 줄어들고 페달을 밟으며 자유로운 감정 표현도 가능하게 됐다. 대단히 훌륭한 연주는 아니지만, 듣기에 거슬리지는 않는 정도는 된 것이다.
여하튼 11번과의 교류는 두 달도 훨씬 넘게, 약간은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이어졌고, 모차르트 소나타는 당분간 치지 않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던 어느 날, 뭔가 훅하고 치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것은 모차르트 소나타 12번, k 332, 1악장.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평온하고 부드럽게 시작했는데 어느새 휘몰아치다가 숨을 고르고, 56번째 마디부터 70번째 마디까지 다시 긴박하게 조이며 밀당을 나눈다. 나는 특히 이 밀당 부분을 듣고 과장 조금 보태서 눈물이 날 뻔했다. p(피아노, 작게)로 긴장 상황을 암시하다 f(포르테, 크게)와 p(피아노, 작게)가 번갈아가며 주거니 받거니 이어나간다. 소리 높여 말하다가 누가 들을세라 소리 죽여 말하는 것처럼 대화의 내용은 극적이고 밀당이다.
이런데 우리 사이가 어떻게 끝나니. 11번 이후로 모차르트 소나타와 잠시 이별하려고 했는데 말이다. 머릿속에서 12번의 선율이 춤을 추고, 입가에 맴돈다. 이렇게 마법같이 나를 사로잡는 곡을 만나기가 쉬운 일도 아닌데, 그럼 내친김에 하나 더 해볼까. 11번을 했으니 12번은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근자감, 선생님 말대로 소나타 전악장을 끝내봤으니, 정말 근거 있는 자신감이 차오른다.
누군가는 피아노를 친다고 밥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몰두하냐고 그럴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밥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맹렬히 연습하고 나면 배만 더 고파지는데, 왜 나는 매달리는가. 칼 라거펠트나 모차르트처럼 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던 사람들과 나는 능력의 차이가 엄청, 엄청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하게 많이 나지만, 좋아하는 일을 몰입해서 열심히 하다 보면 꼭 그 길은 아니더라도 작게라도 기회의 문은 열린다고 믿는 쪽이기 때문이다. 물론 결과를 바라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인지라 자신만의 순수한 기쁨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순간이 오는 법. 그럴 때 언젠가는 계속하다 보면 성취도 따라온다는 일종의 희망을 품는 것은 그 일에 더 몰두할 수 있는 또 다른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때론 누군가에게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뭐라도 시작하라고 격려하고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되기도 하니, 덤으로 얻는 보람까지.
모차르트 소나타 12번이 끝날 때도 앓는 소리를 할지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피아노 소나타뿐만 아니라 오페라, 레퀴엠 등 다양한 영역에서 어디 하나 빠지지 않고 빛났던 모차르트의 기운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더 느끼고, 더 즐기며, 더 연습하다 보면 그 기운도 따라오리라. 이와 함께 새로운 도전의 길도 함께 열리기를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