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88, 다시 피아노에 도전하다

배우고, 또 배우고

by 박아나

영어 공부에 한참 열을 올리시던 아빠는 이제 머리가 굳어서 잘 안된다며 요 며칠 사이 부쩍 힘들어하신다. 하루에 몇 시간씩 영어 공부에 매달리셔서 지나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약간 포기 모드로 돌아서신 아빠를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 옛날, 공부를 참 잘하셨던 아빠에게도 세월은 장벽이었을까. 그래도 여전히 배움에 대한 열망이 많으신 아빠를 보면, 내가 아빠의 그런 모습을 조금은 닮았나 보다.

시기적으로도 그렇고, 영화 "아이 캔 스피크"가 떠오르네요. 사진 :서울경제

늦은 나이에, 물론 아빠가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하신 것에 비해서는 매우 이른 나이지만, 피아노를 다시 시작하니 어려운 점이 많다. 그저 피아노만 잘 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물론 피아노도 잘 치는 게 어렵지만, 음악 이론에 약해서 가끔 선생님의 말씀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음악 이론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이 있나 의심이 든다. 그렇다. 고등학교 때 한 주에 한 번 있는 음악 시간에 짧게 배운 정도가 마지막이었는데, 내가 졸업한 지 무려... 기억에 남는 내용이 별로 없다. 게다가 음악 이론은 영어보다도 쓸 일이 없는 지라, 자동 폐기되고 있었을 지도.

영화 "칠곡가시나들"에서 팔순 할머니들도 뒤늦게 한글을 배우시고, 시를 쓰시죠. 언제든 시작하기만 하면 되죠. 사진 : 피디저널

배움이 많이 필요한 제자를 위해 선생님은 감사하게도 음악 이론 책을 선물로 주셨고, 아는 게 힘이라는 뻔한 격언을 떠올리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반갑게도 이미 알고 있는 음악 용어들도 있고, 이런 거였나 하던 부분들이 정리되기도 한다. 참 다행이다 싶었는데, 도대체 이게 뭔 소리인가... 하는 내용들도 반갑지 않게 등장한다. 아직 책의 초반부만 읽은 상황인데, 순정률과 함께 나오는 1, 9/8, 5/4, 4/3, 3/2, 5/3, 18/8, 2 이 숫자들은 설명할 자신이 없다. 이 숫자들의 의미를 더 파고드니 이천년도 훨씬 전에 수학자 피타고라스는 옥타브를 단순한 비율로 나눠 서로 잘 어울리는 여러 음을 얻으려 했는데, 이것이 순정률을 이론화하려는 첫 시도였다. 피타고라스 할아버지가 삼각형은 완벽히 꿰뚫으셨는데, 이 순정률에서는 허점이 있었으니... 이후 세월이 흘러 수학자들은 정확하게 등분된 음계를 만들어냈고, 그게 바로 평균율이다. 어딜 보면 로그를 이용해서 계산하고, 무슨 제곱근으로 설명하기도 하는 정말 수학과 과학을 넘나드는 세상이다. 복잡한 숫자들을 보니 눈이 절로 감기고, 화학 시간에 나오는 주기율 표과 원소기호들이 둥둥 떠다니는 것 같다. 과학에 약했던 나는 과학의 네 가지 과목 중에 화학을 제일 못했고, 그나마 믿었던 지구 과학도 지구를 떠나 우주로 나가는 순간 이해력이 급속히 떨어졌으니. 그래서 인터스텔라 같은 영화를 보면 도통 머리가 아픈 모양이다.

영화 "인터스텔라", 공식으로 가득 찬 칠판을 보니 답답하네요. 사진 :티비리포트

꾹 참고 이론 책을 읽어 내려갈수록 음악의 뿌리는 내가 참으로 어려워하는 과학이요, 수학임을 인정해야 했다. 이미 순정률이나 평균율에서 언급했듯이, 어떤 음들의 조합이 더 조화롭게 들리는지조차 진동수와 그의 비율과 관련 있다는 사실부터 시작해서 화성학이나 대위법이니 이름만 들어도 거리감이 느껴지는 음악의 이론들의 바탕은 과학과 수학이다. 그렇다면 음악 천재 모차르트는 수학 천재였던 것일까. 그는 주사위 작곡법, 알레아토닉이라는 방식으로 미뉴에트를 만들기도 했는데, 방법을 소개하면 이렇다. 176개의 마디를 미리 작곡한 뒤 가로로 열한 줄, 세로로 열여섯 줄로 이루어진 표에 176개의 마디 번호를 적는다. 그리고는 두 개의 주사위를 던져 두 주사위의 합을 이용해 마디를 선택하는데, 총 열여섯 번을 던져 그것들의 합을 연결해서 곡을 완성했다. 앞뒤로 무작위로 선택되는 마디들의 연결이 어떻게 음악적으로 자연스러웠을까...라는 궁금증이 역시나 자연스럽게 나온다. 음악의 코드가 수학에 기본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이런 확률게임 같은 우연에도 흔들리지 않고 음악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모차르트도 그걸 알고 있으니, 이런 놀이 같은 방식으로도 곡을 만들 수 있다고 자신했겠지.

주사위로 음악만 만드는 게 아니라 초현실적인 일들도 일어나게 한답니다. 영화 "쥬만지 "에서. 사진 : 게임메카

모차르트가 수학을 잘해서 우리를 감동시키는 음악을 작곡했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모차르트를 비롯한 음악가들에게는 본능적인 감각과 특별한 능력이 있어 수많은 명곡들이 세상에 나왔다고 믿고 싶다. 수학이나 과학의 발전이 음악에 기여했지만, 음악은 수학도, 과학도 아닌 음악이잖아요. 그러나 내가 아무리 거부하고 싶어도 음악은 논리적이다. 모차르트 소나타를 연주하다 보면, 뭔가 수학이나 과학에나 나올 법한 규칙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난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설명하신 circle of fifths, 우리말로는 5도권이라는 것이 그렇다. 조의 근친 관계가 5도로 형성되는 것을 원형 및 그 밖의 형태로 나타낸 것을 말하는데, 우리가 그나마 기억하는 5도권은 C를 기준으로 # 샵이 붙는 순서, 파도솔레라미시, b 플랫이 붙는 순서 시미라레솔도파로 외웠던 조(key)와 관련된 이야기다. 그렇게 오른쪽, 왼쪽으로 원을 그리며 돌아가면 결국 12개의 음이 반복된다. 소나타 12번, 1악장의 60번째 마디의 왼손의 흐름이 이 5도권의 순서대로 움직이고 있는데, 사실 이 부분을 제일 좋아하기도 해서 더 흥미로웠다. 이런 식의 흐름에 끌리는 이유는 듣기 좋은 진동수의 비율과 진행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과학의 논리는 머리로 이해가 되지 않아도, 음악의 논리는 마음으로 이해가 된다고 믿으며 책을 한 장 한 장 넘긴다.

5도권, 무슨 무술 이름 같지만, 음악 시간에 배우긴 했죠... 사진 :예술고등학교음악이론

우리가 음악을 들으며 그 안에서 애써 숫자를 떠올리지는 않지만, 음악을 들으면 정말 과학적, 수학적 사고가 늘어날까. 모차르트 이펙트라고 모차르트를 듣기만 해도 뇌신경을 자극해 머리가 좋아진다며, 한때 태교 하는 엄마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적이 있다. 믿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애써 그렇게 믿어 보지만, 모차르트 소나타 11번을 여태 치고도 못 외우는 건 모차르트 이펙트가 생각보다 약한 탓인가, 나이 탓인가. 사실 이 모차르트 이펙트, 모차르트 효과는 내게는 다른 의미로 적용되고 있다. 모차르트 소나타로 다시 시작한 피아노 레슨 덕에 나의 관심의 영역이 확장되고 있으니까. 피아노 연습뿐만 아니라, 음악 이론 책에도 손을 뻗고, 음악가들의 이야기에 빠져 든다. 심지어는 싫어하는 과학책도 들여다보고 있으니 말이다.

IQ와 EQ를 높여준다는 모차르트 곡 모음 음반이 인기였죠. 과학적으로 완벽히 증명된 바는 없습니다만. 사진 : 네이버쇼핑

배움에는 끝이 없다. 배우면 배울수록 더 그렇다. 아이였을 때는 아이여서 그랬고, 어른이 되고 보니 어른이어서 또 배울 게 생긴다. 그동안 미뤄왔던 플로리스트 과정에도 등록했다.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며 귀를 즐겁게 했더니 눈도 호강하고 싶었나 보다. 여러 가지로 답답한 세상에 배우는 즐거움이 없었으면 어땠을까. 배우고 싶은 것들이 있어 다행이고, 배울 수 있는 시간이 있는 것에도 감사해야겠지.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에, 꽃에, 온통 아름다운 세상이다. 그 덕에 마음도 함께 아름답게 성장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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